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수도 넘본다 북촌 서촌, 권리금 5억 시대 열리며 ‘제2의 젠트리피케이션’ 경고등
외국인 관광객 몰리자 글로벌 브랜드 잇단 진출 임대료 권리금 급등
48년 노포도 문 닫아 “상권은 커지는데 지역 색채는 사라진다” 우려
서울 북촌과 서촌이 외국인 관광객 증가를 발판으로 급격한 상권 재편을 겪고 있다. 한옥과 골목의 정취를 간직한 전통 문화상권에 글로벌 브랜드들이 앞다퉈 진출하면서 임대료와 권리금이 치솟고 있다. 한때 성수동이 겪었던 변화가 이제 북촌과 서촌으로 옮겨붙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경리단길과 가로수길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5일 찾은 서울 종로구 북촌로5가길. 정독도서관 삼거리에서 삼청로 방향으로 이어지는 거리 초입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특히 아디다스 북촌 헤리티지 스토어와 뉴발란스 북촌 허브가 마주 보고 들어선 일대는 사진을 찍거나 매장을 둘러보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은 소규모 카페와 공방, 편집숍이 주를 이루던 골목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디다스를 비롯해 르라보, 말본 등 국내외 유명 브랜드들이 잇따라 입점하며 상권의 성격 자체가 변하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업계는 북촌과 서촌을 서울 관광상권 가운데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으로 평가한다. 한옥의 매력과 함께 경복궁, 광화문 등 주요 관광지와의 뛰어난 접근성을 갖춘 데다 평일과 주말의 구분 없이 방문객이 꾸준히 몰리는 이른바 ‘주 7일 상권’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4월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56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 카드 소비액은 50%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관광객 증가가 곧 상권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북촌의 상승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골프웨어 브랜드 말본의 플래그십 스토어 ‘말본 가옥’이다. 말본은 도산공원과 성수동에 이어 북촌을 새로운 전략 거점으로 낙점했다. 연면적 208㎡ 규모의 2층 건물을 통째로 임차했으며 월 임대료는 약 35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현지 중개업계는 임대료 상승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고 전한다.
북촌에서 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지난해 중순 이후 임대료가 사실상 두 배 가까이 올랐다”며 “성수동 주요 상권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브랜드들이 북촌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100㎡ 이상 규모의 단독 건물을 통임대하려는 수요가 크게 늘면서 조건이 좋은 매물은 집주인이 원하는 가격에 거래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실제 북촌 일대의 한 3층 건물은 연면적 455㎡ 규모에 보증금 10억 원, 월세 5000만 원 조건으로 시장에 나와 있다. 전용면적 기준 3.3㎡당 월 임대료는 36만 원을 웃돈다.
권리금 상승세는 더욱 가파르다. 핵심 입지의 경우 시설과 집기를 제외한 순수 바닥 권리금만 2억~5억 원 수준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소규모 자영업자가 진입하기 어려운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현상은 서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관광상권으로 자리 잡은 서촌 역시 중형 이상 규모의 매물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통의동 대림미술관 인근에 나온 한 양식당 매물은 보증금 6억 원, 월세 4000만 원 수준으로 제시됐으며 권리금 역시 3억~4억 원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경복궁역과 정부서울청사 창성별관을 잇는 자하문로 핵심 상권의 임대료는 3.3㎡당 약 30만 원 수준까지 상승한 상태다.
문제는 급등한 임대료가 상권의 얼굴까지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서촌 자하문로에서 48년 동안 영업을 이어온 백반집 청하식당은 지난 4월 결국 문을 닫았다. 오랜 세월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노포마저 임대료 부담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현재 주변 점포 상당수는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며, 글로벌 브랜드와 고급 편집숍들이 빠르게 자리를 채우고 있다.
오랫동안 상권을 지켜온 자영업자들의 심정은 복잡하다.
한 상인은 “수억 원의 권리금을 받고 나간다고 해도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라며 “오랜 시간 쌓아온 단골과 지역 내 입지를 모두 포기해야 하고 결국 다른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북촌과 서촌의 성장세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지역 고유의 정체성이 사라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조용호 메이트플러스 팀장은 “북촌과 서촌은 관광 수요가 탄탄해 가로수길처럼 대규모 공실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도 “브랜드 중심으로 상권이 재편될 경우 결국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획일적인 거리로 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역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소상공인과 로컬 브랜드가 상권을 키워 놓으면 자본력을 갖춘 대형 브랜드가 뒤따라 진입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며 “로컬 브랜드 지원 정책을 확대하고 있지만 시장 흐름 자체를 바꾸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성수동을 뒤흔들었던 상권 재편의 물결이 이제 북촌과 서촌으로 향하고 있다. 관광객 증가는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수십 년간 지역을 지켜온 상인들과 고유한 골목 문화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성장과 보존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일이 북촌과 서촌이 풀어야 할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문의 : 031-563-2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