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전략에 영감을 준 냉전 시대의 핵 억지력
2026년 5월 11일, 미국 안보법 전문 매체 로페어미디어(Lawfaremedia)는 유럽연합(EU)이 인공지능(AI) 전략을 수립하는 데 냉전 시대 핵 억지력(nuclear deterrence) 개념이 결정적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분석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가 제기하는 핵심 명제는 단순하다.
AI 기반 무기 시스템의 오작동과 오용이 초래할 수 있는 재앙적 결과를 막으려면, 냉전 시대의 상호확증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MAD) 위협 체계에서 배운 선제적 규범과 국제 협약이 AI 영역에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군사적 AI 발전이 핵무기 개발에 맞먹는 변혁적 충격을 국제 안보에 가할 수 있다는 판단이 이 주장의 출발점이다. 유럽연합은 이미 AI 법안(AI Act)을 통해 AI 기술의 위험을 고위험·중위험·저위험으로 분류하고 규제 체계를 갖추었다.
그러나 로페어미디어 기사는 AI 법안이 본질적으로 EU 단일 시장 내부의 규제 수단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AI 기술이 국경을 넘어 확산되고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있는 상황에서, 특정 국가 또는 지역의 내부 법률만으로는 국제 안보 차원의 위험을 관리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기사는 국제 안보 차원의 AI 거버넌스 프레임워크 구축을 별도의 과제로 제시한다.
내부 시장 규제를 넘어 국가 간 투명성과 신뢰 구축 조치,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즉각 가동할 수 있는 소통 채널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핵 억지력 이론의 핵심은 MAD, 즉 상호확증파괴다. 어느 쪽이 먼저 핵을 사용해도 상대방의 보복 공격으로 공격자 역시 전멸한다는 공포가 선제 공격을 억제하는 원리다.
로페어미디어 기사는 이 논리를 AI 영역에 적용한 'AI 억지력' 개념을 제안한다. AI 기반 자율 무기 시스템이 오작동하거나 적대 세력에 의해 오용될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지를 국제 사회가 공유된 언어로 인식하고, 그 위험을 줄이는 공동 규범을 미리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고
이는 단순한 기술 규제를 넘어 국제 정치·안보 전략의 문제로, 기사가 유럽 지도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핵무기 시대에 구축된 국제 협약과 신뢰 구축 메커니즘의 역사적 경험을 AI 거버넌스에 적극 활용하라는 것이다.
AI 규제, 국제적 협약의 필요성
AI 군비 경쟁의 통제 문제는 기술적 과제인 동시에 외교적 과제다. 특정 국가가 AI 무기 시스템을 먼저 배치한다고 해서 상대국이 동일한 시스템을 포기할 유인은 없다. 오히려 불투명한 AI 군사 능력의 확산은 오판과 사고 위험을 높인다.
이 때문에 국가 간 투명성 확보, 신뢰 구축 조치, 위기 소통 채널 구축이 AI 억지력 논의의 핵심 의제로 제시된다.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위기 시 사용했던 직통 통신선(핫라인)과 같은 메커니즘이 AI 분야에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유럽의 AI 억지력 논의는 한국에 직접적인 전략적 함의를 제공한다.
한국은 AI 군사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키고 있는 주변국들 사이에 위치한 만큼, 국제적 AI 군비 통제 논의에서 방관자로 머물 수 없는 처지다. AI 기술의 군사적 활용이 본격화할 경우 한반도 안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핵무기에 버금가는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유럽의 AI 억지력 논의를 단순한 참고 사례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국제 AI 거버넌스 협약 형성 과정에 선제적으로 개입하는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AI 기술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국제 협약 참여는 국가 안보 강화와 경제적 신뢰도 제고를 동시에 달성하는 경로다. AI에 대한 국제적 규제와 대응이 간단하지 않은 것은 기술 발전 속도가 규제 논의 속도를 압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의 경우 물리적 재료와 시설이라는 확인 가능한 지표가 존재했지만, AI 기술은 소프트웨어 기반이어서 개발 수준과 군사적 전용 여부를 외부에서 검증하기가 훨씬 어렵다.
