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산회상(靈山會上), 석가모니가 대중 앞에서 말없이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였다. 수천 명의 제자 가운데 그 뜻을 알아챈 이는 단 한 명, 마하가섭(摩訶迦葉)뿐이었다. 가섭은 미소로 응답했고 석가모니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있으니 그것을 그대에게 전한다." 이것이 불교가 전하는 염화미소(拈華微笑)다. 말로는 전할 수 없는 진리의 정수를, 꽃을 통해 단 한 사람에게만 건넸다는 이야기.
그 꽃이 무엇이었는가. 불교는 오랫동안 이것을 깨달음의 상징이라는 관념으로 설명해왔다. 그러나 증산도의 가르침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그 꽃은 관념이 아니라 실재(實在)하는 빛꽃이었다. 천상에서 내려오는 조화(造化)의 빛꽃, 우주의 신성한 생명 에너지가 꽃의 형상을 이룬 것이었다. 안경전 종도사는 이를 명확히 밝힌다. "지금 불가에는 그 맥이 끊어져서 꽃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맥이 끊어진 것은 단지 불교 안에서만의 일이 아니었다. 더 오래되고 더 깊은 단절이 있었다.
증산도 도전(道典) 1편에는 상제님께서 직접 붓으로 쓰신 글씨가 전한다. 네 글자, 웅절경속(雄絶勁俗). 도전 4편 133장에는 상제님께서 어린 호연(浩然)에게 직접 하신 말씀이 전한다. "네가 하느님에게다 목숨을 바쳐서 넌 선매숭자다." 종도사는 이 말씀을 풀어 주셨다. 선매숭자(先梅崇子)는 선천(先天) 세상을 마무리하고 후천 5만 년 신선 조화 대광명, 삼신망량(三神罔兩) 조화신선 도통 세계를 여는 선(仙)의 맥을 전하는 존재다. 그 선(仙)의 맥이 오랜 세월 끊어져왔기 때문에 상제님이 친필로 쓰신 것이 바로 웅절경속(雄絶勁俗)이다.
웅(雄)은 커발환 환웅천황(居發桓 桓雄天皇)의 웅(雄)이다. 절(絶)은 단절이다. 웅절(雄絶)은 "환웅천황의 조화 망량 신선 문화의 맥이 끊어졌다"는 선언이다. 환국(桓國)에서 전수된 신선법은 배달과 단군조선 초기까지 이어졌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역적이 일어나고 점점 중국화되는 과정 속에서 그 문화의 맥이 끊어졌다. 경속(勁俗)에서 속(俗)은 풍속이며, 마고성(麻姑城)으로부터 환국·배달·조선으로 내려온 정통 조화신선 도통맥 그 자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경(勁)은 굳셀 경 자다. 강력하게,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도통맥이 다시 나온다는 뜻이다. 웅절경속 네 글자를 온전히 읽으면 이렇다. 환웅천황의 조화 망량 신선 문화의 맥이 끊어졌으나, 이제 상제님의 무극대도 도법으로 그 정통 도통맥이 굳세고 강력하게 영원히 다시 잇는다.
염화미소에서 가섭으로 이어지던 빛꽃의 맥이 불가에서 끊어진 것은, 그 뿌리 자체가 이미 더 일찍 단절되었기 때문이었다. 상제님은 그 뿌리의 단절을 네 글자에 담으셨고, 동시에 그 복원을 친필로 선언하셨다. 그 뿌리는 얼마나 오래된 것인가. 안경전 종도사가 전하는 역사는 2만 2천 년 전을 가리킨다. 인류 문명의 새벽을 여신 마고 할머니가 신선 수련을 하는 이들에게 내려주던 꽃이 바로 선려화(仙呂花)였다. 흰색·붉은색·파란색이 하나로 합쳐진 무지개빛 백광의 꽃으로, 육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조화의 빛꽃이다. 선려화는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증표로 내려지던 것이었으며, 웅절경속의 속(俗)이 가리키는 그 도통맥의 가장 오래된 원형이다.
