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6개월만 쉬운 일본어
“일본어 공부 어떻게 하면 되나요?”, “비결 같은 거 있나요?” 내가 자주 듣는 말이다. 이에 대한 내 대답은 매정하지만 단호하게 “학원 다니세요.”다.
답을 하기 귀찮아서가 아니라 어학 공부에 비법은 정말 딱히 없기 때문이다. 꾸준히 지속하는 게 최고인데, 웬만큼 독하지 않고서야 독학으로는 지속하기 힘드니, 강제성이 부여되는 학원을 가라고 조언하는 거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내 아이도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다. 요즘 공부가 잘 되냐는 내 물음에, 평소 말수가 별로 없는 아이가 속사포처럼 자신의 고충을 토로한다. ‘청해가 너무 어렵고 잘 안 들린다. 공부하는데도 실력이 정체하고 있는 거 같다.’라고 했다. 안 물어봤으면 어쩔 뻔했는가.
주위를 둘러보니 JPT 점수를 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친구가 눈에 들어온다. ‘뭐 이리 도와줘야 할 어린양들이 많은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또 고민한다. 저 친구를 어떻게 도와야 점수를 올릴 수 있지? 직장인이 어학 공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일본어 공부의 함정은 기초만 쉽다는 거다. 우리말과 어순이 같고 한자 어휘가 많아서 초급의 진입장벽은 낮다. 그런데 중급으로 넘어가면서 복잡다단한 한자어와 동사의 변형, 겸양어 등이 나오면서 많은 낙오자가 생긴다.
우리 때는 워크맨이었지
다른 입시 과목을 공부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고, 하루에 10분 정도 얼굴을 볼까 말까 하는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어 전공자인 엄마는 현실적으로 내 아이의 공부를 돕기 어렵다. 그저 내가 공부했던 방법 중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아이의 눈치를 보며 조언할 뿐이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내 유일한 듣기 공부 자료는 교재에 딸린 카세트테이프였다. 그래서 나는 당시 히트했던 ‘도쿄 러브스토리’나 ‘101번째 프러포즈’, ‘고교 교사’ 같은 일본 드라마의 대사를 녹음해서 통으로 외우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그 비디오테이프는 지금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품이 많이 드는 수작업으로 탄생한 귀한 자료였다. 현지에 사는 선배들이 방송 중인 드라마를 비디오 리코더에 녹음 하는 방식으로 우리한테 왔는데, 그 대사를 녹음하기 위해서는 순번을 기다려서 테이프를 빌려야 했다.
자막이 없는 그 재밌는 드라마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종이 사전을 열심히 찾아야 했고, 모르는 어휘투성이인 드라마 대사를 통째로 외우는 건 다소 무식하고 처절한 방법이었지만, 내용이 재밌다 보니 감정이입이 되어 대사를 그대로 흉내 내는 사이 저절로 발음이나 억양이 자연스러워지는 효과가 있었던 거 같다. 경험상 듣기는 무한반복만이 살길이며, 그래서 단어를 완벽히 몰라도 통으로 외우기를 강추한다.
좋아하는 콘텐츠를 일단 찜해 보자
내게 일본어와 일본 문화는 일과 취미의 경계가 모호한 존재인 듯하다. 지루하지 않게 공부하기 위해 재료로 삼은 일본 드라마나 TV 광고를 좋아했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결국 일이 됐다.
물론 지금 하는 일은 그런 말랑말랑한 내용을 다루지는 않지만, 여전히 드라마나 영화, 신문 등을 보며 감각을 잃지 않으려 하고 있다.
내 아이도, 친구도, 일본어 시험 고득점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기에 그 말랑말랑함을 즐길 여유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재밌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좋을 거 같다. 그래서 친구에게는 일본인 네이티브를 소개해 주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랐다.
물론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방법이 있긴 하다. 강제로 하루 종일 듣기와 말하기 연습이 되는 ‘현지 생활’. 그러나 당장 현실적으로는 어려우니 현지로 가게 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서, 이왕이면 재미있는 콘텐츠를 골라서 무식하게 무한반복으로 들으며 따라 하고 외워보자!
K People Focus 김현정 칼럼니스트 (kichomen2@naver.com)
어린 시절 부터 ‘퍼주기’ 특기자이자 의미 있는 소비를 지향하는 적극적인 패션 소비자, 언젠가는 어엿한 ‘인문학 다단계 판매자 최고 등급’이 되어, 보다 재미있는 일들을 도모하는 날을 꿈꾸는 반전 매력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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