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헤란 북부의 어느 벤치, 한 여인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손끝에서 작은 빛이 새어 나온다. 88일 동안 꺼져 있던 빛이다. 2026년 5월 26일, 그날 그녀가 화면을 켠 순간은 단순히 인터넷 신호가 돌아온 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영혼이 다시 세상과 연결된 순간이었고, 침묵의 무덤에서 걸어 나온 나사로의 발걸음 같은 순간이었다.
전 세계의 인터넷 자유, 검열, 사이버 보안을 감시하는 국제 사이버 보안 및 인터넷 감시 단체인 ‘넷블록스(NetBlocks)’는 이날 이란 전역에서 인터넷 접속이 부분적으로 복원되었음을 공식 확인하였다. 차단 88일째, 2,093시간 만의 일이다. 이 기관은 이를 두고 "현대 역사상 가장 긴 전국적 인터넷 차단"이라고 명명하였다. 수단의 35일, 모리타니의 22일을 훌쩍 뛰어넘는 기록이다. 8천만 인구가 디지털 무덤 속에 갇혀 있던 시간, 그것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인간 존엄에 대한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가둘 수 없는 영혼들
이번 차단은 2026년 1월 8일, 페제시키안 대통령 정부하에서 시작되었다. 표면적 원인은 인플레이션 폭증과 통화 붕괴에 항거하는 시위였으나, 그 이면에는 2025년 6월 이스라엘·미국과의 12일 전쟁 이후 깊어진 체제의 균열이 있었다. 정권은 정보의 흐름을 끊는 것으로 분노의 불길을 잡으려 하였다. 그러나 불은 산소가 없으면 잠시 약해질 뿐,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이란 정보통신기술부(ICT) 장관 사타르 하셰미가 직접 인정한 일일 경제 손실은 3,570만 달러였다. 88일을 곱하면 약 18억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 손실이다. 그러나 진짜 손실은 통장이 아니라 마음에서 발생했다. 해외에 있는 자식의 안부를 알 수 없어 밤마다 천장만 쳐다보던 어머니, 화상통화로 손주의 첫걸음마를 보지 못한 할아버지, 그리고 친구의 부고를 한 달 뒤에야 알게 된 청년의 비통함은 그 어떤 GDP 지표로도 측정할 수 없다.
테헤란에 사는 46세의 한 남성은 익명을 조건으로 외신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토로하였다. 그렇다, 연결은 되었으나 여전히 가상 사설망인 VPN을 켜야 한다는 것, 인터넷이 완전히 열린 것이 아니라 단지 완전히 닫혀 있지 않을 뿐이라는 것. 이 한마디 속에 88일을 견딘 한 시민의 피로와 통찰이 응축되어 있다. 자유는 누군가의 시혜로 주어지는 빵 한 조각이 아니라, 마땅히 누려야 할 공기 자체임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셀카 한 장, 그 작고 거룩한 반역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인터넷이 부분 복구되자마자 테헤란과 여러 도시의 시민들이 일제히 인스타그램에 셀카를 올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가벼운 일상의 회복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것은 사실 88일간 강제된 침묵에 대한 가장 조용하고도 단호한 항거였다. "나는 여전히 여기 있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나는 보이고자 한다." 이 무언의 외침은 어떤 거대한 시위 구호보다 더 강렬한 인간 선언이었다.
한 여성 활동가는 X(구 트위터)에 신랄한 풍자를 던졌다. 정권이 '필터넷'을 다시 들여오면서 마치 무슨 위대한 시혜라도 베푸는 듯 호들갑을 떤다는 것이다. 남한과 일본이 그 빠른 인터넷을 자랑하는 동안, 이란 정권은 시민에게 '기본적인 접속' 하나를 허용하는 것조차 거대한 쇼로 만들어버린다는 비판이었다. 그녀의 글에는 분노보다 더 깊은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 자유 앞에서 결코 잊지 못하는 자존감의 회복이었다.
권력의 분열, 그 틈새로 비치는 빛
이번 복원은 결코 매끄러운 결정이 아니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지난달 별도의 인터넷 정책 실무단을 구성한 데 이어, 제1부통령 모하마드 레자 아레프가 "자유롭고 규율된 사이버 공간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X에 적었다. 그러나 같은 날 이란 행정법원은 해당 위원회 설립 명령의 효력을 임시 정지시켰고, 일부 사법부는 복원을 막기 위한 법적 진정을 제기하였다. 토론토 기반 인터넷 자유 단체 ASL19의 페레이둔 바샤르 소장은 뉴욕타임스에 서로 다른 법적 기관들이 모순된 결정을 내리고 있어, 누가 최종 결정권자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고 진단하였다.
이는 단순한 행정 혼란이 아니다. 한 체제 내부에서 두 영혼이 싸우고 있다는 증거다. 한쪽은 통제만이 안전을 보장한다고 믿는 영혼이고, 다른 한쪽은 통제가 결국 자기 발등을 찍을 것임을 예감하는 영혼이다. 그 균열의 틈새로 시민의 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