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엔지니어의 확신과 '기준 바깥'의 변수
오래전, 제어기기를 만들어 수력발전소에 납품했던 한 지인의 일화가 있다. 기기를 설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전소 측에서 연락이 왔다. 제어 수치가 자꾸만 틀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프로그램 설계와 로직을 수없이 검증했고 계산상 오류도 없었기에, “내 프로그램이 틀릴 리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해 원인을 추적한 끝에 뜻밖의 결론에 도달했다. 문제는 기기 자체가 아니었다. 기기에 공급되는 전원의 전압이 일정하지 않았고, 그 미세한 불안정성이 프로그램 오류를 유발하고 있었다.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했다. 정압 장치를 설치해 안정적인 전원을 공급하자 모든 오류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 사례는 한 가지 중요한 진실을 보여준다. 문제는 언제나 우리가 가장 먼저 의심하는 곳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흔히 자신이 만든 시스템, 자신이 익숙한 방식, 자신이 옳다고 믿는 판단을 '기준점'으로 삼는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그 기준 바깥의 영역은 잘 보지 못한다.
조직에서도 이런 사람을 종종 목격한다. 대개 꼼꼼하고 유능하며 일도 잘하는 편이다. 문제는 그 유능함이 '지나친 확신'으로 변할 때 발생한다. 자신의 판단은 항상 옳고 방식은 틀리지 않으며, 실패의 원인은 언제나 외부에 있다고 믿는 태도다. 그러나 스스로를 무오류의 존재로 강변하는 오만함은 개인을 눈 멀게 하고 조직을 경직되게 만들 뿐이다. 외부 환경이 변하면 아무리 완벽한 프로그램도 에러를 뿜어내기 마련이다.
한비자가 경고한 '수주대토(守株待兎)'의 현대적 변주
전국시대 법가 사상가 한비자(韓非子)는 인간과 조직이 빠지기 쉬운 이 거대한 위험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한비자(韓非子) 오두(五蠹) 편에서 짧지만 강렬한 말로 이를 경고했다.
不法常可 (불법상가): 늘 그래 왔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법칙처럼 따라서는 안 된다.
시대가 변하면 문제도 변하고, 문제가 변하면 해법도 변해야 한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정답일 수 없고, 오늘의 성공 방식이 내일의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수주대토(守株待兎)'의 우화다. 밭을 갈던 농부가 우연히 그루터기에 목이 부딪혀 죽은 토끼 한 마리를 얻은 후, 횡재했다는 생각에 농사를 포기한 채 매일 나무 옆에서 또 토끼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이를 어리석은 옛날이야기로 치부하지만, 현실에서 수주대토는 생각보다 자주 반복된다. 기업은 과거의 성공 공식을 신봉하다 도태되고, 조직은 낡은 관행을 효율이라 부르며 답습하고, 정치는 한때 통했던 익숙한 지지 공식에 안주한다. 한때의 우연한 행운이나 과거의 규칙을 '영원한 상수'로 착각한 채, 변화된 현실이라는 '수많은 변수'를 외면하는 순간 농부의 비참한 결말은 우리의 현실이 된다.
지쳐가고 의심할 때 경고 신호는 작아진다.
문제는 세상이 늘 변한다는 데 있다. 민심도, 경제도, 국제질서도 멈추어 있지 않는다. 겉으로는 공고하고 견고해 보여도 내부에서는 이미 균열이 시작되고 있을지 모른다.
특히 지도자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실패의 순간이 아니다. 오히려 모두가 박수를 보내고 환호하는 순간이다. 정치 현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한때 우리는 감옥에 있는 윤석렬이 검찰총장이 안 되면 당장이라도 나라가 무너질 것처럼 절대적인 확신을 갖은 적도 있었다. 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1년 동안, 기대를 뛰어넘는 성과에 공고한 지지층은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
하지만 최근 돌아가는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여기저기서 우려와 경고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든든했던 지지층 내부에서조차 조금씩 지쳐가고 의심하고 있다. 민심의 기류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칭찬이 많을수록 비판은 줄어들고, 비판이 줄어들수록 위험을 알리는 경고 신호는 작아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드러나지 않던 변수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시스템을 마비시킨다. 지도자가 지금 흘러나오는 우려의 말들에 극도로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확신이 아닌 통찰의 리더십이 필요한 때
세상에는 드러난 상수보다 드러나지 않은 변수가 훨씬 많다. 눈에 보이는 숫자보다 보이지 않는 흐름이 더 중요하고, 현재의 지지율보다 미래의 민심 변화가 더 중요하다.
결국 격변의 시대를 돌파하는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함의 과시'가 아니라 '변화를 감지하는 감각'이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겸허한 인정, 지금의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철저한 경계, 그리고 귀에 쓴 불편한 목소리에도 주파수를 맞추는 태도다. 진짜 강한 리더는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독단적인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의 오류 가능성을 늘 열어두고, 외부의 변수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필요하다면 과감히 방향을 수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미래로 전진하느냐, 과거의 관성으로 회귀하느냐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아집에 찬 확신이 아니라 시대를 읽는 통찰이다. 컴퓨터 과학의 선구자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는 생전에 이런 명언을 남겼다.
"우리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준 말은 바로 '우리는 항상 이렇게 해왔다
(It's always been done that way)'라는 말이다."
한비자의 경고 역시 같은 곳을 향한다. 불법상가(不法常可). 늘 그래 왔다는 이유만으로 그 길이 오늘도 옳다고 믿지 말라. 민심의 불규칙한 전압 신호를 무시한 채 "내 프로그램은 완벽하다"며 귀를 닫는 순간, 리더십은 그루터기 앞에 앉아 처량하게 토끼를 기다리는 농부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변화를 읽지 못하는 확신은 오만이 되고, 오만은 결국 실패를 부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정답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리더가 아니라, 새로운 질문 앞에서 새로운 답을 찾아낼 수 있는 리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