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한정찬] (시) 들꽃 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한정찬의 이 한 편의 시 11~14




들꽃

 

 

냉이꽃보다 작은 것들이

 봄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눈에  들지 않던 높이에서

서로를 밀지 않고

겹치지 않으면서

조용히 번져가는 색들

 

작다는 이유로

 오래 머무는 시선이 있고

많다는 이유로

하나하나를 잊지 않게 된다

 

봄날 오후

나는 조금씩 낮아져

이름 모를 꽃들 곁에 서서

잠시 같은 높이가 된다

 

 

 <설명>

봄날 들판의 작은 꽃들을 통해 삶과 시선의 섬세함을 노래한다냉이꽃보다 작은 이름 모를 꽃들이 서로를 밀지 않고 겹치지 않으면서 조용히 퍼져가는 모습은작고 사소한 존재들도 자신의 자리에서 의미 있게 살아간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화자는 크기나 수에 관계 없이 존재의 가치를 바라보며, “작다는 이유로  오래 머무는 시선 “많다는 이유로 하나하나를 잊지 않게 된다라는 표현으로 관찰과 기억의 미묘한 차이를 보여준다시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낮아진 시선으로 꽃들과 같은 높이에 서면서 자연과 잠시 동화된다이를 통해 시는 작은 존재를 향한 겸손과 공감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감상>

작고 이름 없는 존재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끼게 한다봄날 들판에서 냉이꽃보다 작은 꽃들이 서로를 밀지 않고 조용히 퍼져가는 모습은경쟁이나 눈에 띔 없이도  자리를 지키는 삶의 조화와 평온을 보여준다화자는 그런 꽃들 곁에서 낮아진 시선으로 잠시 같은 높이에 서며작은 것들에도 충분한 존재감과 가치가 있음을 체감한다. “작다는 이유로 더 오래 머무는 시선 “많다는 이유로 하나하나를 잊지 않게 된다 구절은 관찰자의 섬세한 마음과 삶을 바라보는 겸손한 태도를 드러낸다 시는 소박한 자연 속에서 삶의 미세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작은 존재들과 공감하며 함께 서는 순간의 따스함을 조용히 전한다.



----------------------------------------------------



애기똥풀꽃

 

 

보도블록 틈새마다 노란 그리움이 돋는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위에서

꽃은 자꾸만 귀를 연다

그립다는 말은 먼지처럼 쌓여가는데

골목을 채우던 아이들의 깔깔거림은

어느 낮잠 속으로 사라진 걸까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아기 울음

심장을  건드리던  투명한 생명력과

강아지를 부르던 낮은 저녁의 음성들

이제는   바람의 길목에 서서

노란 꽃잎은  속을 태워 즙을 낸다

누군가의 옷자락이라도 스치고 싶어

봄날은 깊어가는데

사람이 고픈 꽃은 자꾸만 발뒤꿈치를 들고

오는  없는  끝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해설>

길가 어디서나 흔히   있는 애기똥풀꽃을 단순한 식물이 아닌인간의 정을 갈구하는 서정적 주체로 설정했습니다꽃이 피어있는 길목은 과거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아기의 울음소리그리고 이웃을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가 가득했던 공간입니다하지만 현대 사회의 변화 속에서  소란스러웠던 생명력은 사라지고이제  곁에는 적막한 봄바람만이 머뭅니다.

시인은 애기똥풀의 노란 빛깔을 누군가를 기다리며 애태우는 ‘그리움의 으로 재해석합니다특히 ‘워리 워리’ 개를 부르는 의성어는 투박하지만 정겨운  고향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며독자로 하여금 우리가 잃어버린 ‘사람 사는 냄새 환기시킵니다.

결국  시는 봄바람에 흔들리는 꽃의 모습을 통해군중 속에서도 고독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온기를 그리워하는 존재라는 따뜻한 위로와 성찰의 메시지를 건네고 있습니다.

 

 

 <감상>

길가에 무심히 피어난 애기똥풀꽃을 보며 ‘사람이 그립다 읊조리는 시인의 시선이 참으로 다정하고도 애틋합니다이시는 흔하디흔한 잡초로 여겨지던 풀꽃에 ‘그리움이라는 생명력을 불어넣어우리 곁에서 사라져가는 온기들을 다시금 불러세웁니다.

 속에서 그리움의 매개체는 소리입니다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아기의 울음강아지를 부르는 어른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왔어야  ‘사람 사는 풍경입니다꽃은  소리들을 먹고 자라는 존재처럼정적이 흐르는 길가에서 간절하게 사람의 흔적을 기다립니다.

특히 마지막 구절에서 봄바람에 애태우는 꽃의 모습은단절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독과 닮아있어 가슴 한구석이 아려옵니다누군가의 발길이 닿기를누군가의 시선이 머물기를 바라는 꽃의 마음은 결국 사랑받고 싶고 연결되고 싶은 우리 모두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샛노란 애기똥풀꽃이 피어난 길을 걷게 된다면이제는  꽃이 건네는 무언의 인사에 걸음을 멈추고 잠시 머물러 주어야겠습니다.



----------------------------------------------------



옥수수 간격

 

 

봄비 젖은  위로

초록의  두 개가 흔들린다.

