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력 4월 8일, 전국의 사찰에 연등이 걸린다. 사람들은 이날을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신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날이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한민족에게 특별한 날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음력 4월 8일은 천제(天帝)의 아들, 북부여(北扶餘)의 시조 해모수(解慕漱) 단군이 이 땅에 내려와 새 나라를 여신 날이었다. 오늘날의 연등 행사는 본래 그날을 경축하는 관등경축(觀燈慶祝)의 불빛에서 시작되었다.
환단고기가 전하는 역사에 따르면 단군조선은 2,096년 동안 47분의 단군이 통치했다. 마지막 47대 고열가(高列加) 단군을 끝으로 단군조선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고열가 단군 57년, 임술(壬戌)년 4월 8일, 해모수 단군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북부여를 창건했다. 서기로는 기원전 239년의 일이다. 환단고기 북부여기(北扶餘紀) 상(上)은 그 순간을 이렇게 전한다. 해모수 단제(檀帝)는 자태가 용맹하게 빛났으며 신과 같은 눈빛은 사람을 꿰뚫어 바라보는 이마다 과연 천왕랑(天王郞)이라 할 만하다고 했다. 그는 스물세 살의 나이로 오우관(烏羽冠)을 쓰고 용광검(龍光劍)을 차고 오룡(五龍)의 수레를 타고 내려왔다. 500명의 종자를 거느리고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저녁에는 하늘로 오르며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 태백일사(太白逸史)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역시 이를 명확히 뒷받침한다. 고구려의 선조가 해모수로부터 나왔으며, 해모수 단군이 처음 내려온 것이 임술년 4월 초파일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민족은 예로부터 광명(光明)을 숭상했다. 환국·배달·단군조선으로 이어지는 1만 년의 역사 속에서 하늘의 밝은 빛을 섬기고 그 광명을 이 땅에 펼치는 것이 한민족 정신문화의 근본이었다.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건국일을 기리는 관등경축은 그 광명 숭상의 정신이 구체적인 축제로 표현된 것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제의 아들을 경축하며 온 나라에 등불을 밝히던 그 전통이, 수백 년 뒤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관등(觀燈)에서 연등(燃燈)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불빛은 그대로였고 하늘을 향한 간절함도 그대로였다. 바뀐 것은 그 불빛이 향하는 이름이었다.
석가모니의 탄신일로 알려진 음력 4월 8일이 본래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건국일이었다는 사실은, 이날의 연등 문화가 불교 이전부터 이 땅에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이 또한 전편에서 살펴본 것처럼 환웅전이 대웅전이 된 것과 같은 흐름이다. 해모수 건국일을 기리던 관등경축의 빛이 석가탄신일의 외피를 입게 된 것이다.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오룡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 4월 8일, 그날의 등불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순간을 경축하는 광명의 빛이었다. 한민족은 그 빛을 수천 년 동안 지켜왔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하늘을 향해 불을 밝히는 그 마음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초파일 연등 아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단지 석가모니의 탄신만이 아니다. 광명을 숭상하며 하늘의 뜻을 이 땅에 펼쳐온 한민족의 긴 역사가 그 연등 불빛 속에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 마고성으로부터 환국·배달·조선을 거쳐 면면히 흘러온 삼신(三神)의 광명이 내 안에, 우리 안에 살아 있다. 안경전 종도사님은 이렇게 전한다. 선정화(仙定花)를 받아 온몸을 밝히면 누구나 깨달음의 인간이 된다. 이제 그 광명을 밝힐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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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일특집 3부작 완결]
① 초파일, 우리는 누구에게 절하고 있는가
② 대웅전의 비밀, 환웅에서 미륵까지 끊어진 빛
③ 초파일의 진실 — 연등 아래 2,300년을 기다린 빛의 역사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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