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는 누구 손에 있는가: 이란 협상을 둘러싼 두 개의 시선

"이란의 손에는 더 이상 던질 카드가 없다"… 핸슨이 짚은, 모두가 놓친 협상의 진실

5천억 달러와 50년: 한 사학자가 읽어낸 이란 붕괴의 셈법

같은 합의문, 정반대 해석: '항복'인가 '양보'인가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미국과 이란이 60일 휴전과 협상 골격을 담은 양해각서에 서명한 직후, "이란이 오히려 유리해졌다"라는 해석이 쏟아졌다. 군사 사학자 빅터 데이비스 핸슨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는 전쟁으로 이란의 핵·군수 인프라가 무너졌고, 제재와 유가, 중간선거라는 시간표가 모두 워싱턴 쪽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같은 합의를 두고 좌우 양 진영의 비판도 만만치 않다. 

 

협상 테이블은 종종 포커판에 비유된다. 누가 더 좋은 패를 쥐었는가, 누가 허세를 부리는가, 누가 먼저 시계를 흘끔거리는가. 군사 사학자 빅터 데이비스 핸슨은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서 미국 폭스뉴스의 간판 정치·시사 프로그램인 '제시 워터스 프라임타임'에 출연해, 새로 서명된 미·이란 예비 합의를 비판하는 이들이 미국의 협상력을 잘못 읽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진단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다. 테헤란의 손에는 더 이상 던질 카드가 없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단언하는 근거는 '파괴된 인프라'다. 핸슨은 군사 충돌이 이란의 인프라를 해체했으며, 이란이 "50년에 걸쳐 쌓아 올린 핵·군수 산업 복합체에 아마도 5천억 달러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란이 지금이 전보다 낫다"라는 주장을 '제정신이 아닌' 논리라고 일축한다. 별도의 칼럼에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파산한 정권이 하루 4억 달러 넘는 수입을 잃고 있으며, 반세기에 걸친 투자로 쌓은 거대한 복합체가 무너졌다고 진단한다. 숫자의 정확성은 아무도 검증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그리려는 그림은 분명하다. 무너진 집에 앉아 허세를 부리는 도박꾼의 초상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공방도 같은 논리로 풀어낸다. "해협이 전에는 열려 있었는데 이제 닫혔고, 다시 열려고 협상해야 한다"라는 비판에 대해, 핸슨은 해협이 열려 있던 것은 이란이 말썽을 부리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일 뿐이며, 그렇게 한 이유는 지난 일곱 명의 대통령이 "감히 너희를 건드리지 못한다"라고 말해 왔기 때문이라고 받아친다. 그는 이란이 경제적 압박 탓에 세계 못지않게 해협 개방이 절실하며, 미국 정보망이 농축 우라늄의 이동을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어 이란이 핵무기로 향하면 즉시 폭격을 재개할 수 있다고 본다. 칼자루는 이미 워싱턴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가 가장 힘주어 강조하는 것은 '시간'이다. "이란은 시간이 자기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은 이란 편이 아니다"라고 그는 제재의 무게를 들어 말한다. 핸슨은 테헤란이 미국의 중간선거와 건국 250주년을 두려워하며, 충돌이 중간선거 이후까지 이어지면 트럼프가 선거 셈법에서 자유로워진다고 본다. "그들은 트럼프가 일부러 시간을 끌까 봐 두려워한다. 중간선거와 250주년이 지나고 나면 그의 선택지는 지금보다 훨씬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판세는 거꾸로다. 시계를 쥔 쪽은 오히려 그들"이라는 것이 핸슨의 결론이다. 유가가 내려가고 선거가 끝나면 백악관의 손이 풀린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칼럼니스트의 책무는 한쪽 패만 들여다보는 데 있지 않다. 같은 합의문을 펼쳐 든 비판자들의 시선은 정반대를 향한다. 이 합의는 정치적 좌우 양쪽에서 비판받았는데, 그 핵심은 합의가 이란 핵 인프라의 즉각적 해체나 농축 우라늄 비축분의 반출을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핸슨 자신조차 안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 합의의 가장 큰 시험대가 결국 '미국이 이를 어떻게 강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이란이 헤즈볼라, 후티, 하마스에 돈을 대지 못하게 막는 일이 더 어렵고 불투명하며, 레바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알 수 없다고 그는 인정한다. 낙관론자조차 "이행을 강제할 힘"이라는 전제를 달고서야 비로소 낙관하는 셈이다. 

 

여기서 이 칼럼이 진짜 묻고 싶은 것이 드러난다. 어떻게 똑같은 종이 한 장이, 한쪽에서는 '항복 문서'로, 다른 쪽에서는 '위험한 양보'로 읽히는가. 트럼프 행정부는 이행의 동력을 재정적 유인에 두었다. 3천억 달러 규모의 재건 기금, 이란이 즉시 원유를 팔 수 있게 하는 선제 조치, 그리고 이란이 합의를 지키면 동결 자산을 풀어 주겠다는 약속이다. 당근과 채찍이 한 문장 안에 공존하니, 보는 이의 위치에 따라 같은 문장이 당근으로도 채찍으로도 읽힌다. 결국 사건은 하나인데 해석은 둘이고, 그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바로 독자의 분별이다. 

 

카드와 시계와 협상력이라는 단어 뒤에는, 셈법으로 환원되지 않는 얼굴들이 있다. 핸슨조차 자문한다. 이란 국민이 자기 정부를 향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잃었다, 평화롭게 끝낼 수도 있었는데 당신들이 강하게 군 탓에 이제 우리는 빈털터리가 되었다"라고 외칠 것인가를. 그 물음 속에는, 정권의 자존심과 한 사람의 빈 밥상 사이에 가로놓인 깊은 골이 비친다. 일찍이 예수는, 전쟁에 나가려는 왕이 먼저 앉아 이길 수 있을지 헤아려 본다고 말씀하셨다(누가복음 14:31). 패를 세는 일과 대가를 헤아리는 일은 다르다. 누가 더 좋은 카드를 쥐었는지 다투는 동안에도, 무너진 도시의 한 어머니는 오늘 저녁 무엇으로 아이를 먹일지 헤아린다. 분석가의 책상과 그 어머니의 부엌은 같은 전쟁을 살아가지만, 절대 같은 무게로 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우리가 '누가 이겼는가'를 셈하느라, '누가 살아남았는가'를 끝내 묻지 못한 건 아닌가. 

작성 2026.06.22 02:08 수정 2026.06.22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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