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 목사 설교가 비추는 핍박 속 믿음과 부활 소망


장재형 목사 설교를 바탕으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환난 속에서 붙든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부활과 재림 소망을 따라 오늘의 교회가 붙들 복음과 은혜의 길, 그리고 고난 속 성경 묵상의 깊은 의미를 차분히 살핍니다.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은 사람은 비로소 하늘의 방향을 묻는다. 단테의 《신곡》이 방황하는 인간의 첫 장면을 어둠의 이미지로 열어 보이듯, 신앙도 때로 가장 흔들리는 자리에서 자신이 붙들어야 할 빛을 발견한다. 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설교가 비추는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로 그런 어둠 속에 서 있었다. 그들은 편안한 조건에서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핍박과 환난의 압력 속에서도 말씀을 성령의 기쁨으로 받아들인 공동체였다.

데살로니가전서 1 2절부터 10절까지의 흐름은 한 교회의 아름다운 미담이 아니다. 바울이 감사하며 기억한 것은 고난이 사라진 결과가 아니라, 고난 한가운데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실제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 본문은 교회가 무엇으로 세워지고 무엇으로 견디는지를 차분히 보여 주는 성경 묵상이다. 복음은 위기 없는 삶을 약속하기보다, 위기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생명을 선물한다.

바울의 감사는 막연한 칭찬이 아니었다. 그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어떤 환경에서 신앙을 지켰는지를 알고 있었고, 그들이 단지 종교적 열심을 보인 것이 아니라 삶 전체의 방향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보았다. 그래서 이 말씀은 오늘의 교회에도 오래 머무를 질문을 남긴다. 우리의 믿음은 편안한 날의 언어인가, 아니면 흔들리는 날에도 하나님께로 향하는 실제 능력인가.

핍박의 밤에 복음은 더 선명해진다

데살로니가는 로마 제국의 질서와 헬라 문화가 깊이 스며든 도시였고,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길 위에 있었다. 그 길은 복음이 전파되는 통로가 되었지만, 동시에 반대와 핍박이 빠르게 번지는 길이 되기도 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이미 매 맞고 갇히는 고난을 겪은 뒤 이 도시에 이르렀고, 회당에서 말씀을 풀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증언했다.

사도행전 17장의 흐름에서 바울의 전도는 단순한 감정적 호소가 아니었다. 그는 그리스도가 왜 고난을 받아야 했는지, 십자가가 왜 실패가 아니라 구원의 길인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가 왜 만민의 소망인지 풀어 보였다. 유대인에게는 걸림돌처럼 보이고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게 들릴 수 있는 복음이 데살로니가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러나 복음이 마음을 깨울수록 반대도 함께 일어났다.

바울과 동역자들은 결국 도시를 떠나야 했고, 갓 태어난 교회는 보호막 없이 환난 속에 남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교회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설립자들이 곁에 없었지만, 그들이 받은 복음은 사람의 말에 머물지 않았다. 환난은 공동체를 흔들었으나, 성령 안에서 받은 큰 확신까지 빼앗지는 못했다.

핍박은 언제나 교회에 두 얼굴로 다가온다. 한편으로 그것은 두려움과 상처를 남기지만, 다른 한편으로 신앙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드러낸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외부의 안전망이 아니라 복음 자체에 뿌리를 내렸고, 그 때문에 고난의 소문보다 더 멀리 믿음의 소문을 퍼뜨릴 수 있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작은 불빛도 멀리 보이듯, 환난 속의 순종은 주변 교회들에게 살아 있는 격려가 되었다.

믿음의 역사가 사랑의 수고로 흐를 때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기억하며 감사한 이유는 그들의 신앙이 추상적인 고백에 머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음은 역사로 나타났고, 사랑은 수고가 되었으며, 소망은 인내로 깊어졌다. 여기서 믿음은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부활의 능력을 실제로 신뢰하는 삶이었다. 사랑은 감정의 온기를 넘어 서로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는 헌신이었다.

장재형 목사 설교는 이 세 단어를 초대교회의 표어로만 남겨 두지 않는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을 오늘의 삶 속에서 붙드는 일이고, 사랑은 헬라와 유대, 귀족과 가난한 이의 경계를 넘어 서로를 품는 수고다. 소망은 상황이 조금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 안에서 역사의 끝을 바라보는 인내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아직 젊은 공동체였지만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었다.

본문은 복음이말로만이른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이 함께 있었다는 고백은, 오늘의 교회가 설교와 말씀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를 묻게 한다. 말은 필요하지만 말만으로는 사람을 세울 수 없다. 전해진 말씀이 삶의 순종으로 이어지고, 공동체 안에서 은혜의 열매로 드러날 때 복음은 정보가 아니라 능력이 된다.

