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고대사 정립의 기초가 되었던 단군 신화가 사실은 일제에 의해 철저히 기획된 역사 왜곡의 산물이라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식민사학의 거두로 불리는 고(故) 이병도 박사의 양심 고백과 그간 실체가 불분명하다며 부정당해온 『환단고기』의 1909년 원본 실물이 발견되면서 학계는 거세게 소용돌이치고 있다.

사건의 시작은 1922년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찬위원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6세의 나이로 위원회에 참여했던 이병도는 일본인 스승들과 함께 『삼국유사』의 기록을 난도질했다. 이들은 고조선의 건국 기록 중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부분만을 발췌하여 신화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이는 한민족의 역사를 신들의 이야기나 설화로 격하시켜 실제 역사적 뿌리를 제거하려는 식민 통치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평생을 식민사관 전파에 힘썼던 이병도 박사는 사망 3년 전인 1986년 10월 9일, 조선일보를 통해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그는
"단군 신화는 신화가 아니며, 실제로 존재했던 우리 국조의 이야기"
라고 선언했다. 그는 웅녀가 곰에서 변한 여자가 아니라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의 여인이었으며, 환웅과의 결합 역시 천신족과의 정치적·혈연적 결합을 의미한다고 명확히 밝혔다. 또한 단군 조선이 중국 요임금과 동시대에 건국되었다는 기록이 사실임을 인정하며 자신의 과오를 시인했다.

이러한 양심 고백에도 불구하고 주류 사학계는 그를 '치매에 걸린 노인의 망언'이라며 일축해왔다. 그 배경에는 『환단고기』를 위서(僞書)로 몰아세워야만 유지되는 기존 학계의 기득권이 자리 잡고 있다. 학계는 그간 『환단고기』가 1970년대에 이유립에 의해 창작된 소설이라 주장하며 '원본의 부재'를 가장 큰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2019년, 이러한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는 유물이 출현했다. 1909년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된 등사본 『환단고기』 실물 고서가 발견된 것이다. 해당 고서에는 독립운동가 이기(李沂)가 저자 계연수(桂延壽)의 글을 직접 감정한 흔적과 토씨가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운용도서관 이명우 관장은 이 책의 서지학적 가치를 증명하며, 기존 학계가 원본을 확인하고도 이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님을 입증하는 사료의 고찰'에서 인용된 ‘등사본 환단고기’ © STB 상생방송
기록학적 측면에서 『삼국유사』 내 단군조선 관련 378자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 짧은 문장이 최소 7,000년에 달하는 한민족의 대륙 경영사를 압축한 '대서사시'라고 분석한다. 죽편이나 종이에 기록된 탓에 불에 타고 삭아 없어진 고대 사서들의 핵심 내용이 구전과 필사를 거쳐 응축된 형태라는 것이다.
특히 원문에 명시된 '여고동시(與高同時)'라는 네 글자는 단군조선이 당시 대륙의 정세 속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던 국가였음을 직시한다. 역사 왜곡의 문제는 학술적 담론을 넘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역사 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가 단군을 신화 속에 가두는 것은 저들에게 명분을 주는 행위다. 1909년 원본의 발견과 식민사학자의 참회는 우리 역사가 한반도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대륙을 호령하던 실존 역사였음을 증명하는 강력한 무기이다.

식민사학의 중심에 있었던 이병도의 양심 고백과 1909년 제작된 『환단고기』 실물 원본의 발견은 단군 조선이 신화가 아닌 실존 역사임을 명확히 증명한다.
일제에 의해 왜곡된 378자의 기록을 '대서사시'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고고학적·서지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민족 고대사를 복원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이는 동북공정 등 주변국의 역사 침탈에 대응하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