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를 찾아서 - 울산 울주군

일제가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으나 해방 후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한 학암 이관술

 

상처 입은 학암이관술 비 -약산소식지

 

 1900년 4월 26일은 독립운동가 학암 이관술 선생님이 태어난 날이다날짜는 조금 지났지만 늦게나마 미안한 마음을 담아 글을 써 보려고 한다.

 

 이관술 독립운동가는 찾아갈 때마다 미안하다독립운동 공적과 비교하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제대로 기리는 장소가 없다한국인들은 독립운동가에 대해서 박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일부 유명 독립운동가는 제대로 대접을 그나마 받고 있지만무수히 많은 독립운동가는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관술 독립운동가처럼 일제강점기라도 사회주의 사상과 관련이 있거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자는 역사에서 지워버리려고 한다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이 왜 그런 사상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윤리나 도덕이 시험용이 아닌 생각하는 힘을 키우려면 정말 좋은 역사적 사례가 많은데 그냥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의 많은 학자가 서구 특히 미국 학문과 사례는 많이 활용하면서 한국의 사례는 잘 활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그것이 한국이 새로운 사상을 낳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고 있다한국과 별로 맞지 않는 남의 문화 이론을 가져와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학자가 주류인 것을 볼 때마다 자생적 학문을 하려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안재성 작가의 경성 트로이카’ 책을 통해 이관술을 알게 되어울산시 울주군 입암마을 이관술 생가를 주소만 가지고 무작정 찾아간 적이 있다다행히 지도에 공적비가 있어서 그것을 먼저 찾고 생가를 찾아 한참 헤매었다.

 다행히 공적비 앞에 사시는 나이 많은 어른께서 도와주셔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현재 이관술의 집은 다른 사람이 살기에 들어가 볼 수 없다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볼 뿐이다.

 

 공적비도 임시 장소로 먼 친척의 밭 한쪽에 놓은 것이라고 하셨다원래는 선바위가 보이는 곳에 놓여 있다가 상이군인들이 훼손하고 땅에 묻어버렸다고 한다어두운 시절이 지나고 그의 공적을 잘 아는 이들이 다시 파내어 지금의 자리에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다시 찾아갔을 때 그 어르신 집은 전과 달리 담장을 쳐서 못 들어가게 막아버렸다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지만남의 집이니 들어가지 못했다잠시 기다렸지만 사람이 없어서 물어보지는 못했다.

 공적비는 한국 역사처럼 상처가 나 있다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말이 생각나는 모습이다해방 후 독립운동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으니독립운동가가 저런 대접을 받는구나 싶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79년만에 무죄판결 -약산소식지

 

 이번에 가니 무죄판결이 났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일제강점기 혹독한 고문에도 살아남은 이관술 지사였다그런데 해방 후 정부 모함에 걸려 위조지폐 사건으로 대전형무소에 투옥되었다그리고 6.25 전쟁 중 골령골에 끌려가 집단 학살을 당했다당시 많은 독립운동가가 좌우로 갈라진 가운데 대전형무소에 수용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를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형무소가 해방 후에도 독립운동가를 가둔 안타까운 역사의 현장이다현재 대전형무소는 터만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말 국내에서 공산주의 사상에 바탕을 두고 독립운동을 했던 경성 트로이카 조직의 또 다른 핵심 인물로 이재유가 있다이재유는 혹독한 고문 끝에 폐병을 앓다가 독립운동을 얼마 남기지 않은 1944년에 사망했다.

 

 그리고 박차정의사’ 기사 편에서 언급했던 박영출 독립운동가가 이관술가 이재유를 지키기 위해 모진 고문을 견디다 사망했다박영출 독립운동가는 사회주의 사상을 가졌다고 분류되고 그래서인지 해방 후 존재하지 않는 독립운동가로 취급했다

 

 박영출 독립운동가 묘가 기장에 있다고 해서 찾다가 들어가는 입구 길이 막혀서 포기했던 적이 있다박영출 독립운동가는 장산 촛불 시위를 고등학교 때 주도할 정도로 어린 나이부터 독립운동했던 인물이다.

 이관술과 박영출은 그나마 기릴 곳이라도 있지만 이재유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일제가 두려워했고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던 독립운동가를 한국인은 잘 알지 못한다해방 후 역사를 알려야 할 사회지도층이 묻어 버렸기 때문이다중세가 암흑에 묻혀 있던 것처럼 독재 시절 많은 독립운동가가 암흑에 묻혀 있었다.

 

 그러나 몇몇 뜻있는 분들이 연구해서 한 분씩 세상에 나올 때마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정부로부터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가 18,763이다우리는 과연 이 분 중 몇 명이나 알고 있는가하다 못해 우리 지역 독립운동가는 몇 명이나 알고 있는지 생각해 볼 때인 것 같다.

 

이관술 독립운동가

 

 


79년만에 이관술 무죄
 

골령골 집단 학살

 

 

이재유 독립운동가

 

대전 형무소

 

작성 2026.05.08 10:14 수정 2026.05.08 13:25

RSS피드 기사제공처 : 약산소식지 / 등록기자: 허예주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