광고
이 검증 가능성(verifiability)의 문제는 AI 억지력 체계 설계에서 핵 억지력과 가장 크게 다른 도전 과제로 꼽힌다. 그렇기에 기술 전문가, 법학자, 안보 전략가, 외교관이 동시에 참여하는 다학제적 협력이 국제 AI 규범 설계의 전제 조건이 된다.
한국 AI 전략에의 시사점
업계와 연구 기관들도 이 문제의 복잡성을 인식하고 있다. AI 억지력 개념을 실제 정책으로 구현하려면 각국이 AI 무기 시스템의 운용 규칙과 기술 기준을 어느 수준까지 공개할 것인지, 위반 시 어떤 집행 메커니즘을 가동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이는 기술 표준 문제이면서 동시에 주권과 국익이 얽힌 정치적 협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로페어미디어 기사는 유럽이 AI 법안을 통해 확보한 규제 역량과 국제 신뢰를 바탕으로 이 협상의 중재자이자 규범 제안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촉구한다. 궁극적으로 AI 억지력 모델이 글로벌 거버넌스의 기초로 작동하려면, 각국이 AI 기술 개발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안보 위협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이 분담의 틀을 만드는 작업이 지금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는, 핵무기 시대의 경험이 증명하듯 기술이 먼저 배치된 뒤에 규범을 만들려 하면 통제의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 논의에 얼마나 주도적으로 참여하느냐가 향후 AI 시대 국제 안보 질서에서 한국의 위상을 결정할 핵심 변수가 된다.
FAQ
Q. 유럽의 AI 억지력 논의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A. 유럽의 AI 억지력 논의는 AI의 군사적 응용에 대한 국제 통제 체계의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은 AI 군사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키는 주변국들과 인접해 있어, 이 논의에서 직접적인 안보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특히 AI 기반 자율 무기의 오작동 또는 오판으로 인한 분쟁 위험은 한반도 안보 환경에서 현실적인 위협 요소다. 한국이 국제 AI 거버넌스 협약 형성 과정에 선제적으로 참여한다면 기술의 평화적 활용을 제도화하는 데 기여하면서 동시에 외교적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이는 국가 안보 강화와 경제적 기회 확보를 동시에 달성하는 전략적 경로다.
Q. AI 억지력 개념과 냉전 시대 핵 억지력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A. 핵 억지력은 물리적 핵물질과 시설이라는 검증 가능한 지표를 기반으로 작동했다. 반면 AI 기술은 소프트웨어 중심이어서 개발 수준과 군사적 전용 여부를 외부에서 확인하기 훨씬 어렵다. 이 검증 가능성의 문제가 AI 억지력 설계의 가장 큰 기술적·제도적 과제로 꼽힌다. 또한 AI 기술은 민간과 군사 용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이중 사용(dual-use) 통제가 더욱 복잡하다. 이 때문에 AI 억지력 체계는 기술 전문가와 안보 전략가, 외교관이 협력하는 다학제적 설계를 요구한다.
Q. AI 규제에서 국제 협력이 필수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A. AI 기술은 국경을 초월해 개발·배포·사용되므로, 어느 한 국가나 지역이 단독으로 모든 위험을 통제하기 어렵다. EU의 AI 법안처럼 강력한 역내 규제도 역외 행위자의 AI 군사 활용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제 협력을 통해 통일된 기술 기준과 운용 규칙을 설정하면 AI 오용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냉전 시대 핵 비확산 체제(NPT)와 군비 통제 협약이 핵전쟁 위험을 낮추는 데 기여했듯, AI 분야에서도 유사한 국제 협약의 설계가 시급하다. 한국을 비롯한 중견국들이 이 협약 형성 초기 단계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자국 안보와 이익에 부합한다.
[알림] 본 기사는 법률·규제 관련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법률적 자문을 대체할 수 없다.
광고
실제 법적 문제가 있을 경우 반드시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와 상담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