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세계 질서와 한국의 외교 전략은?
세계는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뉴스 화면을 잠시만 켜도 미중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변화 대응, 팬데믹의 여파 등이 국제 질서를 뒤흔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파도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에 기반한 기존 국제기구들이 새로운 도전과제를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22년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결의안에서 17차례 거부권이 행사되며 기능 마비 상태를 보여왔습니다. 이는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에게 물음표를 던집니다. 과연 한국은 이 변화 속에서 어떤 외교 전략을 선택해야 할까요?
국제 정치 전문가들은 현재의 세계 질서를 "다극화"라는 단어로 설명합니다. 한때 미국이 경제와 군사력을 바탕으로 운영하던 세계는 이제 중국, 유럽, 인도 같은 강대국들이 목소리를 내며 단일 헤게모니 체제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전 세계 GDP의 30.2%를 차지하던 미국의 비중은 2025년 24.8%로 감소한 반면, 중국은 같은 기간 3.6%에서 18.6%로 급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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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단순히 국가들 간의 경쟁만이 아닌 기후 변화, 사이버 안보, 인공지능(AI) 규제 같은 초국가적 도전들이 글로벌 거버넌스의 새 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이 다극화 흐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해외 매체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최근 기고된 국제정치 전문가의 칼럼에 따르면, 현재 유엔, IMF, WTO와 같은 국제기구들은 과거 냉전기 단극 체제의 틀에 맞춰 설계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지정학적 도전과제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당 전문가는 "다자주의적 협력"과 "유연한 네트워크형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세계가 더 이상 한 국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여러 강대국과 지역 강국들이 참여하는 협력 모델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위계적 국제기구 구조에서 벗어나 수평적이고 기능 중심의 협력 네트워크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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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코로나19 팬데믹은 이와 같은 다자주의 부재의 명확한 예를 보여줍니다. 팬데믹 초기에 세계 각국은 서로 다른 대응책을 내놓고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백신 배분 문제에서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큰 격차가 있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고소득 국가의 백신 접종률은 평균 73%에 달한 반면, 저소득 국가는 겨우 7%에 불과했습니다.
이후 몇몇 국제기구와 다국적 기업들이 백신 공급 확대를 위한 협력 모델을 제시했지만, 진정한 글로벌 공조는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과 같은 중견국들이 새로운 협력 구조 구축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다자주의와 지역 블록의 중요성, 한국에게 주는 교훈
또한, 앞서 언급한 전문가는 지역 블록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유럽연합(EU)과 같이 지역 내 국가들이 긴밀히 협력하는 모델이 글로벌 거버넌스 구조를 보완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EU는 27개 회원국이 단일 시장과 공동 통화를 통해 경제적 통합을 이루고, 공동 외교안보정책을 통해 국제 무대에서 집단적 목소리를 내는 성공적인 지역 블록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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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아시아에서도 적용 가능한 모델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의 경제 및 안보 협력을 강화하거나, 인도 태평양 전략의 일환으로 일본, 호주, 미국과 협력하여 지역 안정화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2021년 ASEAN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으며, 2025년 기준 ASEAN은 한국의 두 번째 교역 상대로 연간 교역액이 1,850억 달러에 달합니다.
이러한 다자 협력은 단순히 주변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을 넘어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미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의 한 교수는 "한국은 중견국 외교의 모범 사례를 만들어갈 위치에 있다"며 "P4G(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서울 정상회의 개최, 글로벌 백신 허브 구축 노력 등이 그 예"라고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2024년 기준 전 세계 개발원조(ODA) 공여국 중 15위를 기록하며 국제 사회에서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서의 역할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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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개인의 일상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사실 다극화의 직접적인 영향은 일반 시민들에게 곧바로 체감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후 변화 대응 실패, 팬데믹 지속 가능성 증가, 사이버 범죄 확장 등은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정부, NGO, 민간 기업들이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글로벌 공공재 문제에 기여할 경우, 더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배터리 제조 기업들이 글로벌 전기차 표준 협력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면, 이는 한국 국민들에게 경제적 호재로 작용할 뿐 아니라 환경 보호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한국 배터리 3사는 2025년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약 38%를 점유하며, 글로벌 탄소 중립 목표 달성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미래 글로벌 거버넌스, 비국가 행위자 역할 확대 방안
물론 다극화 시대의 국제 협력 모델은 이상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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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되는 반론들 중 하나는 다극화가 강대국 간 복잡한 이해관계를 더욱더 강화하여 협력보다는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입니다. 예를 들면, 미중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두 국가가 각기 다른 동맹국을 끌어들여 분열과 대립을 심화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은 2조 5,43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 중 미국과 중국이 약 53%를 차지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전문가의 칼럼에서도 이 점이 언급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는 초국가적 도전을 해결하기 위한 공동의 목표 설정이 강대국들 사이의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기후 변화, 팬데믹 대응, AI 윤리 같은 분야에서는 경쟁 관계에 있는 국가들도 협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이 독자적인 외교적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다면,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의미 있는 중재와 협력을 도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관계학과의 한 전문가는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기보다는 이슈별로 유연한 전략적 자율성을 발휘해야 한다"며 "경제는 중국과, 안보는 미국과 협력한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다층적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이는 한국이 특정 강대국에 종속되지 않고 다극화 시대의 주요 행위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방안입니다. 결론적으로, 다극화 시대로 접어든 글로벌 질서는 국가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요구하며 한국도 이에 맞춘 외교 전략을 모색해야 합니다.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기고한 전문가의 제안대로 기존의 단극 중심 국제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자주의적 협력 모델을 구축하며, 지역 중심의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비국가 행위자의 역할이 확대되는 가운데, 한국은 민간 기업과 시민사회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글로벌 협력 모델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소프트파워 지수는 글로벌 10위권에 진입하며 문화, 기술, 외교 분야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산을 바탕으로 한국은 다극화 시대의 핵심 중견국으로서 글로벌 거버넌스 재편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 다극화 시대에서 한국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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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project-syndicate.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