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트레스(Stress), 넌 누구냐?
여러분은 ‘스트레스(stress)’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십니까?
아마 대부분은 업무 과중, 산적한 집안일, 마감 압박,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짜증 같은 부정적 상황을 떠올릴 것입니다. 반면 이공계 전공자라면 조금 다른 의미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응력(應力, stress)’입니다. 이는 외부에서 힘이 가해질 때 재료 내부에서 그 힘에 저항하려는 힘이 발생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이 분야와 무관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선 개념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스트레스’라는 용어는 언제부터 쓰이게 된 것일까.
사실 스트레스라는 말은 라틴어에 기원을 두고 오래전부터 사용돼 왔으며, 19세기에는 공학과 재료역학 분야에서 ‘응력’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이후 현대적 의미의 스트레스, 즉 외부의 요구와 압박, 변화에 대해 몸과 마음이 적응하려 반응하는 상태라는 개념은 1936년 한스 셀리에(Hans Selye)가 의학과 생리학 분야에 도입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공학에서 말하는 스트레스와 현대인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단지 같은 단어일 뿐, 전혀 다른 개념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1980~90년대 대학가 주변에는 학생들과 직장인을 위해 백반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있었습니다. 식당 이용자들은 하숙과 자취의 중간을 선택한 사람들로 보시면 됩니다. 저 역시 자주 가던 단골 식당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식당 주인아주머니께서 화가 난 얼굴로 두 동강 난 식칼을 보여주시며 “장사꾼에게 속았다”고 하소연하셨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주머니는 시장에서 식칼 장수가 칼의 성능을 보여주겠다며 나무와 고기뼈를 연달아 내리쳐 두 동강 내는 모습을 보고는 “저 정도면 튼튼하고 믿을 만한 칼”이라 생각해 구입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상황이 이해됐습니다.
그 식칼은 손님들에게 ‘잘 들고 튼튼한 칼’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평소 가정에서는 거의 하지 않을 정도의 과도한 충격을 반복적으로 견뎌야 했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금속 내부에는 이미 미세한 균열이 누적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칼은 끊임없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셈입니다.
결국 그 칼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아주머니 손에 들어왔고, 식당에서 닭 손질을 하다가 얼마 사용하지도 못한 채 두 동강 나버렸습니다.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결국 제 기능을 상실한 것입니다.
사람도 다르지 않습니다. 거친 세상살이와 반복되는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그 압박은 몸과 마음속에 조금씩 축적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질병이나 심리적 붕괴, 심지어는 생명의 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을까. 일반적으로 1950~60년대에는 의학·학술 용어로 사용되다가, 1970년대에는 언론을 통해 확산되었고, 1980년대 이후 일상어로 대중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조상들이 스트레스를 모르고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유사한 개념이 있었습니다. 바로 ‘화병(火病, Hwabyung)’입니다. 화병의 증상은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신체적 증상과 매우 흡사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화병이 1994년 미국 정신의학회의 DSM-IV(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등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 정신과 의사들이 한국계 이민 여성들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서구 문화권에서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정서와 신체 증상을 발견했고, 이를 문화 관련 증후군(culture-bound syndrome)의 하나로 분류했던 것입니다.
왜 이런 증상들이 한국계 이민 여성들에게 나타났을까.
당시 많은 한국 여성들은 평등이라는 가치와 함께 개인주의를 표방하는 미국 사회에 살고 있었지만, 여전히 한국적 문화와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억울함과 분노, 슬픔과 스트레스를 느끼더라도 가족과 인간관계를 위해 참고 견디는 것이 여성의 미덕이라 여겼습니다. 그렇게 억눌린 감정은 ‘한(恨)’이라는 정서로 축적되었고, 결국 화병이라는 형태로 드러났던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울화병’이나 ‘화병’이라는 말은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종종 어르신들의 입에서 들을 수 있는 단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사라졌고, 그 자리를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스트레스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전까지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 속에 살고 있는지조차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스트레스가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스트레스’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부터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하나의 상태로 규정하고, 증상을 자각하며, 스스로를 스트레스 속에 놓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우리는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알게 되면서부터, 비로소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김정인(金正仁)
중앙대학교 대학원 심리학과 박사과정 졸업(산업 및 조직 심리학 박사)
직장인 스트레스와 성격을 주제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음
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
중앙대학교, 성균관대학교에서 연구교수와 강사로 활동함.
현) 젠더심리연구소 소장이며, 성인지 정책과 폭력예방통합교육 전문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