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자지라가 2026년 6월 공개한 탐사 다큐멘터리 'Bodies of Evidence: Israel's Darkest Weapon'(증거가 된 몸들 - 이스라엘의 가장 어두운 무기)는, 이스라엘 구금 시설에 갇혔던 팔레스타인 피구금자들이 수십 년에 걸쳐 고문과 성폭력에 노출됐다는 증언과 인권단체·UN 기구의 조사 결과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국군이 군법과 국제법의 틀 안에서 행동하며 모든 의혹을 철저히 조사한다는 입장을 유지한다.
어떤 전쟁은 국경선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몸 위에서 벌어진다. 총성이 멎은 뒤에도 끝나지 않는 전쟁, 감방의 콘크리트 벽 안에서 소리 없이 이어지는 전쟁이 있다. 2026년 6월, 알자지라가 내놓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전선(戰線)을 카메라 앞으로 끌어냈다. 제목은 'Bodies of Evidence: Israel's Darkest Weapon'. 우리말로 옮기면 '증거가 된 몸들 - 이스라엘의 가장 어두운 무기'다. 57분 남짓한 이 탐사 영상은 이스라엘 군과 정보기관, 교도 당국이 수십 년간 팔레스타인 피구금자들에게 성폭력과 고문, 모멸을 체계적으로 가해 왔다고 인권단체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다룬다.
다큐의 한 대목에서 1983년부터 이 문제를 기록해 온 전문가는 서늘한 한마디를 남긴다. "오늘날 세상이 아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의 5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낡은 비유가, 이 문장 앞에서는 더 이상 비유가 아니게 된다. 카메라가 담아낸 것이 5퍼센트라면, 물밑에 가라앉은 95퍼센트의 어둠은 도대체 어떤 깊이인가. 제작진은 프란체스카 알바네세 유엔 특별보고관, 팔레스타인 인권 변호사, 라지 수라니, 전직 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 등을 증인으로 세웠고, 신원을 가린 생존자들의 입을 빌려 그 깊이를 더듬어 나간다.
증언의 한가운데에는 가자 지구의 한 공무원이 있다. 무함마드 알바크리는 2024년 4월 10일, 라마단이 끝나는 이드 알피트르 명절의 그 날짜를 또렷이 기억한다. 한 달 전 체포된 그는 그날 군인들과 군견에게 둘러싸였다고 말한다. 그는 약 20개월 동안 다섯 곳의 이스라엘 구금 시설을 거쳤다고 증언한다. 옷이 벗겨지고, 눈이 가려지고, 손이 묶인 채 벌어진 일을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풀어놓는다. 차마 문장으로 옮기기 어려운 그 장면에서 가장 잔인했던 것은 어쩌면 폭력 자체가 아니라, 가해자들이 웃으며 그 광경을 촬영했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모욕의 끝, 그 웃음소리가 영상 너머로 들려오는 듯하다.
이 이야기는 한 사람만의 비극이 아니다. 다큐는 이를 우발적 일탈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로 읽어 낸다. 그 구조의 한복판에 '스데 테이만'이라는 이름이 있다. 네게브 사막의 이 군 구금 시설은 가자 전쟁 중 붙잡힌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을 가뒀고, 2024년 7월 유출된 한 영상이 피구금자에 대한 성폭행 정황을 담으면서 거센 파문을 일으켰다. 이스라엘군 검찰은 다섯 명의 예비역을 기소했고, 피해자가 갈비뼈 골절과 폐 천공 등 중상을 입었다는 의료 기록과 보안 카메라 영상이 증거로 제시됐다. 그러나 결말은 무겁게 가라앉는다. 2026년 3월, 이스라엘군은 이 다섯 명에 대한 기소를 취하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인 성 학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군인이나 교도관은 단 한 명도 없다.
이것이 알바크리 한 사람의 분노가 아니라는 점은, 그를 둘러싼 국제기구의 기록들이 증언한다. 2025년 3월 발표된 한 유엔 보고서는 2023년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에 의한 성적·생식적 폭력의 '체계적' 사용 증거를 확인했고, 그해 5월 이스라엘은 분쟁 지역 성폭력 가해 당사자 명단, 이른바 유엔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휴먼라이츠워치와 국제앰네스티, 이스라엘 인권 체 베첼렘, 팔레스타인 인권센터(PCHR) 역시 이스라엘 병력 내에 만연한 성폭력 문화를 지적해 왔다. 2024년 8월 시점에 약 9,5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수감돼 있었고, 그중 약 3분의 1은 기소나 재판 없이 행정 구금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은, 이 어둠의 규모를 가늠하게 한다.
물론 이 사안은 정치적·법적 다툼이 치열한 영역이다. 공정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은 자국군이 군법과 국제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동하며, 제기된 모든 학대 의혹을 철저히 조사한다는 입장을 오랫동안 견지해 왔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성 학대 혐의자들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 중이며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국제 법규를 준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정부조차 이 영상들을 두고 "끔찍하다", "매우 우려스럽다"며 전면 조사를 촉구했다. 다만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균열은 감지된다. 정보기관 수장 로넨 바르는 자국이 제기된 의혹들을 방어하기 어려우며 그중 일부는 정당해 보인다고 한 서한에 적었다고 전해진다. 진실의 무게추가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지 않았다 해도, 이미 충분히 기울어 있는 셈이다.
이 다큐가 끝내 묻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세기 1:27). 그렇다면 한 사람의 몸을 모욕하는 일은 단지 한 개인을 해치는 일이 아니라, 그 몸에 새겨진 거룩한 형상을 짓밟는 일이 된다. 한 다큐 출연자의 말처럼, 한 집단을 향해 성폭력이 조직적으로 자행될 때 그것은 한 민족 자체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된다. 종교도 국적도 깃발도 이 진실 앞에서는 핑계가 되지 못한다. 팔레스타인인이든 이스라엘인이든, 인간의 몸은 정복의 전리품이 아니라 하늘이 맡긴 성소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의 고백으로 이 글을 닫고 싶다. 나는 이 영상을 보며 자주 화면을 멈췄다. 분노 때문이 아니라, 그 웃음소리를 더는 견딜 수 없어서였다. 우리는 너무 자주 "몰랐다"는 말 뒤에 숨는다. 그러나 다큐의 제작진이 수십 명의 생존자에게 다가갔으나 끝내 대부분이 입을 닫았다는 그 침묵이, 실은 가장 큰 고발임을 나는 안다. 말하지 못하는 자의 침묵을 듣는 일, 그것이 글 쓰는 자에게 남은 마지막 책무일 것이다. 나는 오늘 밤 이름 모를 한 사람의 회복을 위해 무릎을 꿇는다. 가해의 손이 아니라 치유의 손이, 웃음이 아니라 눈물의 연대가 그 감방의 어둠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진실은 더디 와도 끝내 온다. 그것을 나는 아직 믿는다. 우리가 본 것이 진실의 5퍼센트라면, 나머지 95퍼센트의 침묵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