아이의 마음이 사라지고 있다: 공감 결핍 사회의 디지털 유아기

스크린 시대, 감정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의 맹점

 

스크린 속 유아기: 감정의 자리를 빼앗긴 아이들
 

“얘는 왜 이렇게 말이 없어요?”
유치원 교사가 부모에게 처음으로 건넨 말이었다. 네 살, 다섯 살 아이들이 자신의 욕구에 따라 자주 웃고, 떼쓰고, 울고, 친구와 다투는 게 일상이라면, 말이 없고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아이도 분명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익숙하다. 밥을 먹일 때도, 울음을 달랠 때도, 부모들은 스크린에 의지하고 있다. 동요 영상과 유튜브 키즈 채널의 도움은 부모가 ‘아이를 돌본다’고 느끼게 만드는 착각을 줄 정도이다. 하지만 정작 아이는 그 속에서 감정이라는 언어를 배우고 있을까?

 

영아기와 유아기의 핵심은 언어보다 감정이다. 울고, 웃고, 짜증내고, 겁먹는 다양한 정서 반응을 부모가 어떻게 받아주고 해석해주느냐에 따라 아이의 정서 발달이 결정된다. 하지만 스크린은 이런 감정 반응을 무시한 채 흥미와 자극만을 제공한다. 자극은 점점 강해지지만, 관계는 없다. 이른바 ‘공감이 삭제된 유아기’가 도래한 것이다.

 

 

정서 지능이 결핍된 디지털 세대의 성장기
 

정서 지능이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다. 이는 사회적 관계와 학습, 나아가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유아기 때부터 접한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었을 때, 교사들은 “감정 조절을 못하는 학생들이 늘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분노나 좌절을 게임이나 채팅으로 해소하려는 경향이 증가하고, SNS로 소통하긴 하지만, 깊은 감정 교류나 공감은 부족하다. 단절된 정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타인의 고통을 ‘귀찮다’고 느끼고, 친구의 슬픔에 “그게 왜 힘든데?”라고 되묻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감정의 ‘역치’가 낮아진다는 점이다. 자극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평범한 일상에서 감정적 즐거움을 느끼기 어렵다. 결국 무관심, 무기력, 감정 둔감성으로 이어져서 학업 성취도 저하뿐 아니라 친구 관계, 사회적 관계에서의 실패로도 연결될 수 있다.

 

 

공감을 가르치지 않는 사회, 무감각한 어른들
 

부모 세대도 자라면서 감정을 나누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울지 마”, “남자는 참아야지”, “기분 나빠도 말하지 마” 같은 말들은 공감을 억누르는 가정교육의 흔적인데, 감정은 부끄럽고, 표현은 유치하다고 여겨지는 문화 속에서 자란 어른들은 정작 아이의 감정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른다.

 

교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입시 위주의 교육은 여전히 감정보다 지식 전달에 집중하고, 아이들이 다투고 갈등을 겪어도 “이따 얘기하자”, “그만하고 공부해”라는 말로 상황을 덮기 일쑤다. 감정을 처리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면, 아이는 자기 안에 문제를 가둘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문제는 나중에 ‘사회성 부족’, ‘관계 문제’로 표출될 수 있다.

 

사회는 더 이상 공감을 가르치지 않고, 그 대신 소통 기술이나 발표력, 협상력 같은 기술적 커뮤니케이션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공감 없는 소통은 독이 될 수 있다. 말은 하지만 진심은 없고, 협상은 하지만 신뢰가 없는 공감의 부재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신뢰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감정교육의 재구성: 부모와 학교가 다시 시작해야 할 일
 

지금이야말로 ‘감정교육’을 재구성해야 할 때다. 감정 표현, 감정 읽기, 감정의 해석과 공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실천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유아기부터 감정을 표현할 언어를 가르치자.
“화났어?”, “속상했어?”, “이럴 땐 기분이 어때?” 같은 질문은 아이의 감정 어휘를 넓히고, 자기 감정에 이름을 붙이게 한다.

 

둘째, 부모와 교사가 먼저 감정을 나누는 모델이 되자.
“나도 오늘은 좀 힘들었어”라고 말하는 어른은 아이에게 감정을 표현해도 안전하다는 신호를 준다. 그러면 아이 역시 편하게 자기 감정을 드러낼 수 있다.

 

셋째, 감정 관련 활동을 일상화하자.
감정 일기, 감정 카드 놀이, 친구의 감정 상상하기 같은 활동은 놀이처럼 가볍게 접근할 수 있다.

 

넷째, 정서지능을 교육 정책의 중심에 두자.
학교 교육과정에 정서교육을 필수 교과로 편입하고, 교사 연수 프로그램에 감정코칭 과정을 도입해야 한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인간은 여전히 감정으로 연결되는 존재다. 스크린은 말을 걸어줄 수는 있어도,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지는 못하고, 공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관계의 시작이며 사회의 기반이 된다. 지금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건 더 빠른 인터넷이 아니라, 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닐까?

 

아이의 감정은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그 누군가가 바로 부모이고, 교사이고, 우리 사회 전체여야 한다.

 

 

 

작성 2025.06.26 20:45 수정 2025.06.26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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