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음력 사월 초파일이 되면 전국의 사찰과 거리는 화려한 연등의 물결로 넘쳐난다. 수많은 인파가 등불을 밝히며 석가모니 탄생을 축하하는 모습은 오늘날 한국 불교의 상징적인 풍경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이 익숙한 종교 축제의 커튼을 걷어내면 불교라는 외래 사상이 유입되기 훨씬 이전, 대륙을 호령했던 고대 한민족의 숨결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무심코 바라본 초파일의 등불 속에는 사실 인도의 성자가 아니라 고대 제천행사의 뜨거운 맥박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역사적 편린을 추적해 보면 사월 초파일은 해모수 단군이 북부여를 세우고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연 날이다. 고대인들에게 건국은 하늘의 뜻이 지상에 구현된 성스러운 사건이었으며, 온 나라 백성이 모여 밤새 불을 밝히고 춤과 노래로 감사를 표했던 '관등경축(觀燈慶祝)'의 실체가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고구려의 동맹이나 동예의 무천처럼 대륙을 경영하던 고대 국가들의 제천행사는 국가적 결속을 다지는 엄숙한 정형이었다. 외래 종교인 불교가 삼국 시대에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지배층은 민중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영리한 선택을 한다. 민족의 가슴속에 깊이 박혀 있던 북부여의 건국 기념일을 석가탄신일이라는 명절과 의도적으로 결합한 것이다. 문화적 수용 과정에서 알맹이는 유지된 채 껍데기만 불교 색채를 입은 셈이다.
오늘날 대다수 대중이 초파일을 순수한 불교만의 명절로 인식하는 현실은 안타깝다. 이는 한국 고대사의 무대를 한반도 내부로 가두려는 반도사관의 무의식적 발로이자, 스스로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축소하는 결과이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등 기존 정사 체계가 가진 한계를 넘어 민족 고유의 전통 연대기를 복원해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서구 사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인 성탄절을 기념하면서도 그 내면에 흐르는 기독교 이전의 고대 유럽 전통문화와 동지 축제의 유산을 잃지 않았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역시 사월 초파일의 관등 풍습을 다각도로 조명해야 한다. 불교적 의식의 숭고함을 존중함과 동시에 그 뿌리에 도도히 흐르는 북부여의 건국 정신과 대륙적 기상을 읽어내야 한다.
음력 사월 초파일의 관등 풍습은 불교라는 종교적 틀에만 가두어 둘 수 없는 고대 한민족의 거대한 문화적 증거이다. 반도사관의 좁은 시야를 탈피하여 민족 고유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 축제를 재해석할 때, 비로소 고대 대륙을 경영했던 한민족 역사 정체성의 온전한 회복이 가능해진다. 이제 등불을 바라보며 석가모니의 자비와 함께 대륙을 호령했던 북부여의 웅혼한 기상을 동시에 가슴에 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