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취리히 서밋이 던진 질문, 기계의 확신과 전문가의 인지적 항복
▪️기계의 유창함과 단정적 어조가 만든 인지적 항복의 메커니즘
▪️방향과 기획만으로 시작해 생각의 윤곽을 잡아가는 창작의 과정
▪️교실에서 마주한 장면, 완벽한 예시가 아이의 상상력에 독이 될 때
▪️인지적 항복을 넘어, 과정을 견딘 아이만이 진짜 자신감을 얻는다
▪️핵심 인사이트 3가지
▪️핵심 참고 자료
▪️전문 용어 사전
▪️칼럼니스트 소개
▪️함께 읽으면 좋을 기사
취리히 서밋이 던진 질문, 기계의 확신과 전문가의 인지적 항복
2026년 9월 25일부터 27일까지 스위스에서 열린 취리히영화제의 산업 행사 '취리히 서밋' AI 패널에서 의미 있는 경고가 나왔다. 영화 투자자이자 AI 창작 플랫폼 매그니픽의 최고전략책임자인 바니아 슐로겔은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언급하며 '인지적 항복(cognitive surrender)' 현상을 지적했다.
인지적 항복이란 AI가 내놓은 답을 스스로 검토하거나 확인하지 않은 채, 자기 판단처럼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태를 뜻한다.

취리히 서밋 무대에서 오랜 안목을 지닌 전문가조차 확신에 찬 기계의 답 앞에 스스로의 비판적 판단을 내려놓게 되는 '인지적 항복'을 풍자한 일러스트.
슐로겔은 AI 비서가 쓰는 확신에 찬 말투가 사람들을 이러한 상태로 이끌어간다고 설명했다. 특히 사용자가 해당 분야를 AI보다 더 잘 아는 전문가라 할지라도 기계의 단정적인 답 앞에서는 자신의 안목과 판단을 쉽게 내려놓게 된다고 우려했다.
슐로겔은 AI 기술의 윤리적 방향을 다루려면 사람이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동시에,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이 자신의 비판적 검토 권한을 기계에 넘겨주는 현실을 핵심 문제로 꼽았다. AI 기술을 앞장서 보급하는 기업의 경영진이 직접 무대에 올라, 기계의 유창한 어조가 인간의 비판적 사고를 무력화하는 실태를 정리해 밝힌 것이다.
기계의 유창함과 단정적 어조가 만든 인지적 항복의 메커니즘
이러한 경고는 바니아 슐로겔 개인의 우려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학술 연구 결과에서도 입증된 사실이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연구진의 2026년 실험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AI가 잘못된 답을 제시했을 때 대략 다섯 번 중 네 번꼴에 달하는 80%의 비율로 오류를 알아채지 못한 채 기계의 권고를 따랐다.
또한 참가자들은 AI의 오답을 받아들인 이후에도 오히려 더 자신의 선택이 올바르다는 확신을 가졌다. 연구진은 작업의 일부를 도구에 맡기는 '인지적 외주화'와 달리, 검토와 최종 판단까지 기계에 넘겨주는 현상을 '인지적 항복'으로 구분해 정의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약 60편의 연구를 분석한 종합 문헌 검토 역시 전문성이 높은 사용자일수록 AI 권고를 스스로 거부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의사결정 순간에는 기계에 크게 의존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떨까. 오랜 시간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글을 써온 필자는 AI가 출현하기 오래 전부터 이와 비슷한 인지적 항복 현상을 자주 봐왔다. 그리고 그건 오로지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됐다.
방향과 기획만으로 시작해 생각의 윤곽을 잡아가는 창작의 과정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창작은 처음부터 무엇을 할지 정확하게 알고 시작하는 일이 아니다. 대략의 방향과 기획만을 쥐고 출발해 하다 보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그때부터 진짜 원하는 큰 그림을 그리며 생각을 뾰족하게 다듬어간다.
글을 써가는 동안 두루뭉술했던 감정과 경험이 명확해지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더 적절한 표현을 찾고 어울리는 단어를 고민하며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려 애쓴다. 특히 글을 잘 다루지 못하는 아이들은 정말 한 조각의 아이디어나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초안을 직접 작성해야 저자성이 생기고,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해서 마침표를 찍어야 과정의 기록이 그대로 남는다. AI나 검색의 도움은 오직 작업을 하다가 지식이나 상식이 모자라 사실 확인이 필요한 시점에만 필요하다. 이때도 스스로 고민한 부분과 궁금했던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저절로 알게된다.

