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용담정 입구 수운 최제우 동상 -약산소식지 허예주 기자
1923년 5월 1일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를 위한 날을 만들었다. 그 해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 단체 색동회와, 어린이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기도 했다.
어린이날이 생겼을 때는 일제강점기로 아이들뿐 아니라 여자나 신분이 낮은 사람도 함부로 대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라는 아이들을 부르는 말도 만들고 날도 만들었다. 당시 아이들은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했다. 성년이 되기까지 부르는 이름도 딱히 없던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수운 최제우가 세운 동학은 달랐다. 1860년 4월 5일에 만들어진 동학은 해월 최시형을 거쳐 의암 손병희로 전수된다. 손병희는 어지러운 동학 상황을 정리하며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3대 손병희 사위가 방정환 선생님이다.
동학은 주요 사상은 수운 최제우의 ‘시천주’로 시작해서 의암 손병희의 ‘인내천’이라는 사상으로 정리된다. 시천주는 모든 이가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 우주에 있는 만물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기에 모든 사물을 공경해야 한다고 본다.
인내천은 사람이 곧 하늘이다. 한 명의 사람이 하나의 우주를 품고 있는 소중한 존재로 보았다. 여기서 사람은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나 똑같이 평등하게 하나의 우주를 갖고 있는 존재로 보았다. 그래서 동학에서는 아이들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말하며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했다.
이런 사상은 더 나아가서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존중심을 가르치기도 한다.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다루지 말라는 것은 동물에도 조심스럽게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동학의 시원지 용담정에 갔을 때 ‘알리는 말씀’을 무시하고 열심히 잡기 놀이에 몰두하는 모자를 보았다. 어머니와 어린 아들 둘은 곤충 채를 휘두르며 열심히 곤충을 채집하고, 국립공원 계곡물에 들어가 열심히 무언가를 잡고 있었다.
‘알리는 말씀’은 입구부터 주요 지점마다 네 개 정도가 설치되어 있었다. 성지 수련 도장인바 네 가지 사항을 지켜달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그중 2번째가 ‘성역 내에서는 경건하고 성숙한 자세로서 순례 또는 참배하여야 합니다.’ 이런 알림판은 무시한 채 아이들은 무언가를 채집하기 바빴고, 어머니는 사진 찍기 바빴다.
아이들이 무언가에 호기심을 가지고 채집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장소라는 문제가 있다. 그들이 열심히 채집 활동하는 곳은 어느 종교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인에게 개방했지만 성스럽게 여겨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한국에서 천도교는 유명세 없는 소수가 믿는 종교이지만, 종교이기는 하다. 그리고 그 종교를 믿는 사람으로서 소중한 곳일 거로 생각한다. 그런 약속을 지킬 줄 아는 것이 문명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믿지 않는 종교라도 누군가는 믿을 수 있고, 그 믿음을 존중할 줄 아는 것이 인류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곳은 국립공원이었다. 국립공원의 생태계 유지를 위해 도토리 하나도 주워 가지 못한다. 멸종 위기 생물을 지키고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최소 국립공원 내에서는 생물에 관해서 채집 등을 못하게 하고 있다. 이런 기본 상식은 지켜줬으면 좋겠다.
어린이날은 노동절과 날짜가 겹치면서 5월 5일로 바뀌었다. 노동절이 올해부터 공식 휴일이 되었다. 그전에는 일부만 쉬고 노동자 취급을 못 받는 이들을 쉬지 못했다. 이름도 근로자의 날로 불렸고, 노동은 부정적인 단어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말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소득 원천의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이다. 지대에 기반을 둔 소득과 이윤에 기반을 둔 소득과 함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돈을 벌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프롤레타리아’라 불리는 무산자계급은 유산자 계급 ‘부르주아’와 달리 물려받은 재산 없이 노동으로 소득을 벌 수밖에 없는 계급이다.
지금은 당연히 아동노동은 불법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초기, 산업이 발달하던 초기에는 3세 아이도 일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아동노동이 만연했다. 많은 생각 있는 이들 덕분에 아동노동은 금지되었고,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한국에는 대표적 인물이 방정환이지만 방정환과 함께 활동한 많은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 덕분에 그나마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잠시 감사를 표하고 싶은 날이기도 하다.
방정환 선생님
일제강점기 어린이 노동
인내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