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사님, 20년 전 그 사건 기사, 아직도 검색창 맨 위에 뜹니다. 저 이제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데, 아이가 제 이름을 검색해 볼까 봐 매일 밤 잠을 못 잡니다. 저, 그때 죗값 다 치렀고 열심히 살았잖아요. 왜 디지털 세상은 저를 용서하지 않나요?“
강연회가 끝나고 찾아온 한 남자의 창백한 얼굴을 잊을 수 없다. 그는 20년 전, 철없던 시절 저지른 한 번의 실수로 인한 범죄 경력이 여전히 인터넷 뉴스 기사에 실명으로 남아, 그의 현재 삶을 끊임없이 과거의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었다. 35년 경찰 현장에서 수많은 이들의 '사건 종료'를 목격했지만, 디지털 세상은 결코 사건을 종료시키지 않았다. 그 캐비닛은 영원히 열려 있었고, 과거의 낙인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영원히 끝나지 않는 디지털 감옥이 되어 있었다.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 인터넷상에서 자신과 관련된, 그러나 더 이상 타인에게 보이고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정보에 대해 타인의 접근을 차단하거나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다. 우리는 이 권리를 '망각'이라는 치유의機能を 상실한 디지털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새로운 인간 존엄의 권리라 불러야 한다. 이것이 35년 치안 행정 전문가가 목격한 2026년 대한민국 인권의 서늘한 화두다.
디지털 무덤: '망각'이라는 문명의 축복이 사라진 곳
오늘날 우리는 일상의 모든 순간을 디지털 공간에 기록하며 산다. 무심코 올린 소셜 미디어의 게시글, 댓글, 사진, 그리고 사건·사고 기사까지. 이 모든 기록은 영구적으로 저장되고, 복제되며, 0과 1의 데이터 정육점에서 해체되어 '콘텐츠'라는 차가운 이름으로 소비된다. 기술의 진보는 우리에게 '영생'이라는 환상을 주었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기억'이 아니라 '적절한 망각'이었다.
인간의 뇌는 고통을 잊고, 과거를 희석하며 새로운 내일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망각'이라는 고귀한 치유 기능을 설계했다. 범죄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재범을 방지하고 사회에 복귀하게 만드는 핵심 힘은 '죗값을 치렀다'는 사법적 판단뿐만 아니라, 사회가 그의 과거를 '적절히 잊어주고' 새로운 인격으로 받아들여 줄 때 발생한다.
하지만 디지털 무덤은 인간을 용서하지 않는다. 수십 년 전의 실수, 철없던 시절의 낙서, 그리고 죗값을 치른 범죄 경력까지, 모든 것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디지털 감옥에 갇혀 피해자의 영혼을 영원히 끝나지 않는 스펙터클한 영화처럼 관람하게 만든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던 '탈인격화'가 딥페이크나 현장 관도에서 인간을 픽셀로 해체했다면, '디지털 무덤'은 인간을 과거의 시신으로 박제하여 영원히 존엄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알 권리와 잊힐 권리의 충돌: 정의의 저울은 누구를 겨누는가
상황이 이토록 참담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와 사법 시스템은 이 새로운 형태의 폭력 앞에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현행법은 물리적인 폭력이나 상해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만, '잊힐 권리'와 같은 비가시적인 존엄권 침해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 권리'나 '표현의 자유'라는 얄팍한 명분 뒤로 숨어 뻔뻔한 궤변을 늘어놓는다.
물론 알 권리는 민주 사회의 근간이다. 하지만 극도의 공포와 고통에 처한 이의 동의 없는 기록, 죗값을 치르고 사회에 복귀한 이의 과거, 그리고 10대 시절의 무심한 낙인까지, 이 모든 것이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35년간 몸담았던 경찰 조직을 떠나며 내 뇌리에 가장 끔찍하게 각인된 장면은 훼손된 시신이 아니었다. 피 흘리며 쓰러진 피해자의 훼손된 존엄을 짓밟으면서까지 더 자극적인 앵글을 찾으려 발을 구르던 구경꾼들의 텅 빈 동공이었다. 딥페이크는 이 텅 빈 군중의 관음증을 AI로 자동화했다면, 디지털 무덤은 이 군중의 관음증을 영원히 끝나지 않는 사냥터로 만든다.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더욱 절망적이다. "그러게 왜 소셜 미디어에 얼굴 사진을 함부로 올려서 표적이 되냐",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친구의 단호한 한마디, 피해자를 향해 손 내미는 사회적 연대가 그 어떤 방화벽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제 진짜 '인간의 눈'을 맞출 시간
기술의 칼날 앞에서 우리의 인권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다. 하지만 절망의 벼랑 끝에 선 이들을 구원해 낸 것은 최첨단 기술이 아니라, 기꺼이 곁을 내어주고 손을 잡아준 누군가의 따뜻한 체온이었다.
우리는 이제 디지털 공간에 떠도는 얼굴들이 단순한 픽셀의 집합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고 아들이며, 피와 눈물을 가진 존엄한 인격체임을 다시 한번 자각해야 한다.
딥페이크 조작물을 우연히 접했을 때, 그것을 '가십거리'나 '농담'으로 소비하는 대신 단호하게 거부하고 신고하는 용기. 타인의 고통을 팝콘 삼아 즐기는 디지털 방관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 그것이 바로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인권 감수성이다.
35년의 공직 생활을 갈무리하며 나는 확신한다. 현장의 비릿한 피 냄새를 씻어내는 것이 강제적인 법 집행만은 아니었듯, 딥페이크가 만든 디지털 지옥을 부수는 것 역시 고도화된 안티-AI 기술만은 아닐 것이다.
스마트폰 녹화 버튼을 누르기 전, 딥페이크 조작 버튼을 누르기 전, 단 1초만 생각하라. 타인의 영혼을 베는 칼날에 기꺼이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픽셀 너머에 있는 진짜 사람의 존엄을 지켜내는 방패가 될 것인가. 당신이 그 영상을 끄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무너져가던 우리의 인권은 비로소 디지털의 차가운 벽을 뚫고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전준석 칼럼니스트는 경찰학 박사이자 35년간의 경찰 생활을 총경으로 마무리한 치안 행정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권성장진흥원 대표로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 헌신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주요 기관에서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성인지감수성, 4대폭력 예방, 자살 예방 및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인권 예방, 리더십 코칭 등 폭넓은 주제로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는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범죄심리학’, ‘다시 태어나도 경찰’, ‘그대 사랑처럼, 그대 향기처럼’, ‘4월 어느 멋진 날에’ 등이 있다. 경찰관으로 35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 침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국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차별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인권이 성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을 연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