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는가

인권은 사람보다 구조를 본다

혐오는 왜 늘 ‘옆 사람’을 향하는가

'엘리베이터 웹툰’이 보여준 혐오의 메타포

 

언젠가 SNS에서 널리 공유되던 한 웹툰이 있었다.

한 회사 건물 안에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가 설치된다. 사람들은 분노한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데 누군가는 빠르고 편하게 이동하고, 누군가는 기다려야 하는 구조 자체가 불공정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 사람들의 시선은 분명 회사와 구조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는 영리했다.
비판을 정면으로 해결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씩 이용 대상을 늘리기 시작했다.

 

“남성 직원도 이용 가능.”

 

그러자 사람들은 회사가 아니라 서로를 보기 시작했다.

 

왜 남자만 먼저냐고 싸웠고, 왜 여자만 배려받느냐고 분노했다. 이후 노약자, 장애인, 임산부까지 대상이 확대되자 갈등은 더욱 커졌다. 사람들은 ‘누가 더 먼저 탈 자격이 있는가’를 놓고 서로를 혐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무도 회사를 욕하지 않았다.

 

이 웹툰이 강렬했던 이유는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오늘날 사회갈등의 작동 방식을 정확하게 메타포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사회의 많은 혐오는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문제의 본질은 자원의 부족과 구조의 불평등인데, 사람들은 점점 구조보다 ‘옆 사람’을 더 경계하게 된다.

 

취업이 어려우면 청년과 중장년이 싸운다.
복지가 부족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갈등한다.
안전이 불안하면 이주민과 지역 주민이 충돌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여성과 남성, 세대와 세대, 노동자와 노동자가 서로를 향해 분노한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싸우는 이유의 상당수는 ‘누군가 너무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보다 ‘대부분이 충분히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가깝다.

 

엘리베이터가 하나뿐인 구조는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서로에게 묻는다.

 

“왜 저 사람은 타는데 나는 못 타?”

 

결국 혐오는 문제 해결의 방식이 아니라, 문제의 방향을 바꾸는 장치가 된다.

 

혐오의 가장 무서운 점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삶과 맥락을 지워버리고, 성별·나이·지역·장애·직업 같은 단 하나의 특성만 남긴다. 그리고 그 집단 전체를 하나의 이미지로 묶어버린다.

 

그 순간 사회는 개인을 이해하지 않는다.
대신 분류하고, 구분하고, 경계한다.

 

그래서 혐오는 언제나 쉬운 언어를 사용한다.

 

‘요즘 애들은…’
‘남자들은 원래…’
‘여자들은 다…’
‘노인들은…’
‘장애인은…’

 

이 말들은 설명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사고를 멈추게 만드는 문장들이다.

 

우리는 점점 더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혐오는 세상을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그리고 단순한 이해는 쉽게 분노로 이어진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사람들이 서로 싸우기 시작하면 정작 구조는 안전해진다.
불평등을 만든 시스템은 사라지고, 갈등만 남는다.

 

엘리베이터 웹툰 속 임원들이 유리창 너머로 싸움을 바라보던 장면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사람들은 아래에서 서로를 향해 소리치지만, 구조를 만든 사람들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본다.

 

현대 사회의 혐오 역시 종종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된다.
그리고 경쟁하도록 설계된 공간 안에서 살아간다.

 

더 빨리 올라가야 하고, 더 먼저 차지해야 하고, 더 많은 것을 확보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타인을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다.

 

그때 혐오는 매우 효율적인 감정이 된다.

 

타인을 이해할 필요가 없고, 대화할 필요도 없으며, 복잡한 구조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혐오는 결코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지 못한다.

 

혐오는 언제나 더 약한 사람에게 향하고, 결국 공동체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누구도 안전하지 않은 사회가 된다.

 

그래서 인권은 단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인권은 사회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미워하고 있는가.
그리고 왜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었는가.

 

어쩌면 우리가 정말 봐야 할 것은 엘리베이터 앞의 다른 사람이 아니라, 왜 엘리베이터가 부족하게 설계되었는가라는 질문인지도 모른다.

 

혐오는 늘 사람을 향하게 만든다.
하지만 인권은 구조를 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차이가 사회의 방향을 결정한다.


  
※ 본 칼럼은 세계인권선언 및 인권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해 작성되었으며, 특정 세대·성별·집단에 대한 비난이 아닌 인간의 존엄과 상호 존중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 작성됐습니다.

 



■ 칼럼니스트 소개

 

‘국민에게 공감을 전하는 강사’를 뜻하는 국공선생 김범일 / 법정교육연구소 대표

 

김범일 대표는 공공기관·학교·기업 등을 대상으로 인권, 혐오표현 예방, 성희롱·성폭력 예방, 장애인 인식개선, 청렴,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등을 진행하며, 일상 속 언어와 관계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책임을 성찰하는 교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혐오는 생각 없이 반복되는 말에서 시작되고, 존중은 한 사람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차별과 배제의 언어를 성찰하고 서로의 존엄을 지켜내는 시민의 감각을 현장 중심 교육으로 풀어내고 있다.

 

또한 혐오표현을 단순한 말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와 권력, 인간 존엄의 문제로 바라보며, 표현의 자유와 책임의 균형 속에서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의 언어를 고민하는 강연과 칼럼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작성 2026.05.24 12:10 수정 2026.05.24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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