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를 가장 많이 먹는 산업이 결국 전기를 가장 싸게 쓸 수 있는 곳으로 간다.
해남이 그 최적지다.”
대한민국의 산업 지도가 조용히 바뀌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전라남도 해남이 서 있다. 농업 중심의 전통적 이미지로 기억되던 해남이, 이제 재생에너지 기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이번 사업은 단순한 지역 개발이 아니다. 탄소중립, 디지털 산업, 균형발전이라는 세 축을 동시에 겨냥하는 국가 전략사업이다. 오는 2028년까지 총 15조원을 투입해 3GW급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100% 재생에너지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에너지 소비 집약적인 AI 산업을 ‘친환경’으로 육성하겠다는 실험이자 선언이다.
재생에너지, 단순한 대체제가 아니다
해남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부지가 넓거나 땅값이 저렴해서가 아니다. 이 지역은 하루 3시간만 가동해도 약 1억원어치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 만큼 일조량과 태양광 인프라가 뛰어나다. 여기에 풍력까지 결합하면, 전력 자급자족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국내 지역 중 하나가 된다.
이제 전기와 공간은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다. 데이터센터는 전기 없이는 가동될 수 없고, 친환경 전력 없이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미국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이 대형 데이터센터를 신재생에너지 기반 지역에 집중 배치하는 이유다.
해남은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그동안 지방은 수도권과 비교해 성장의 주변부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번 사업은 지방이 첨단 산업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부의 공공 투자, 재생에너지 인프라, 디지털 산업 수요가 하나로 모이는 지점에서 해남은 산업지도로의 ‘편입’이 아닌, ‘중심 이동’의 주체가 되고 있다.
실제로 산업단지 인근 부지의 가치가 상승하고 있으며, 청년 창업 공간과 배후 주거지에 대한 개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서울이나 광주 기반의 민간 투자도 이미 움직이고 있다. 이는 산업이 도시를 바꾸는 전형적인 사례이자, 새로운 국토 전략이 실현되는 장면이다.
과제는 인프라…국가가 책임져야 할 몫
그러나 모든 것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전력망, 통신망, 공업용수 같은 기반 인프라는 여전히 미흡하다. 지방자치단체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다. 명현관 해남군수의 말처럼, "입지적 강점만으로는 사업을 완성할 수 없다."
중앙정부의 전략사업이라면, 인프라 역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기반이 깔리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전략도 그림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의 미래, 해남에서 시작될 수 있다
해남은 이제 단순한 지역이 아니다. 기후 대응, 산업 전환,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시험할 수 있는 ‘정책 실험장’이자, 미래 산업 구조의 축소판이다.
대한민국이 AI 시대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 전기, 공간, 지속가능성 — 그 모든 조건을 해남이 갖추고 있다.
이제 필요한 건,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정책의 실행력이다. 해남은 그 무대가 될 준비를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