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사식당 왕돈까스’의 신화, 다시 시작점에 서다
[더인사이트뉴스 박주환 기자]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와 냉혹한 외식 시장 속에서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이 뜨거운 주방을 지켜온 이가 있다. 1980년대 서울의 고즈넉한 경양식 집에서 요리 인생의 첫발을 뗀 이후, 대한민국 '기사식당 왕돈까스'라는 독보적인 장르를 개척한 주인공, 바로 정승훈 셰프다.
그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을 넘어, 한 시대를 풍미한 미식 문화를 정립해온 장인이다. 성북동과 돈암동 등지에서 시작된 그의 돈까스 철학은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K-푸드의 숨은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몇 년간 그는 남해의 푸른 바다가 품은 통영과 거제에서 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왔다. 거제도에서 운영한 레스토랑을 통해 그는 40년 내공의 조리 기술에 남해의 신선한 식재료를 접목하며, 한층 더 깊어진 '정승훈식 미식'을 완성했다.
이제 정승훈 셰프는 거제에서의 성공적인 여정을 뒤로하고, 수도권에서 새로운 레스토랑 오픈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 선보일 다이닝 공간은 40년의 조리 철학과 남해에서 체득한 식재료의 이해가 집약된, 셰프 정승훈의 제2막을 알리는 결정적인 신호탄이 될 것이다.
◆왕돈까스 신화의 서막, 그리고 멈추지 않는 도전
정승훈 셰프의 이름 앞에는 항상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훈장처럼 따라붙는다. 1985년, 서구식 식문화가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격변의 시기, 그는 경양식의 세계에 입문했다. 당시만 해도 돈까스는 기념일이나 특별한 날, 격식 있는 레스토랑에서나 맛볼 수 있는 귀하고 값비싼 음식이었다.
그의 인생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외식사를 바꾼 결정적인 순간은 1991년에 찾아왔다. 정 셰프는 당시 성북동과 남산 일대를 가득 메웠던 기사식당 문화에 주목했다. “바쁜 기사님들이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든든하고 맛있게 드실 수 있는 메뉴가 무엇일까?”라는 고민 끝에 그는 기존의 작은 돈까스를 얇고 크게 펴낸 ‘왕돈까스’를 기사식당에 최초로 도입했다.
그 결과는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접시를 가득 채운 압도적인 크기와 한국인의 입맛에 최적화된 고소한 특제 소스는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이는 곧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한 '왕돈까스 열풍'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대중 미식 문화의 한 축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고 ‘미식의 품격’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5성급 호텔 VIP 전담 요리사로 활동하며 최정상급 요리 기술과 서비스 정신을 몸소 익혔고, 이후 약 40여 개의 매장을 직접 오픈하고 컨설팅하며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모두 ‘줄 서서 먹는 대박집’의 반열에 올렸다. 이는 결코 우연이나 행운이 아닌, 철저한 시장 분석과 맛에 있어서만큼은 결코 타협하지 않는 그의 철칙이 빚어낸 필연적인 결과였다.
◆식재료는 요리사의 양심, 타협 없는 장인의 철학
정승훈 셰프의 주방에는 절대 어겨서는 안 될 엄격한 금기 사항들이 존재한다. 그 중 가장 핵심은 바로 ‘냉동고기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수많은 프랜차이즈가 원가 절감과 관리의 편의성을 위해 냉동육을 선택할 때, 그는 묵묵히 제 갈 길을 갔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돈까스는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주셨던 생애 첫 외식의 설렘이며, 누군가에게는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나는 따뜻한 위로다. 정승훈 셰프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를 넘어, '추억의 맛'이라는 보이지 않는 공간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건축가와도 같다.
“요즘은 가공 기술이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냉동육은 해동 과정에서 육즙이 빠져나가고 고기 고유의 풍미가 죽는다. 40년을 매일 고기를 만졌지만, 신선한 냉장육이 주는 그 찰진 탄력은 그 어떤 기계나 기술로도 대체할 수 없다”
그는 지금도 매일 아침 엄선된 흑돼지 냉장육의 상태를 직접 확인한다. 기계로 고기를 일률적으로 눌러 펴는 편리함 대신, 직접 망치를 들고 고기를 두드리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한다. 일정한 힘과 리듬으로 섬세하게 두드려진 고기는 육질이 부드러워지면서도 씹는 맛을 잃지 않는 최상의 상태가 된다.
돈까스의 심장이라 불리는 소스 역시 그의 자존심이다. 정 셰프는 시중의 기성 소스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사과, 배, 양파 등 수십 가지의 신선한 채소와 과일, 그리고 그만의 비법 육수를 배합해 오랜 시간 은근하게 끓여낸 소스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깊은 감칠맛을 낸다. 식사 후에도 속이 편안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정성과 천연 식재료가 가진 힘이다.
◆요리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정승훈 셰프의 행보는 앞으로 대한민국 외식산업이 나아가야 할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프랜차이즈들이 명멸하는 격변의 시장 속에서 그가 '왕돈까스의 전설'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본질과의 타협 거부’였다.
효율성과 수익성만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냉동육을 멀리하고 당일 생산을 고수하는 그의 고집은 얼핏 미련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미련한 고집이야말로 그의 매장을 단순한 식당이 아닌, 하나의 미식 브랜드이자 지역의 명소로 격상시킨 핵심 동력이었다.
“화려한 조리 기술이나 마케팅이 앞서는 시대지만 손님들은 이 음식이 나를 위해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아니면 단순히 이윤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단번에 안다. 요리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주방이 아무리 덥고 힘들어도 내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고기를 두드리고 소스를 저어야 한다”
◆전통과 전통이 만나 세계로 향하다. 안심촌농원과의 새로운 여정
40년 간 본질과 타협하지 않았던 정승훈 셰프의 고집은 이제 새로운 지향점을 향하고 있다. 그 행보의 일환으로 정 셰프는 지난 5월 7일 경기도 연천에 위치한 ‘안심촌농원’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미식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연천의 청정 자연 속에서 전통 방식의 장류를 계승하고 있는 안심촌농원과의 만남은 정 셰프가 추구해온 ‘식재료에 대한 결벽증적 철학’과 궤를 같이한다. 정 대표는 10년 이상 발효시켜 깊은 풍미를 완성한 장을 활용해 프리미엄 소스를 개발하고 이를 통한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 셰프의 비법 레시피에 안심촌농원의 깊은 장맛이 더해진 소스는,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K-소스’의 탄생을 예고한다. 가장 한국적인 식재료로 서양식 돈까스의 품격을 완성하겠다는 그의 구상은, 40년 전 왕돈까스로 대중 미식의 문을 열었던 그가 세상에 던지는 또 다른 도전장이다.
“음식의 생명은 소스이고, 그 소스의 깊이는 결국 우리 땅에서 나는 정직한 재료와 시간에 있다. 안심촌농원의 고집스러운 전통 장맛은 내가 오랜 시간 찾아 헤맨 맛의 ‘마지막 퍼즐’과 같다. 이 깊은 한국의 맛을 녹여내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프리미엄 소스를 완성하겠다”
시대를 초월하는 정통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뜨거운 화기 앞에 서는 정승훈 셰프. 안심촌농원과의 협력을 통해 지역 농가와의 상생은 물론, 한국의 맛을 세계에 알리는 전도사로서 그의 뚝심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이 기사는 본지 공식 블로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