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사이트뉴스 박주환 기자] 생명공학(BT)은 이제 단순한 학문의 영역을 넘어 전자공학, 신소재와 함께 21세기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결정짓는 핵심 전략 자산이 되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바이오산업은 한 국가의 미래 먹거리이자 글로벌 패권을 좌우할 핵심 동력이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의 중심부인 충북 오송과 오창, 그 상징적인 길목에는 평생을 바이오메디컬공학의 발전과 후학 양성에 바친 한 학자의 헌신이 서려 있다. 바로 이명선 청주대학교 바이오메디컬학과 명예교수다.
정년 퇴임 후에도 여전히 연구와 교육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이 교수의 삶은 대한민국 바이오메디컬의 성장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지는 이명선 교수가 걸어온 다층적인 학문적 궤적과 그가 남긴 유산을 심층 조명해 본다.
◆생명의 기원을 탐구하다: 세포유전학의 선구적 업적
이명선 교수의 학문적 뿌리는 생명의 가장 기본 단위인 세포와 그 속에 담긴 유전 정보의 신비를 밝히는 데 닿아 있다. 생명공학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1980년대, 그는 이미 유전학(Genetics)과 분자세포생물학(Molecular Cell Biology)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연구에 매진했다.
그의 첫 번째 기념비적 성과는 1985~1986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연구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융모막 융모 샘플링(CVS)’ 연구에 참여하여 세포유전학적 염색체 직접 검사 및 배양검사 방법을 국내 최초로 성공시켰다. 이는 임신 중기에야 가능했던 양수천자법보다 훨씬 이른 임신 초기(8~12주)에 태아의 유전적 이상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혁신적인 임상 기술이었다. 이 성과는 국내 산전 진단 의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후 이 교수는 세계 최고의 연구 기관인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암연구소(NCI)에서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밟으며 연구의 깊이를 더했다. 1994년, 그는 암 연구의 획기적 전기가 된 ‘전립선 세포주 개발’ 논문을 세계적 권위지인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했다. 살아있는 상태의 암세포를 지속적으로 배양하여 연구할 수 있게 만든 이 성과는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거둔 쾌거였다. 이는 단순히 학술적 가치를 넘어, 전 세계 전립선암 치료 및 약물 개발 연구에 필수적인 기초 자산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깊다.
◆실사구시의 정신, 연구실에서 시장으로
이명선 교수의 연구 철학은 언제나 ‘실용’을 향해 있었다. 그는 이론에만 머무는 과학은 생명력을 잃는다고 믿었다. 2015년 ‘p53 암억제 유전자의 발현 상향 방법’, 2016년 ‘유기게르마늄 조성물의 제조방법’ 관련 특허를 잇달아 등록하며 기초 연구를 실제 산업 성과로 연결하는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었다.
특히 ‘동애등에(Environment-Friendly Insect)’를 활용한 신소재 개발은 그의 창의적 사고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음식물 쓰레기를 분해하며 고단백질과 지방산을 생성하는 동애등에 유충의 특성에 주목한 그는, 이를 화장품 신소재로 활용하는 세계 최초의 시도를 단행했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이 연구는 게르마늄 농축수를 먹인 유충에서 피부 미백, 보습, 주름 개선 효과를 극대화하는 성분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환경 문제 해결(자원 순환)과 고부가가치 바이오 소재 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혁신적 모델로 평가받는다. 또한 곤충 사료 전문업체와 협력해 반려동물의 고혈압 및 당뇨 예방을 위한 처방식 사료 연구까지 외연을 확장하며 바이오산업의 다각화를 이끌었다.
◆‘현장에 답이 있다’ 미래를 설계하는 교육자
이 교수가 청주대학교에서 보낸 시간은 ‘인재 양성’이라는 숭고한 소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바이오산업이 국가 전략 분야로 성장할 것을 예견하고, 학생들이 졸업 후 곧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실무 역량을 갖추도록 커리큘럼을 부단히 혁신해 왔다.
그의 교육 철학은 명확했다. 책상 위에서 외우는 이론보다 ‘직접 피펫을 잡고 실험하는 손끝의 감각’이 과학자의 진짜 실력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청주대학교 바이오메디컬학과는 높은 취업률과 더불어 산업계로부터 “기초가 탄탄하고 현장 적응력이 뛰어난 인재를 배출한다”는 두터운 신뢰를 얻게 되었다.
더불어 그는 학생들에게 ‘과학자의 정직성’을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생명을 다루는 학문인 만큼, 기술적인 우월함보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과 실험 결과에 대한 정직함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지역과 국가, 그리고 여성을 위한 사회적 헌신
이명선 교수는 연구실과 강의실 밖에서도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특히 충북 바이오 클러스터(오송·오창)가 대한민국 바이오산업의 심장부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그는 산·학·연·관을 잇는 가교 역할을 자처했다. 충청북도 과학기술위원회 위원, 충북과학기술포럼 바이오분과위원 등을 지내며 지역 발전의 청사진을 그리는 데 기여했다.
또한 여성 과학기술인의 권익 신장과 진로 지원은 그가 평생 관심을 기울여온 분야다. 전국여교수연합회 회장,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여성 인재들이 겪는 취업 장벽과 경력 단절 문제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수여된 ‘제20회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 진흥 부문 수상은 그의 헌신에 대한 당연한 결과였다.
그의 글로벌 행보 역시 주목할 만하다. 중국 길림성 통화사범대학교에 바이오 학과를 신설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며 한중 국제교류의 물꼬를 텄으며, 퇴직 후에도 이중언어과정 전담교수로서 중국 유학생들에게 제약 바이오 메디컬 분야를 전수하는 등 ‘글로벌 인재 양성’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건강 전도사로 제2의 인생
정년 퇴임은 이 교수에게 마침표가 아닌 또 다른 시작이었다. 최근 그는 ‘Back To The Young Contest(B.Y.C)’ 수상을 계기로 대중 앞에 서고 있다. 젊음(역노화)과 건강을 주제로 인체 호르몬의 작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며, 현대인들에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건강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건강 전도사’로 활동 중이다.
그는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도 후학들에게 변치 않는 본질을 강조한다. “AI가 연구의 도구가 되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도, 결국 그 기술을 운용하는 것은 사람의 가치와 기초 과학의 탄탄함에 있다.”는 그의 지론은 속도에 매몰되기 쉬운 현대 과학계에 깊은 울림을 준다.
◆오송과 오창에 뿌린 씨앗, 거대한 바이오의 숲을 이루다
이명선 명예교수의 인생은 곧 대한민국 바이오메디컬의 도전사다. 화려한 명성보다는 제자의 성취에서 기쁨을 찾았고, 개인의 성과보다는 학문이 사회에 어떻게 쓰일지를 먼저 고민했던 그의 삶은 후대 학자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그가 뿌린 씨앗은 이제 거대한 나무가 되어 오송과 오창, 그리고 전 세계 바이오 현장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다. ‘명예교수’라는 타이틀은 단순히 퇴직을 예우하는 호칭을 넘어, 그가 평생 바쳐온 학자로서의 양심과 스승으로서의 헌신에 대해 우리 사회가 보내는 진심 어린 경의의 표현이다.
이명선 교수가 불어넣은 학문에 대한 열정과 생명 존중의 정신은 그가 키워낸 수많은 제자들의 가슴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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