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일상 속에서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그냥 농담이었어.”
“원래 그런 사람들 아니야?”
“생각을 말한 것뿐인데 왜 예민하게 받아들여?”
그러나 말은 결코 가볍게 흩어지는 소리가 아니다. 인간의 언어는 누군가를 이해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존재를 사회 밖으로 밀어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혐오표현은 단순히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사람들을 공동체 바깥으로 밀어내고, 존엄의 자리에서 배제하려는 사회적 폭력이다.
우리는 흔히 혐오를 거창한 악의 형태로 상상한다. 하지만 현실 속 혐오는 대개 아주 평범한 얼굴로 나타난다. 편견 섞인 농담, 무심코 던진 비하, 특정 집단을 하나로 묶어 단정하는 말들. 문제는 그 말들이 반복될수록 사회속에서 자라게 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불편했던 표현도 자꾸 들으면 익숙해지고, 익숙함은 결국 타인의 아픔에 둔감한 사회를 만든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경계가 세계의 경계”라고 말했다. 결국 우리가 어떤 말을 허용하는가는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된다. 누군가를 향해 “수준이 낮다”, “비정상이다”, “원래 그렇다”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낙인찍고 있는 셈이다. 혐오표현은 의견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가치를 줄 세우는 차별의 언어다.
더 위험한 것은 혐오표현이 사람 사이의 관계만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감각을 병들게 한다는 사실이다. 특정 대상에 대한 조롱과 멸시가 일상이 되면, 우리는 인간을 존중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평가와 배제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결국 혐오는 한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공동체 전체의 윤리를 무디게 만든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 역시 이 지점을 경고한다. 거대한 폭력은 언제나 극단적인 모습으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생각 없이 따라 하는 말, 익숙해서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표현, 침묵 속에서 반복되는 차별이 결국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우리는 종종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한다. 물론 자유는 민주사회의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자유는 책임과 함께 존재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타인의 존재를 짓밟을 자유까지 자유라고 부를 수는 없다. 표현의 자유는 서로를 침묵시키기 위한 권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약속이어야 한다.
그래서 혐오표현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말조심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다. 우리는 말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이 말은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말인가, 상처 주려는 말인가?”
“나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편견을 반복하고 있는가?”
“이 표현은 사람을 연결하는가, 아니면 밀어내는가?”
결국 혐오표현의 반대편에는 단순히 ‘예쁜 말’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는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는 존중의 감각이 있다. 언어는 누군가를 무너뜨리는 무기가 될 수도 있고, 서로를 지켜내는 울타리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말을 선택하는가는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서로를 함부로 지워내는 사회가 아니라, 다름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끝까지 지켜내는 사회. 혐오표현을 멈추는 일은 바로 그 사회를 향한 가장 기본적인 출발이다.
※ 본 칼럼은 세계인권선언 및 인권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해 작성되었으며, 특정 세대·성별·집단에 대한 비난이 아닌 인간의 존엄과 상호 존중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 작성됐습니다

■ 칼럼니스트 소개
‘국민에게 공감을 전하는 강사’를 뜻하는 국공선생 김범일 / 법정교육연구소 대표
김범일 대표는 공공기관·학교·기업 등을 대상으로 인권, 혐오표현 예방, 성희롱·성폭력 예방, 장애인 인식개선, 청렴,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등을 진행하며, 일상 속 언어와 관계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책임을 성찰하는 교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혐오는 생각 없이 반복되는 말에서 시작되고, 존중은 한 사람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차별과 배제의 언어를 성찰하고 서로의 존엄을 지켜내는 시민의 감각을 현장 중심 교육으로 풀어내고 있다.
또한 혐오표현을 단순한 말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와 권력, 인간 존엄의 문제로 바라보며, 표현의 자유와 책임의 균형 속에서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의 언어를 고민하는 강연과 칼럼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