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23년 만에 이라크 완전 철수… 민간인 사망 20만 명 넘어선 '침공의 청구서'

성조기는 내려갔지만, 무덤은 남았다

이라크 침공 23년, 끝내 청구되지 않은 인간의 대가

축포 터진 바그다드, "수치스럽다" 외친 아르빌… 미군 철수의 두 얼굴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2026년 9월 30일, 이라크 북부 아르빌 공군기지에서 마지막 미군 수송 행렬이 빠져나갔다. 2003년 3월 바그다드를 향한 진격으로 시작된 미군의 이라크 주둔이 23년 6개월 만에 끝났다. 거리에는 국기가 물결쳤고 정부는 '주권의 날'을 선포했다. 그러나 떠난 군대의 자리에는 기록되지 못한 이름들이 남아 있다. 독립 조사기관들은 직접적 폭력으로 숨진 이라크 민간인만 20만 명을 넘는다고 집계한다. 전쟁은 끝났다고 선언할 수 있어도, 그 전쟁이 남긴 죽음은 철수 명령으로 지워지지 않는다. 이라크 전쟁이 남긴 '인간의 결산서'를 다시 펼친다.

 

무기는 없었고, 전쟁은 길었다

 

2003년 3월 20일, 미국 주도 연합군이 이라크 국경을 넘었다. 명분은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WMD)를 숨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쟁 뒤 미국 조사단이 이라크 전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비축된 무기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명분이 무너진 빈자리를 채운 것은 저항 세력의 봉기와 종파 간 유혈 충돌, 그리고 날마다 이어진 차량 폭탄 테러였다.

 

미군은 2011년 12월 한 차례 짐을 쌌다. 그러나 2014년 이슬람국가(IS)가 모술을 장악하고 바그다드 인근까지 밀고 내려오자 다시 돌아왔다. 두 번째 주둔은 IS 격퇴를 내건 연합군 작전이었다. 2024년 9월 양국 정부는 이 임무를 두 단계로 정리하는 일정에 합의했고, 미군은 2025년 말까지 잔류 병력을 쿠르드 자치지역, 아르빌 기지로 모았다. 이번 철수는 그 계획의 마지막 장이다.

 

20만의 이름, 100만의 추정

 

미 국방부는 9월 30일 연합군 병력과 장비가 아르빌 기지에서 질서 있게 떠났다고 발표하며, 12년에 걸친 '인허런트 리졸브(Inherent Resolve) 작전'의 종료를 알렸다. 연합군 지휘 거점은 요르단으로 옮겨진다.

 

CNN튀르크는 철수 소식 옆에 '청구서'를 나란히 올렸다. 침공 이후 출범한 독립 민간 조사 프로젝트 '이라크 보디 카운트(IBC)'는 언론 보도, 병원과 영안실 기록, 시민단체 자료, 공문서를 서로 대조해 2003년 이후 직접적 폭력으로 숨진 민간인이 20만 명을 넘는다고 집계했다. 전투원까지 합치면 약 30만 명에 이른다.

 

미국 브라운대학교 왓슨연구소의 '전쟁 비용(Costs of War)' 프로젝트도 비슷한 그림을 내놓았다. 2003년 3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전쟁의 직접적 결과로 숨진 민간인은 18만 6,694명에서 21만 38명 사이다. 이라크 군경과 무장 세력 전사자를 더하면 직접 사망자는 28만~31만 5,000명으로 늘어난다.

 

훨씬 큰 숫자도 있다. 영국 여론조사기관 ORB는 2008년 성인 2,414명을 면접한 결과를 토대로, 개전 후 4년 반 동안 숨진 이라크인을 약 103만 명으로 추산했다. 가구별 사망 경험을 전체 인구로 확대한 방식이어서, 학계 일각에서는 과대 추정이라는 비판도 제기했다.

 

국기와 불안이 한 거리에

 

9월 29일, 모술 알누리 대모스크의 복원된 '하드바' 첨탑에 거대한 이라크 국기가 내걸렸다. 이튿날 바그다드와 나자프에서는 국기로 장식한 보안군 차량 행렬이 거리를 누비며 승리의 V자를 그렸다. 정부는 나흘간의 '주권의 날' 공휴일을 선포했다. 알리 알자이디 총리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동맹과의 관계를 군사 협력에서 경제·개발 협력으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환호의 뒷골목은 조용하지 않다. 가장 먼저 쓰러진 것은 아이들이었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22년 말까지 이라크에서 어린이 3,000명 이상이 숨지고 5,000명 이상이 다쳤다. 이 통계에는 침공 첫해와 가장 참혹했던 2004~2007년이 빠져 있다.

 

북부의 목소리는 더 날카롭다. 미군은 아르빌에 배치했던 패트리엇과 C-RAM 방공 체계를 철수 과정에서 가져간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이란과 친이란 민병대의 공격에 거듭 노출된 쿠르드자치정부의 마스루르 바르자니 총리는 방어 수단 없이 홀로 남겨진 처지를 두고 "수치스럽다"고 말했다. 친이란 무장 조직들은 무장 해제 요구를 거부하고 있고, 정부는 모든 무기를 국가 통제 아래 두는 시한을 2027년 6월로 늦췄다.

 

군대는 떠나도 숫자는 남는다

 

브라운대 연구진은 무너진 의료 체계, 파괴된 기반 시설, 식량 불안으로 인한 간접 사망이 직접 사망의 2배에서 4배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추정치는 기관마다 다르다. 그러나 그 차이가 가리키는 사실은 하나다. 누구도 정확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다.

 

철수는 평화 속에서 이뤄지지도 않았다. 2026년 2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과 전쟁에 들어간 뒤 쿠르드 지역의 미군 기지는 잇따라 공격받았고,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이라크의 석유 생산은 3월 한때 최대 60%까지 줄었다. 군대는 떠났지만 이라크는 여전히 강대국 대결의 교차로 한가운데 서 있다.

 

23년 전, 끝내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한 줄의 명분이 한 나라를 갈랐다. 전쟁은 시작하기는 쉽고 끝내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 값은 언제나 명령을 내린 이들이 아니라, 그 땅에 남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치른다. 성조기가 내려간 이 가을, 세계가 이라크에 빚진 것은 축하 인사가 아니라 정직한 기억이다.

작성 2026.10.01 02:07 수정 2026.10.01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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