어른의 조바심으로 정답 같은 AI 초안과 완벽한 예시를 들이밀어, 아이가 스스로 고민할 기회를 잃고 적당히 타협하게 만드는 창작 교육 현장의 씁쓸한 현실을 묘사한 일러스트.
교실에서 마주한 장면, 완벽한 예시가 아이의 상상력에 독이 될 때
필자가 특강으로 간 여러 학교의 교실에서는 이런 창작 수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위적인 인지적 항복 현상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학급 인원이 많아 아이들의 진행 상황을 나누어 살피던 중, 담임 교사가 창작 스토리를 쓰기 어려워 하는 아이에게 필자가 가져간 다른 아이의 완성책을 보여주며 베껴 쓰게 했다.
필요에 의해서 예시로 이미 다른 아이들이 한 결과물을 보여줄 때에도 잘 된 결과물이어서가 아니라 너도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목표치를 주면서 ‘정성’ 이라는 진정성 있는 창작 태도를 길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늦는 아이들을 위해 간략히 완성된 예시를 달라는 요구도 종종 받았다. 수업이 끝난 뒤 그 아이만 완성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 어쩌면 마음껏 고민해볼 기회를 뺏은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스스로 해내고자 고민하며 애쓰는 경험이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인데 그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또 아이들 스스로 하려고 하는 의지를 갖게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지적 항복을 넘어, 과정을 견딘 아이만이 진짜 자신감을 얻는다
취리히 서밋의 슐로겔이 제기한 ‘인지적 항복’이라는 화두는, 현 시대 창작 수업에의 AI 활용을 돌아보게 한다. 전문가들조차 AI의 뻔뻔한 확신에 자기 판단을 의심하기 쉬운데, 이제 막 상상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정답으로 오해할 수 있는 AI 초안을 먼저 경험하게 하는 것은 섣부른 개입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AI를 활용하는 적절한 시점은, 스스로 충분히 고민하고 할 수 있는 과정을 다 끝낸 뒤여야 한다.
스스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나 결말이 있었더라도 AI의 빠르고 정답 같은 예시가 주어지면, 아이들은 더 생각하기 보다 그대로 결정에 따르기 쉽고 복잡하게 느껴지면 적당히 타협하게 된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상상력과 사고력이 약해지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고 선택과 판단력마저 희미해진다.
AI 활용은 아이들 스스로 스토리나 책 등을 을 완성한 후, 그 결과물을 바탕으로 영상을 만들고 노래나 만화 등으로 확장하려고 할 때 빛을 발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인지적 항복이라는 굴레를 어렸을 때부터 씌울 순 없다.
밤을 새운 노력이 자신감이 되고 상상하는 즐거움과 창작의 재미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사고하는 힘의 가치를 다시 되새겨 보게 되는 시점이다.

기계의 답을 먼저 받지 않고 스스로 마침표를 찍어본 아이가, 훗날 자신의 고유한 세계관을 AI 기술로 확장시키며 주도권과 진짜 자신감을 쥐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일러스트.
[핵심 인사이트 3가지]
- 1. 전문가도 빠지는 인지적 항복
— 취리히 서밋에서 AI 기업 경영진이 지적했듯, 해당 분야의 전문가조차 AI의 확신에 찬 말투 앞에서는 충분한 검토 없이 기계의 오답을 비판 없이 수용한다. 어른도 견디기 힘든 이 유혹은 아이들의 창작 교육 현장에도 동일한 위협이 된다.
2. 완성된 예시가 멈추게 하는 상상력
— 아이들은 문득 떠오른 생각 한 조각으로 창작을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생각을 다듬어간다. 이들에게 AI 초안이나 어른이 만든 완벽한 완성책을 베껴 쓰게 하는 것은 스스로 고뇌할 기회를 빼앗고 아이를 타협하게 만들어 자존감마저 떨어뜨린다.
3. 스스로 마침표를 찍은 뒤에 열리는 AI의 세계
— 아이들의 AI 활용은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초안을 작성하고 선택을 마친 뒤에 이루어져야 한다. 스스로 구축한 텍스트와 세계관을 바탕으로 AI의 힘을 빌려 영상, 노래, 만화 등으로 확장해 나갈 때 진정한 창작의 재미를 깨달을 수 있다.
[핵심 참고 자료]
《Deadline》, 취리히 서밋 AI 패널 보도 (9/27)
취리히 서밋 2026 공식 프로그램 — 취리히영화제
「How AI Is Reshaping Human Intuition and Reasoning」 — 와튼스쿨 연구자 인터뷰
「Thinking—Fast, Slow, and Artificial: How AI is Reshaping Human Reasoning and the Rise of Cognitive Surrender」 연구 초록 — 와튼스쿨 연구자 페이지
[전문 용어 사전]
▪️인지적 항복(cognitive surrender): AI가 내놓은 답을 충분히 따져 보거나 확인하지 않은 채 자기 판단처럼 받아들이는 현상이다. 와튼스쿨 연구자 스티븐 쇼와 기디언 네이브의 2026년 연구 제목에 등장한다.
▪️인지적 외주화(cognitive offloading): 생각하는 작업의 일부를 도구에 맡기되, 비교와 선택 같은 판단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취리히영화제(Zurich Film Festival):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리는 영화제다. 취리히 서밋은 이 영화제의 산업 행사로, 영화·엔터테인먼트·기술 분야의 제작자와 경영진, 창작자, 투자자가 모여 산업 현안을 논의한다. 행사 측은 스스로를 '영화 산업의 다보스'라고 소개한다.
▪️매그니픽(Magnific): 이미지·영상·음성을 생성하고 편집하는 AI 창작 도구 플랫폼이다.
▪️《Deadline》: 미국의 영화·방송·엔터테인먼트 산업 소식을 주로 다루는 전문 매체다. 2006년 Deadline Hollywood Daily로 시작했고, 현재 펜스키 미디어(PMC) 소속이다. 이번 패널 발언은 이 매체의 현장 보도로 전해졌으며, 행사 주최 측의 공식 발언록은 아니다.
[칼럼니스트 소개]
책마법사(최상희)는 상상하는 인간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스토리 아티스트이자 언론인이다. 2001년부터 아날로그 창작 교육과 북아트를 통해 상상력의 가치를 탐구해 왔으며, 2023년부터는 생성형 AI와 새로운 창작 환경을 연구하고 있다. 인터넷 신문 The Imaginary Focus를 창간해 '상상하는 인간 중심 저널리즘'을 바탕으로 인간의 상상력과 창작, 기술이 만나는 지점을 기록하며 시사와 문화, 기술을 잇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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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활용 고지: 본 기사는 The Imaginary Pocus의 기획과 편집 방향에 따라 관련 법령·공식 문서·학술자료를 검토해 구성했으며, 자료 구조화 및 수록 내역 편집 과정에 AI를 활용했습니다. 최종 내용의 사실 확인과 편집 책임은 The Imaginary Pocus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