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서로 존중합시다’라는 구호만큼 자주 쓰이면서도 모호한 말이 없다. 흔히 일터에서의 존중이라고 하면 웃는 얼굴로 인사하기, 고운 말 쓰기, 상대방의 의견에 경청하기 같은 표면적인 친절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그것이 매일 치열하게 서로의 업무가 맞물려 돌아가는 현장의 갈등과 리스크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친절한 대화 속에서도 미완성된 업무는 발생하고, 상냥한 어조 뒤에서도 작업자는 독박 업무에 시달린다. 사실 일터에서의 진짜 존중은 눈에 보이는 말의 성찬이 아니라, 내가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는 업무의 결과물에서 증명되는 것이다.

[이미지제공=존중 인문학 저자 주민정 ]
여럿이 함께 일하는 조직에는 치명적인 심리적 함정이 하나 존재한다. 집단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날수록 개인이 발휘하는 힘과 책임감이 오히려 떨어지는 ‘링겔만 효과’가 바로 그것이다.
“나 하나쯤 적당히 힘을 빼도 티가 나지 않겠지”
“내가 대충 넘겨도 누군가 다음 공정에서 메우겠지”
라는 무의식적인 방관과 나태함은 조직이 커질수록 도미노처럼 번져나간다. 이러한 방관의 심리가 현장을 지배하는 순간,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춘 기업이라도 기초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 링겔만 효과의 덫을 깨부수는 강력한 현장의 태도가 바로 일본 장인들의 철학인 ‘모노즈쿠리’다.
단 1mm의 오차도 타협하지 않고 혼을 담아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정신이다. 일본 제조업의 정신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이 장인 정신을 오늘날 우리의 조직과 다양한 서비스현장으로 가져오면, 그 의미는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것’을 넘어 인간에 대한 깊은 책임과 존중으로 확장된다.
일터에서 ‘나의 고객’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내 옆에서 사슬처럼 연결되어 나의 결과물을 받아 드는 다음 공정의 동료다.
내가 귀찮다는 이유로, 혹은 바쁘다는 핑계로 슬쩍 방관하고 넘겨버린 1cm의 빈틈은 현장에서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고스란히 다음 동료가 도저히 손쓸 수 없는 리스크이자 독박 업무로 전가된다. 안전선을 침범한 채 대충 쌓아둔 물품들, 규정을 확인하지 않고 밀어 넣은 데이터 한 줄은 다음 작업자의 동선과 시간을 방해하고 밤샘 야근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무기가 된다.
1,400년을 생존한 세계 최고(最古)의 건축 기업 곤고구미의 장인들은 남들이 보지 않는 바닥 밑, 천장 위까지 원칙을 사수했다. 나는 그것이 단순히 건물을 잘 짓겠다는 욕심을 넘어, 이 공간을 마주할 다음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시 내 손을 떠나는 서류 한 장, 내 현장의 직무 하나하나에 모노즈쿠리의 태도를 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맡은 공정을 매뉴얼대로 완벽하게 마감하여 넘기는 것, 그것은 링겔만 효과라는 무기력한 관성에 저항하며 내 동료가 현장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겪지 않도록
지켜주는 가장 실질적인 방어벽이다.

"내가 남긴 결과물이 곧 내 동료의 내일이다."
이 직설적인 명제를 품고 내 업무의 완성도를 지켜내는 것.
말의 성찬을 걷어낸 자리에 완벽한 결과물을 남겨 다음 사람의 통로를 열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치열한 일터에서 증명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연대이자 인간에 대한 깊은 예의다.
[필자 소개]
주민정 | 크레센티아 대표 · 존중 인문학 저자
"존중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21년간 전국 교육 현장에서
리더십·소통·인권감수성을 강의해온 교육 전문가.
기업, 공공기관, 학교 현장을 넘나들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어를 연구한다.
대한인식생명교육 사회적협동조합 이사로서
생명존중 가치를 확산하는 사회적 공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와 인문학으로 존중의 의미를 풀어내는
칼럼 시리즈〈존중 인문학〉을 연재 중이며,
폭력 없는 세상을 향한 연대의 언어를 쓰고 있다.
<존중 인문학> 연대는 폭력을 엄추는 또다른 방식이다
https://www.kcsnews.net/news/4780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