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전통적으로 사자성어(四字成語)가 많았다. 예를 들면 사방팔방(四方八方), 사면초가(四面楚歌), 사통팔달(四通八達), 남녀노소(男女老少), 남부여대(男負女戴), 고저장단(高低長短), 구곡간장(九曲肝腸), 오매불망(寤寐不忘), 낙화유수(落花流水), 운우지정(雲雨之情), 삼추지사(三秋之思), 운우지락(雲雨之樂) 등등, 수없이 많다.
이런 사자성어(四字成語) 중에서도 “고저장단(高低長短)”이라는 말은 참으로 쉬운 말이면서도 무한히 넓고 심오한 뜻을 가진 말이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는 음악은 고저장단(高低長短)이라는 4요소로 이루어진다. 고대음악과 현대음악, 또 동서양의 음악이 아무리 달라도 이들 모두는 고저장단(高低長短)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이 고저장단의 차이를 핵심적인 틀로 하는 음악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가슴 뜨겁게도 한다. 음악이 가지는 이런 신비성과 마력은 바로 고저장단이라는 4요소가 만들어내는 신비성이고 마력이다.
공자는 인간에게 즐거운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예악(禮樂)을 다루는 즐거움, 선(善)한 사람과 교유(交遊)하는 즐거움, 현우(賢友)가 많은 즐거움을 ‘익자삼락(益者三樂)’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 삼락(三樂)중에서도 예악(禮樂)을 첫째로 꼽았다. 그만큼 예악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실제로 생일잔치를 비롯해, 결혼축하연, 당선축하연, 우승축하연이 벌어질 때면 음악은 빠질 수 없는 필수요소이고, 일하다 힘들면 절로 나오는 소리도 노동요라는 음악이다. 이처럼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소리가 바로 고저장단(高低長短), 4음(四音)으로 구성된 음악 가락이다.
고저장단(高低長短)이라는 이 사자성어(四字成語)는 쓰이는 범위가 정말 많다. 동요든, 민요든, 유행가든, 심지어 애국가든, 군가든 모든 음악은 고저장단을 기본으로 하고, 옛날 선비들이 읊었던 시조 가락도 고저장단을 기본으로 하며, 배우들이 감정을 섞어 내뱉는 대사도 고저장단을 기본으로 한다. 이렇게 고저장단은 우리 인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가진다. 따라서 이 고저장단이라는 네 요소를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달라진다.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토해내는 사자후(獅子吼)도 결국은 말이 가진 고저장단의 힘이고, 종교인들이 설파하는 인생론도 결국은 말이 가진 고저장단의 힘이고, 연기자들이 표현하는 미묘한 감정도 결국은 말이 가진 고저장단의 힘이다. 심지어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도 목소리의 고저장단에 따라 서로의 인감됨이 전해진다.
실제로 우리는 가족들, 친구들 혹은 가까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는 나름대로의 인식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누적되면 믿을 수 있는 사람, 믿을 수 없는 사람, 사기꾼 냄새가 나는 사람, 무슨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 등등으로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게 된다.
누구나 알다시피 공손한 대화, 화난 대화, 예의 바른 대화, 품위 있는 대화, 등은 모두 말하는 사람이 내뱉는 목소리의 고저장단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것을 두고 우리는 말투라고 한다. 어른들이 “말투가 그게 뭐냐?”하면서 나무라는 것도 결국은 목소리의 고저장단이 그게 뭐냐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얼굴이 마음의 거울이라면 말은 인성과 인품과 인격의 거울이다. 타고난 인물은 바꿀 수 없어도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인성과 인품과 인격은 우리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배우들이 감정을 섞어 내뱉는 대사에 따라 악인(惡人)이나 마녀(魔女)같이 보이기도 히고, 선인(善人)이나 천사(天使)같이 보이기도 하듯 우리가 말하는 고저장단을 바꾸면 우리의 모습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지금부터라도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 있으면 인생 무대의 배우가 되었다 생각하고 진짜 배우처럼 그 선망의 인물처럼 연기를 한번 해보자. 그런 연기가 쌓이고 쌓이면 자연스럽게 나의 본 모습으로 전화(轉化)될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마침내 그 선망의 인물이 될 것이다. 스님들이 경지가 높은 고승들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는 동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스승인 고승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경지에 이르는 것처럼, 또 스승의 가르침을 익히고 따르다 보면 어느덧 덕망(德望)높은 학자가 되어 있듯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인물을 마음에 새기고 그렇게 되기 위해 지덕을 쌓다보면 스스로 그렇게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꿈은 바로 그렇게 이루어진다.
하오니 지금이라도 이승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역할을 자기 스스로 선택한 배우가 되어보라. 그리고 자기가 맡은 그 역할을 멋지게 수행하기 위해 피땀을 흘려보라. 틀림없이 세상 사람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고도 남는 훌륭한 배우가 될 것이다. 그런 배우가 바로 이승을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이다. 이렇게 내 인생은 내 하기 나름이다.
- 손 영일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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