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은 한국에 대해 21건의 비관세 장벽 해제를 요구함.
· 쌀, 소고기, 지도데이터 등 민감한 항목 포함.
· 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와 통상 균형을 맞추기 위한 대응책 마련 중.
· 양국 협상에서 한국의 전략적 카드 활용이 핵심이 될 전망.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틀 안에서 오랫동안 유지돼 온 무관세 체제에도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최근 한국 정부에 대해 “비관세 무역 장벽을 해소하라”는 강력한 요청을 제기했다. 지난 5월 20일부터 22일까지 워싱턴 DC에서 열린 양국 간 국장급 관세 기술 협의에서 미국은 자국의 무역대표부(USTR)가 발표한 ‘2025 국가별 무역 평가 보고서(NTE)’를 직접 언급하며 구체적인 항목들을 지적했다.
보고서에는 무려 21건에 달하는 한국의 비관세 무역 장벽 사례가 열거돼 있었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 측은 이들 항목을 전방위적으로 언급하며 개선을 강하게 요구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 제한이다. 현재 한국은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소고기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으며, 육포와 소시지 같은 가공육 제품은 월령과 무관하게 수입이 불가능하다. 여기에 미국산 쌀의 경우, 저율관세할당(TRQ) 물량인 13만여 톤만 수입 가능하고 그 외에는 무려 513%의 고율 관세가 부과된다.
미국 측은 이를 “한국 시장에 대한 과도한 보호조치”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러한 조치들이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화학물질 관리 제도도 그 예다. 미국은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법(화평법)’, ‘산업안전보건법’, ‘생활화학제품안전법’, ‘화학물질관리법’ 등을 문제 삼았다. 지침 부족, 기업기밀 보호 미비, 테스트 기준의 모호성이 그 근거로 제시됐다.
이와 함께, 미국은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 제한도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자율주행, 드론, 스마트 물류 등 차세대 기술 분야에 필수적인 정보로, 구글과 같은 미국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개방은 외국인 관광객 편의성 증대와 내수 진작 등 긍정적 효과도 있으나, 동시에 국내 IT·모빌리티 산업의 경쟁력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전 통상본부장 A씨는 은 국민 감정의 흐름을 가볍게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들이 느끼기에 이건 ‘우리 먹거리 주권’을 외국에 내주는 셈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상황이 잘못 흘러가면 반미 정서와 함께 불매 운동으로 번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이는 통상 문제를 넘어 정치·외교 이슈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사안입니다.”
그는 정부의 전략적 대응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며, 일방적 양보가 아닌 상호 호혜적인 협상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번 주 초반에 범정부 차원의 대응 회의를 열고 각 사안의 우선순위를 정할 계획이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요구를 다 들어주는 협상은 의미가 없다. 한국의 양보가 있다면, 미국의 상응 조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양국 간 통상 환경이 복잡하게 얽히고 있는 만큼,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외교와 통상이라는 두 축을 균형 있게 조율하면서 한국의 국익을 지키는 정교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미국의 비관세 장벽 해제 요구는 단순한 무역 이슈를 넘어 한미 관계의 민감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협상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한국 정부의 대응 방식이 자국 산업 보호와 글로벌 협력의 균형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섣부른 양보보다, ‘전략적 협상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