특히 사랑의 수고는 믿음이 개인의 내면에만 갇히지 않게 한다. 고난을 겪는 공동체 안에서 사랑은 추상적 미덕이 아니라 서로를 붙드는 손길이 된다. 누군가의 아픔을 자기 일처럼 짊어지고, 믿음이 약한 이를 기다려 주며, 함께 소망의 방향을 잃지 않도록 돕는 일이 사랑의 실제 모습이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본이 된 까닭도 그들의 고백이 공동체의 삶으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우상을 버린 회개가 순종의 길을 연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변화는 내면의 감동으로 끝나지 않았다. 바울은 그들이 우상을 버리고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말한다. 헬라 문화 속에서 우상을 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 취향을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주인을 바꾸고, 두려움의 방향을 바꾸며, 이전 질서가 요구하던 충성을 내려놓는 결단이었다.

회개는 과거를 후회하는 감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참되신 하나님께 돌아서서 그분을 섬기는 순종으로 이어질 때, 회개는 삶의 방향이 된다. 이 설교가 보여 주는 복음의 은혜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무엇을 버리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시고, 누구께 돌아가야 하는지를 밝히신다.

우상을 떠난 자리는 비어 있는 공허가 아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새로운 질서가 그 자리를 채운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보여 준 순종은 예배의 언어를 바꾸는 데서 끝나지 않았고, 공동체의 삶 전체를 바꾸었다. 하나님께로 돌아선 사람은 더 이상 이전의 두려움과 욕망만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없다.

오늘의 우상도 반드시 조각된 형상만은 아니다. 사람은 안전, 인정, 성공, 두려움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도 마음을 내어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이 말하는 회개는 과거의 한 도시만을 향한 이야기가 아니다. 복음 앞에서 삶의 중심을 다시 묻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로 돌아서는 길은 지금도 신앙의 가장 깊은 출발점이다.

부활과 재림 소망이 오늘을 견디게 한다

본문의 마지막 시선은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소망으로 향한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재림 신앙은 현실을 버리는 도피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시 오실 주님을 믿었기에 오늘의 환난을 견딜 수 있었고, 장래의 심판과 구원 앞에서 현재의 삶을 거룩하게 붙들 수 있었다. 소망은 미래를 향한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오늘을 견디게 하는 힘이었다.

이 설교가 경계하는 것도 균형을 잃은 종말 의식이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다는 것은 일상을 포기하거나 두려움에 갇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더 사랑하고, 더 성실히 견디며, 서로를 격려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부활 신앙은 죽음과 압박이 마지막 말이 아님을 말하고, 재림 소망은 역사의 끝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고백하게 한다.

부활과 재림은 서로 떨어진 주제가 아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를 믿기 때문에 성도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마지막 절망에 갇히지 않는다. 또한 다시 오실 예수를 기다리기 때문에 현재의 불의와 고통이 역사의 최종 결론이 아님을 붙든다. 이 소망은 고통을 가볍게 여기게 하지 않지만, 고통이 신자의 마지막 이름이 되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본문에서 성경 묵상은 현실을 부정하는 위로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더 깊이 보게 하는 눈이다. 고난은 분명 아프고, 핍박은 공동체를 약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고난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실제로 드러나는 자리로 바뀐다.

오늘의 교회도 데살로니가 교회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편안한 날의 언어로만 믿음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흔들리는 날에도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남기고 있는가. 장재형 목사 설교가 남기는 질문은 조용하지만 피할 수 없다. 복음이 정말 우리 안에 능력으로 임했다면, 환난의 밤에도 우리의 삶은 누구를 향해 빛나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성도는 다시 말씀 앞에 선다.

 


장재형 박사는 현장 선교와 디지털 미디어 사역을 통해 세계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해 왔으며, 그 사역의 열매로 지상명령에 헌신하는 많은 이들이 세워졌다. 이러한 선교적 비전을 바탕으로 올리벳은 처음에 선교사 훈련을 위한 작은 교회 학교로 출발했다. 이후 보다 체계적인 신학 교육과 선교 인재 양성을 위해 2000년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 올리벳신학대학 및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학교가 성장하면서 장 박사는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 Olivet University를 공식 설립했다. 올리벳은 샌프란시스코의 다양성과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신학을 중심으로 음악, 저널리즘, 예술디자인, 기술 분야까지 교육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또한 윌리엄 와그너 박사를 비롯한 교수진을 영입하며 교육 역량을 강화했고, 2005년에는 옛 UC 버클리 다운타운 익스텐션 캠퍼스로 이전해 대학으로서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2006년 장 박사는 선교 사역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총장직을 데이비드 제임스 랜돌프 박사에게 이양하고, 국제총장으로서 세계 선교 사역을 이끌었다. 이후 Olivet University 2009년 기관 인증을 받았으며, 언어교육대학과 경영대학을 추가하고 학위 과정과 국제 협력 관계를 확대하면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독교 교육기관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장재형목사 공식 홈페이지 www.davidjang.org


장재형목사 설교 동영상 




작성 2026.05.28 08:03 수정 2026.05.2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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