이 전통은 환국·배달·단군조선의 1만 년 광명 문화를 관통해 흘렀다. 단군세기(檀君世紀) 13세 흘달 단군 조(條)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국자랑(國子郞)이 밖에 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天指花)를 꽂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들을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 불렀다고. 신라의 화랑(花郞) 제도 역시 이 천지화랑에서 유래했다. 화랑과 원화(源花), 남녀 모두에게 붙여진 꽃(花)이라는 이름은 선려화의 문화가 신라 시대까지 역사 속에서 살아 전수되었음을 증언한다.
그러나 신라 이후, 나라가 중국화되고 불교가 이 땅의 신앙을 덮어가는 과정에서 환웅천황으로부터 내려온 신선법의 날줄은 마침내 끊어졌다. 대웅전이라는 이름이 환웅전을 덮은 것처럼, 빛꽃의 뿌리 또한 긴 세월 속에 가려졌다. 웅절(雄絶)이었다.
한국의 사찰을 돌아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석가모니는 앉아 있다. 그러나 전국 곳곳에서 홀로 서 있는 부처상들을 만나게 된다.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 부여 대조사의 석조미륵, 익산 고도리의 석불, 그리고 전국 수백 곳의 미륵불. 그들은 모두 서 있다.
불교 전통에서 서 있는 부처는 미래의 부처, 아직 오지 않은 분을 가리킨다. 석가모니는 앉아서 이미 이룬 깨달음을 전하지만, 미륵(彌勒)은 서서 이 땅에 오실 그날을 기다린다. 한국인들은 수천 년 동안 들판과 산길 어귀에 서 있는 돌부처를 세웠다. 그것은 단순한 민간 신앙이 아니었다. 한민족은 알고 있었다. 마고성으로부터 흘러내려온 정통 조화신선 도통맥, 그 굳센 경속(勁俗)의 맥을 완성할 분이 반드시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을. 그리고 그분은 앉아 계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전북 김제 금산사. 미륵전(彌勒殿) 안에 11.82미터의 거대한 미륵불이 서 있다. 한국 최대의 미륵불상이자, 한국에서 유일하게 3층 법당 안에 봉안된 서 있는 부처다. 신라 진표율사(眞表律師)가 평생을 미래의 부처가 오실 것을 믿으며 세운 그 미륵불 앞에서, 상제님이 가을 우주의 도통문을 여셨다.
도전은 그 순간을 이렇게 전한다. 음력 4월 13일 자시(子時), 상제님이 금산사 입구 돌무지개문(홍예문虹霓門) 위에 앉아 계시다가 성도 김형렬을 부르셨다. 호롱불을 들고 산을 넘어 찾아온 김형렬에게 "아, 자네 왔는가?" 하시며 탁 뛰어내리셨다. 이것이 미륵불이 가을 우주의 도통문을 열어 놓고 인간 문명 속에 들어오셔서 새 판을 여시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어린 호연에게 전하신 그 말씀이 이 자리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목숨을 바쳐 선매숭자의 선(仙)의 맥을 이을 이들을 통해, 마고성에서 환국·배달·조선을 거쳐 흐르다 끊어진 정통 조화신선 도통맥이 금산사 미륵불 앞에서 다시 힘차게 열렸다. 웅절(雄絶)의 시대가 끝나고, 경속(勁俗)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한민족이 수천 년 동안 전국의 논두렁과 산 어귀에 미륵불의 염원을 담아 세웠던 그 미륵불이 직접 이 땅에 오셨다. 상제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내가 미륵이니라." 증산 상제님이 바로 그 미륵불이시다. 2만 2천 년 전 마고 할머니의 선려화로부터 환웅천황의 우주 광명 선법으로 이어져 온 그 빛꽃을, 이제 이 시대 모든 사람이 직접 받을 수 있다. 상제님께서 열어 놓으신 후천 5만 년 조화신선 도통의 문, 그 첫걸음이 바로 선정화(仙定花)를 받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