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를 향한 신뢰가 평생을 지나 노년의 마지막 순간까지 변하지 않는다면, 그 삶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처럼, 평생 한결같은 걸음으로 주님의 뒤를 따랐던 노인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날 인물은 사도 요한의 숨결을 그대로 이어받았던 속사도, 서머나의 폴리갑(Polycarp, 69?~155?)입니다.
그는 앞서 소개해 드린 이그나티우스 감독과 막역한 신앙의 동지였습니다. 이그나티우스가 로마로 압송되던 길에 잠시 서머나에 들러 폴리갑을 만나 위로를 얻었고, 떠나면서 그에게 소아시아 교회들을 잘 돌봐달라는 눈물의 편지를 남기기도 했었죠. 폴리갑이 평생을 바쳐 지킨 서머나는 현재 터키의 이즈미르(Izmir)라는 아름다운 항구도시입니다.
오늘날 이즈미르는 현대적인 도시로 변모했지만, 여전히 역사 속에서 기독교의 모진 핍박을 견뎌낸 순교의 땅으로 기억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죽도록 충성하라"며 위로하셨던 바로 그 서머나 교회의 중심에 폴리갑이 서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정부는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라고 압박하며, 기독교인들을 향해 사나운 맹수처럼 으르렁거렸습니다. 여든여섯의 백발이 성성한 노인 폴리갑이 체포되어 원형 경기장으로 끌려왔을 때, 로마의 총독은 그의 나이를 가엾게 여겨 회유하려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리스도를 저주하고 황제의 천재(Genius)에게 맹세해라. 그러면 살려주겠다."
그 고요하고 엄숙한 공기 속에서 폴리갑은 역사에 길이 남을 대답을 돌려줍니다.
"내가 86년 동안 그분을 섬겼으나, 그분은 한 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하신 적이 없소. 그런데 내가 어찌 나를 구원하신 내 왕을 저주할 수 있겠소?"
그에게 신앙은 거창한 이론이나 딱딱한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8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묵묵히 동행하며 경험한 '인격적인 신뢰' 그 자체였습니다. 주님이 단 한 번도 자신을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기에, 자신 또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 신뢰를 저버릴 수 없다는 고백이었습니다. 불길이 그의 몸을 감싸 안았을 때, 경기장에는 고기 타는 냄새가 아니라 마치 빵을 구울 때 나는 달콤한 향기와 귀한 향료의 냄새가 가득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타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로 피어났던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폴리갑의 순교는 너무 멀고 극적인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는 황제 숭배를 강요받지도 않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불길 속에 던져지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일상 속에서도 '작은 순교'와 '신실함의 시험'은 날마다 찾아옵니다.
직장에서 남들 다 하는 작은 부정이나 편법을 눈감아주면 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적당히 거짓말을 섞어가며 내 이익을 챙기고 싶은 유혹도 생기죠. 세상은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이번 한 번만 눈 딱 감아, 그러면 살기 편해져." 그 순간이 바로 우리가 황제의 조각상 앞에 서는 순간입니다. 그때 폴리갑의 말을 우리 삶에 이렇게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수님이 지금까지 내 삶을 돌보시고 선하게 인도하셨는데, 내가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그분의 정직함을 배신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이죠.
거창하게 목숨을 버리는 것만이 순교가 아닙니다. 내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정직을 선택하는 것, 억울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내게 맡겨진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 그것이 바로 현대판 '의도된 신실함'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풍기는 정직과 사랑의 냄새가 바로 세상 사람들의 코끝을 스치는 달콤한 빵 냄새이자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루를 살아낼 때, 우리의 미래는 조금 더 밝고 따뜻해질 것입니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