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게임에서 앞섰다" | 합의를 깨는 자는 누구인가

아락치의 한 문장이 트럼프의 논리를 무너뜨린 방법

이란은 규칙 안에 있고, 미국은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호르무즈에서 시험받는 건 화력이 아니라 말이다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전쟁에는 총알만 오가지 않는다. 신뢰라는 화폐도 오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두고 합의를 지키지 않는 상대라고 못 박았다. 그런데 튀르키예 CNN이 전한 CNN 인터내셔널 분석은 그 문장을 거울처럼 되돌린다. 파리 기후 협정에서, 이란 핵 합의에서 먼저 걸어 나온 사람은 누구였는가. 호르무즈 해협의 물길보다 먼저 무너진 것은 말의 무게였는지 모른다.

 

신뢰라는 화폐가 바닥났다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전쟁이 시작됐고, 이란은 호르무즈 봉쇄로 맞섰다. 6월 중순 양국은 양해각서에 서명해 총성을 멈췄다. 그러나 합의문은 핵 문제와 해협 관리라는 뇌관을 60일 협상 기간으로 미뤄두었다. 문서에 적힌 문장은 모호했고, 모호함은 각자에게 유리하게 읽혔다. 이란은 안전 통항을 위한 조치를 이란이 마련한다는 조항을 해협 관리권으로 해석했다. 워싱턴은 그런 뜻이 아니라 했다. 7월 초 앙카라 나토 정상회의장에서 트럼프는 휴전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이란 측 협상 책임자는 일방적 합의의 시대는 끝났다고 응수했다.

 

거울에 비친 문장

 

트럼프는 이란이 늘 합의를 깨는 쪽이라고 말한다. 합의는 다 됐는데 저들이 부수었다는 것이다. CNN 인터내셔널은 바로 이 지점에 조명을 비춘다. 파리 기후 협정에서 미국을 빼낸 사람도, 오바마 행정부가 맺은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한 사람도 트럼프 자신이다. 전문가들은 합의 이행의 신뢰도라는 잣대를 상대에게만 들이대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호르무즈 통행료를 둘러싼 태도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특히 이란은 통행료를 받을 수 없다던 그가 미국이 통과 화물에 20퍼센트를 청구하겠다고 돌아섰다. 그리고 하루 만에 그 청구서마저 거두었다. 남은 것은 봉쇄뿐이다.

 

조롱이 겨눈 자리

 

아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의 답변은 칼끝처럼 짧았다. 그는 안전한 통항을 제공하는 쪽이 보상받아야 한다는 말이 옳다고 인정한 뒤, 해협의 수호자는 언제나 이란이었다고 못 박았다. 그리고 덧붙였다. "20%는 물론 너무 많다. 우리는 공정할 것이다." 상대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 상대를 겨눈 것이다. 국제해사기구는 국제 항행 해협의 통과에 요금을 물릴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고, 영국 총리실도 통행료 없는 재개방을 요구했다. 대형 선사와 보험업계는 위법이라 했다. 그사이 반다르아바스 해변에서는 아이들이 폭연을 등지고 물장난을 쳤다. 세계가 요금표를 놓고 다투는 동안, 그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의 하루는 계속됐다.

 

규칙을 쓴 쪽과 되돌아오는 쪽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이란이 물러서지 않는 상대임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란은 처음에 정한 규칙 안에서 움직이는데, 미국은 선언과 철회를 오가며 매번 판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승리를 선언한 전쟁을 다시 시작한 이유도, 스스로 만든 게임에서 빠져나올 출구도 아직 보이지 않는다. 신뢰는 총구보다 늦게 무너지지만, 한번 무너지면 총구보다 늦게 복구된다. 지금 호르무즈에서 시험대에 오른 것은 미국의 화력이 아니라 미국의 말이다.

작성 2026.07.15 04:18 수정 2026.07.15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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