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재미로 만든 거죠. 유명인들 얼굴로 그러니까, 나도 내 얼굴이나 아는 사람 얼굴 넣어서 친구들이랑 단톡방에서 보려고 한 것뿐이에요. 진짜 사람인 줄은 몰랐어요.”
최근 딥페이크(Deepfake) 범죄 현장에서 검거된 피의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뱉어내는 변명이다. '재미', '유머', '가짜'라는 한없이 가벼운 단어들 뒤로, 그들이 저지른 행위의 비극적 본질은 너무나도 쉽게 은폐된다.
35년 경찰 현장에서 살인, 강도, 폭력 등 수많은 끔찍한 범죄의 민낯을 마주해 왔지만, 인공지능 기술이 불러온 이 서늘한 '디지털 폭력'만큼 내 등줄기를 오싹하게 만든 것은 드물었다. 물리적인 흉기나 혈흔은 없지만, 피해자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놓는다는 점에서 이는 명백하고도 잔혹한 살인 행위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환한 미소, 친구들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클릭 몇 번과 프롬프트 입력 한 줄이면 끔찍한 성적 착취물이나 범죄의 도구로 둔갑한다. 이것은 단순히 '가짜 이미지'를 합성하는 기술적 유희가 아니다.
한 인간의 고유한 정체성과 존엄을 무단으로 복제하여 능욕하고, 사회적 인격을 완벽하게 말살시키는 비가시적인 '살인 병기'의 탄생이다. 기술은 빛의 속도로 진화하는데 인간의 윤리는 여전히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는 참담한 현실, 이것이 치안 행정 전문가가 목격한 2026년 대한민국 인권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다.
시각적 살인: 인간의 존엄이 데이터 정육점에서 해체되다
딥페이크 범죄의 가장 무서운 점은 인간을 철저하게 '물딩화(物化)'한다는 데 있다. 생성형 AI 알고리즘의 눈에 비친 인간의 얼굴은 더 이상 기쁨과 슬픔, 고유한 역사를 지닌 인격체가 아니다.
그저 이리저리 자르고 붙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0과 1의 데이터 조각, 즉 '픽셀'에 불과하다. 가해자들은 딥페이크 제작 프로그램을 마치 '디지털 정육점'처럼 활용하며, 타인의 얼굴과 신체를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 무참히 해체하고 조립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겪게 되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자신의 얼굴이 조작된 끔찍한 영상이 유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피해자의 일상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된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신을 향한 조롱처럼 느껴지고, 스마트폰 알림음 하나에도 심장이 내려앉는 극도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가해자는 가상의 공간에서 '가짜'를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피해자가 겪는 공포와 수치심, 그리고 사회적 단절은 너무나도 생생하고 파괴적인 '진짜' 현실이다.
심리학적으로 딥페이크 가해자들은 모니터라는 방패 뒤에 숨어 심각한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을 경험한다. 자신이 조작하는 대상이 실제 숨을 쉬고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게임 속 캐릭터를 조종하듯 죄책감 없이 범죄를 저지른다. 이는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던 '탈인격화'의 연장선이자, 기술이라는 마취제가 인간의 공감 능력을 어떻게 마비시키는지 보여주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다.
가해자의 '유머'라는 방패, 무너진 사법의 골든타임
상황이 이토록 참담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와 사법 시스템은 이 새로운 형태의 폭력 앞에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현행법은 물리적인 폭력이나 상해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만, 딥페이크와 같은 디지털 성범죄나 인격권 침해에 대해서는 여전히 해석이 분분하고 처벌이 미약한 경우가 많다. "진짜가 아닌 합성일 뿐인데 무엇이 문제냐", "유포하지 않고 혼자 봤으니 무죄 아니냐"는 가해자들의 뻔뻔한 궤변이 법망의 허점을 파고든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피해자를 향한 사회적 2차 가해다. "그러게 왜 소셜 미디어에 얼굴 사진을 함부로 올려서 표적이 되냐"는 식의 비난은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고 영혼을 두 번 죽이는 행위다.
흉기를 든 강도에게 당한 피해자에게 "왜 밤길을 걸었냐"고 탓하지 않으면서, 유독 디지털 범죄에 있어서만 피해자에게 원인을 전가하는 잔인한 잣대가 적용된다. 범죄의 원인은 사진을 올린 피해자가 아니라, 타인의 사진을 훔쳐 조작한 가해자의 뒤틀린 욕망에 있음에도 말이다.
한번 온라인 공간에 유포된 딥페이크 영상은 사실상 완전한 삭제가 불가능에 가깝다. 디지털 세계에는 '잊힐 권리'가 사치처럼 여겨질 만큼, 복제와 재유포의 속도가 사법 당국의 수사 속도를 압도한다. 수사관들이 밤낮없이 불법 사이트를 폐쇄하고 서버를 추적해도, 독버섯처럼 피어나는 영상의 확산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물리적 범죄의 골든타임이 수분 내에 환자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라면, 디지털 범죄의 골든타임은 영상이 군중의 화면으로 퍼져나가기 전 이를 차단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번번이 이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
픽셀 너머의 진짜 인간을 지켜내는 디지털 연대
딥페이크라는 첨단 기술의 칼날 앞에서 우리의 인권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다. 그러나 기술이 인간을 짓밟는 무기로 전락했다고 해서 절망하기엔 이르다. 이 서늘한 디지털 폭력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백신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아날로그적인 가치, 바로 '인간에 대한 존중과 연대'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디지털 공간에 떠도는 얼굴들이 단순한 픽셀의 집합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고 아들이며, 피와 눈물을 가진 존엄한 인격체임을 다시 한번 자각해야 한다. 딥페이크 조작물을 우연히 접했을 때, 그것을 '가십거리'나 '농담'으로 소비하는 대신 단호하게 거부하고 신고하는 용기. 타인의 고통을 팝콘 삼아 즐기는 디지털 방관자 되기를 거부하는 것. 그것이 바로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인권 감수성이다.
35년의 공직 생활을 갈무리하며 나는 확신한다. 현장의 비릿한 피 냄새를 씻어내는 것이 강제적인 법 집행만은 아니었듯, 딥페이크가 만든 디지털 지옥을 부수는 것 역시 고도화된 안티-AI 기술만은 아닐 것이다. "그건 장난이 아니라 범죄야"라고 말해주는 친구의 단호한 한마디, 피해자를 향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손 내미는 사회적 연대가 그 어떤 방화벽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오늘 당신의 스마트폰에 뜬 누군가의 조작된 이미지를 마주하기 전, 1초만 생각해보라. 타인의 영혼을 베는 칼날에 기꺼이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픽셀 너머에 있는 진짜 사람의 존엄을 지켜내는 방패가 될 것인가. 당신이 그 영상을 끄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무너져가던 우리의 인권은 비로소 디지털의 차가운 벽을 뚫고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전준석 칼럼니스트는 경찰학 박사이자 35년간의 경찰 생활을 총경으로 마무리한 치안 행정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권성장진흥원 대표로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 헌신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주요 기관에서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성인지감수성, 4대폭력 예방, 자살 예방 및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인권 예방, 리더십 코칭 등 폭넓은 주제로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는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범죄심리학’, ‘다시 태어나도 경찰’, ‘그대 사랑처럼, 그대 향기처럼’, ‘4월 어느 멋진 날에’ 등이 있다. 경찰관으로 35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 침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국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차별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인권이 성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을 연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