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특집 | 더는 이 땅에 끔찍한 전쟁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 땅을 지켜내는 것도 덜 중요하지 않다

스무 살에 멈춘 이름들 — 부산 언덕의 2,300기는 무엇을 묻는가

종전이 아니라 휴전 — 우리가 70년간 서 있는 멈춤의 선

잿더미에서 세계 10위로 — 그 기적의 값을 누가 치렀는가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부산 남구 대연동의 한 언덕에 외국 청년 2,300명이 잠들어 있다. 재한유엔기념공원이다. 그 묘비 앞에 서면 낯선 이름들이 줄지어 새겨져 있다. 스무 살, 스물한 살. 채 피지도 못한 나이다. 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코리아'라는 이름조차 처음 들어 본 청년들이었다. 지도에서 한반도를 짚어 보라 하면 한참을 헤맸을 그들이, 왜 이역만리 낯선 땅에 와서 목숨을 버렸는가. 이 물음 앞에 서는 일이, 6월을 맞는 우리의 첫 의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38선 전역에서 밀고 내려왔다. 소련제 T-34 전차 242대가 앞장섰고, 남쪽에는 맞설 전차가 한 대도 없었다. 그 다섯 달 전,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은 미국의 극동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한다고 선언했다. 

 

당시 북한의 김일성은 그 선언을 빈집의 열린 문으로 읽었다. 전쟁 하루 전, 한국군은 병사들에게 외출과 휴가를 내보냈다. 무방비의 나라를 향한 기습이었다. 사흘 만에 서울이 떨어졌고, 국군과 미군은 낙동강까지 밀렸다. 나라의 운명이 부산 한 귀퉁이에 걸렸다.

 

반전은 9월 15일 인천에서 시작됐다. 맥아더의 상륙작전은 무모하다는 반대를 뚫고 감행됐고, 9월 28일 서울을 되찾았다. 전세는 압록강까지 치달았다. 그러나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다시 후퇴가 시작됐다. 12월의 흥남,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10만 명이 넘는 피란민이 배에 올랐다. 

 

이듬해 1월 4일, 서울은 또 한 번 적의 손에 넘어갔다. 밀고 밀리는 능선의 싸움이 2년을 끌었다. 그리고 1953년 7월 27일, 마침내 총성이 멎었다. 3년 1개월 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멈춤이었다.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 멈춤의 선 위에 서 있다.

 

이 전쟁에 세계가 응답했다. 전투 병력을 보낸 나라가 16개국, 의료와 물자까지 더하면 67개국이 한반도로 손을 내밀었다. 한 나라를 돕기 위해 이토록 많은 나라가 모인 일은 인류사에 드물어,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 가운데 튀르키예가 있었다. 당시 약 5,500명의 청년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서 부산까지 왔다. 그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 불렀고, ‘군우리’와 ‘김량장’의 들판에서 피를 쏟았다. 

 

그리스, 에티오피아, 콜롬비아도, 자기 땅의 고단함을 안고서 낯선 반도로 달려왔다. 숫자는 차갑지만, 진실을 말한다. 국군 전사자만 13만 7,899명, 부상자 45만여 명이다. 남북한을 합친 우리 국민의 인명 손실은 약 520만 명, 헤어진 가족이 1,000만 명에 이르렀다. 부산 그 언덕에 누운 유엔군 전사자는 4만 명을 넘는다. 폐허는 철저했다. 학교와 교회, 병원과 공장, 다리와 길이 잿더미가 됐다. 

 

그런데 그 잿더미에서 한 나라가 일어섰다. 70여 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반도체와 조선 세계 1위, 누리호를 쏘아 올린 나라가 됐다. 묘비의 청년들이 지켜준 땅 위에서 피어난 기적이다.

 

나는 6월이 오면 두 개의 문장을 나란히 놓고 오래 들여다본다. 이 땅에 끔찍한 전쟁은 더는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 땅을 지켜내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얼핏 두 문장은 서로 등을 돌린 듯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성경에서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을 때, 한 손에는 연장을 들고 다른 손에는 무기를 잡았다(느헤미야 4:17). 평화를 짓는 손과 그것을 지키는 손은 한 사람의 두 손이다. 값싼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진 적이 없다. 부산 언덕에 묻혀있는 스무 살의 어느 청년이, 멀리 튀르키예의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온 형제가, 그것을 피로 증언해 준다. 

 

그러나 그 피의 값은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화해를 위해 치러졌음을 나는 믿는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라 했다(로마서 12:18). 우리는 전쟁을 미워하기에, 더욱 평화를 지킬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의 첫걸음은 무기가 아니라 기억이다. 잊지 않는 마음이다. 오늘, 우리는 누구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그리고 그 이름이 지켜준 자유를, 우리는 이제 무엇으로 지켜 가려 하는가.

작성 2026.06.25 02:28 수정 2026.06.25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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