옥수수 씨앗이 눅눅한 어둠을 뚫었다

 

  높이로 솟아오른  생애는

매일 조금씩 햇살을 삼키며

바람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

 

잎사귀 사이로 햇빛이 춤을 추어도

옥수수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뿌리와 뿌리가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거리

잎과 잎이  바람을 가질  있는 

 적당한 간격 속에서만 알알이 여물겠다

 

우리의  또한 그렇게 

빽빽한 하루 사이잠시 멈추어 

 틈과 쉼의 자리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 결실로 이어간다

 

 

<설명>

시의 전반부는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을 감각적으로 묘사합니다. ‘초록의  어둠을 뚫고 올라와 햇살을 머금는 과정은 생동감이 넘칩니다하지만 시선은 이내 옥수수들 사이의 ‘간격 머뭅니다뿌리가 엉키지 않고 잎사귀 사이로 바람이 통할 만큼의 거리 타인이나 일과의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만 비로소 알곡이 여물  있다는 자연의 섭리를 포착한 것입니다.

결국  시는 ‘서두르지 않는  대한 예찬입니다빽빽한 일상속에서 ‘틈과  단순한 정지가 아니라가장 소중한 가치를 열매 맺게 하는 필수적인 자양분임을 강조합니다서두름 없이  자리를 지키는 옥수수를 통해우리 삶도 여유 속에서  단단하게 익어갈  있다는 따뜻한 위로와 성찰을 전하고 있습니다.

 

<감상>

자연의 생장 원리를 통해 현대인의 삶에 필요한 ‘여백의 미학 일깨워주는 따뜻한 성찰의 시입니다시인은  젖은 흙을 뚫고 올라온 옥수수가 햇살을 삼키며 자라나는 과정을 관조하며그들이 결코 서둘지 않는 이유에 주목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뿌리와 잎이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적당한 간격입니다이는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타인의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각자가 온전한 바람과 햇살을 누릴  있는 최소한의 독립 공간을 의미합니다옥수수가  틈 속에서 비로소 알알이 여물듯우리의  또한 빽빽한 일과 속에서 잠시 멈추어 서는 ‘ 자리가 있을  가장 소중한 결실을 맺을  있음을 역설합니다.

 시는 관계의 과잉과 속도 지상주의에 지친 우리에게 진정한 성장은 비움과 틈새에서 시작된다는 위로를 건넵니다빽빽한 하루를 살아가느라 정작 자신을 돌볼 틈조차 없었던 이들에게 시는 스스로에게   간격을 허락하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깨닫게 해줍니다.



----------------------------------------------------



 조팝꽃 저장소

 

 

논둑길 굽이돌아 걷던 발걸음

하얀 조팝꽃 앞에 멈춰 섰네요

바람에 실려  달큼한 향기

들뜬  마음을 흔들어 놓네

 

배고픈 시절 닮아 이름 붙은 

 이름 되뇌면 가슴이 짠해

들판 가득 하얗게 타오르는 

꽃잎일까  그리움일까

 

눈부시게 피어서  서러운 

햇살 아래 하얗게 닳아 오르네

잊혀가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네

 

세상은 무심하게 흘러가고

계절은 꽃잎을 데려가지만

오늘 내가 머문  자리만큼은

지워지지 않는 향기로 남길

 

무심하게 흘러간 세월아

잡지 못한 우리 사이 간극아

 조팝꽃처럼 눈부신 오늘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말해줘요

나의  간절한 그리움을

당신 마음속에 저장해 주세요

 

기억해 주세요

저장해 주세요

 조팝꽃이 지기 전에

제발부탁해요.

 

 

<설명>

눈부시게 하얀 꽃잎에서 배고픈 시절의 ‘짠한’ 슬픔을 읽어내는 동시에그것을 현재의 뜨거운 그리움으로 치환합니다특히 ‘세월의 간극 “잊혀가는 것들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오늘  순간의 발걸음과 마음을 타인의 기억 속에 ‘저장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이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영원으로 간직하고자 하는 처절한 고백이자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연결을 소망하는 따뜻한 서사시입니다.

 

<감상>

눈부신 백색의 미학 뒤에 숨겨진 서글픈 생의 흔적을 건드리는 작품입니다흐드러지게  조팝꽃을 보며 단순히 아름다움에 머물지 않고좁쌀을 닮은  이름에 얽힌 ‘배고픈 시절 허기와 애잔함을 길어 올리는 시인의 시선이 매우 깊고 따뜻합니다.

특히 ‘기억 넘어 ‘저장해달라는 현대적 표현은 찰나의 계절 속에 사라질 꽃잎처럼우리의 삶도 무심한 세월 속에 휘발될까 두려워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을 대변합니다눈부시게 피어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그리움의 역설이 가슴을 아리게 하며오늘 나의 발걸음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향기로 남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여운을 남깁니다흩날리는 꽃잎 하나하나가 시인이 보내는 간절한 신호처럼 느껴져 마음이 뭉클해지는 감동적인 시입니다.



▲한정찬/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공공정책신문

 

한정찬

시인(詩人), 동시인(童詩人), 시조시인(時調詩人)

()한국공무원문학협회 고문, ()한국문인협회원, ()국제펜한국본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외

시집 한 줄기 바람(1988)29, 한정찬시전집 2, 한정찬시선집 1, 소방안전칼럼집 1

농촌문학상, 옥로문학상, 충남펜문학상, 충남문학대상, 소방문학대상, 소방문화상, 충청남도문화상 외

20222026년 제15기 한국시에그린박물관 입주 작가(전남 진도군 소재)

 



 

 

작성 2026.04.26 15:15 수정 2026.04.26 15:15

RSS피드 기사제공처 : 한국공공정책신문 / 등록기자: 김유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