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박동명] 주민자치회(1), 이제는 ‘시범’이 아니라 ‘책임’이다

시범사업의 한계를 넘어, 주민이 지역의 주체로 서는 제도적 전환점

▲박동명/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박동명 법학박사는  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서울특별시 공익감사위원, 강남구 결산검사위원 등을 지냈으며, 국회의정연수원과 지방자치인재개발원 등에서 지방의회 의정활동, 예산·결산 심사, 행정사무감사, 조례입법, 주민참여제도, 인공지능 활용 의정혁신 등을 강의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주민자치회의 법제화가 갖는 제도적 의미와, 시범운영 단계를 넘어 지방자치의 공식 제도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을 살펴본다.

 

 

주민자치회가 중요한 분기점 앞에 섰다. 2026331일 국회 본회의에서 주민자치회의 설치·운영 및 행정·재정 지원 근거를 담은 지방자치법일부개정법률안이 의결되면서, 주민자치회는 더 이상 한시적 시범사업의 성격에 머무르지 않게 되었다. 행정안전부도 이를 두고 “13년 만의 대전환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동안 주민자치회는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기대어 시범적으로 운영되어 왔지만, 이제는 지방자치의 일반법 체계 안으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법률 개정이 아니라, 풀뿌리 민주주의의 제도적 지위를 한 단계 끌어올린 사건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동안 현장에서는 늘 비슷한 질문이 반복되어 왔다. “언제까지 시범실시인가.” “이 제도는 정말 법적 기반이 있는가.” “단체장이 바뀌면 사라지는 것 아닌가.” 이러한 의문은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제도가 불안정하면 참여도 불안정해진다. 주민은 제도를 신뢰하지 못하고, 공무원은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지방의회 역시 이를 정식 자치의제로 다루기보다 주변적 사업 정도로 인식하기 쉽다. 실제로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전국 3,551개 읍··동 가운데 주민자치회가 운영된 곳은 1,641, 46.1%에 머물렀다. 제도적 불안정성이 전국적 확산과 안정적 지원을 가로막았다는 지적이 이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제화의 의미는 세 갈래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주민자치회가 특별법상 실험적 장치에서 지방자치의 기본법 체계 안으로 편입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시범실시라는 임시적 꼬리표를 떼고 본격 실시의 법적 근거를 확보했다는 점이다. 셋째, 설치·운영에 필요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재정 지원 근거가 명문화되었다는 점이다. 행정안전부는 이번 개정으로 주민자치회 관련 규정이 특별법에서 지방자치법으로 이관되고, 본격 실시와 지원 근거가 마련되었다고 설명했다. , 주민자치회는 하면 좋은 사업이 아니라 책임 있게 설계하고 지원해야 할 제도가 된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오히려 더 중요한 질문이 시작된다고 본다. 법이 생겼다고 자치가 자동으로 자라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도는 출발선일 뿐, 성패는 운영 방식이 결정한다. 주민자치회가 마을의 살아 있는 민주주의 학교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또 하나의 형식적 위원회로 전락할 수도 있다. 법제화는 종착점이 아니라, 이제부터 제대로 묻고 따져야 할 책임의 출발선이다.


주민자치회가 맡아야 할 역할은 결코 가볍지 않다. 본래 주민자치회는 읍··동 단위에서 주민이 생활의제를 발굴하고, 지역의 문제를 토론하며, 행정과 협력해 실질적 해결 방안을 만들어 가는 생활자치의 플랫폼이어야 한다. 주민참여예산, 마을계획, 생활SOC, 복지·문화·환경·안전 의제, 공동체 돌봄, 주민교육, 갈등 조정 등은 모두 주민자치회가 깊이 관여할 수 있는 분야이다. 다시 말해 주민자치회는 단순한 행사 추진기구가 아니라, 행정이 미처 닿지 못하는 생활 현장을 주민의 언어로 해석하고, 주민 스스로 우선순위를 정하도록 돕는 중간 거버넌스의 핵심 축이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최근 학술연구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2025년 연구에서는 주민자치를 공동생산의 관점에서 재개념화하면서, 주민자치가 행정과 주민의 공동설계·공동집행·공동평가를 통해 참여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같은 해 다른 사례연구에서는 울산 북구와 서울 금천구의 주민자치회 활동이 공동추진, 공동설계, 공동전달, 공동평가의 성격을 가지며 주민의 성장과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음을 제시하였다. 주민자치회가 제대로 작동할 경우, 주민은 단순 민원 제기자가 아니라 지역문제 해결의 공동생산자로 전환된다는 뜻이다.


문제는 현실이 늘 이상을 따라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주민자치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형식화이다. 위원은 구성되었지만 토론은 없고, 분과는 만들어졌지만 의제는 없으며, 총회는 열리지만 실질적 결정권은 없다. 사업은 있지만 주민의 삶을 바꾸는 설계는 없다. 이 경우 주민자치회는 주민이 참여하는 자치기구가 아니라 행사가 많은 위원회정도로 인식되기 쉽다. 제도는 남아 있으나 자치는 사라진 상태이다.


대표성의 문제도 가볍지 않다. 주민자치회가 주민 전체를 대표한다고 말하려면, 공개성과 개방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특정 직능, 특정 인맥, 특정 세대가 사실상 구조를 고착시킨다면 주민자치회는 주민통합의 공간이 아니라 갈등의 진원지가 된다. 2022년 고양특례시 사례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주민자치회 내부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비민주적 소통방식, 기득권과 편가르기, 갈등을 조장하는 태도가 제시된 바 있다. 주민자치회의 실패는 대개 예산 부족보다 대표성과 운영문화의 실패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쟁점은 행정과의 관계이다. 주민자치회는 행정을 대체하는 기관이 아니다. 그렇다고 행정의 하부조직이어도 안 된다. 주민자치회는 행정과 협력하되 종속되지 않아야 하고, 행정은 지원하되 통제해서는 안 된다. 실제 입법 논의 과정에서도 자치단체장의 영향력 행사 문제를 방지하고, 행정·재정 지원을 빌미로 운영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하여 주민자치회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가 제기되었다. 주민자치회의 핵심은 지원받는 자율성이지 관리되는 참여가 아니다.


이제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그리고 주민 모두의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자치회를 홍보용 제도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주민자치회의 성패는 현수막 숫자나 행사 횟수보다, 지역의 생활문제가 얼마나 숙의되었고 실제 정책이나 예산, 행정 개선으로 연결되었는가에 달려 있다. 지방의회도 주민자치회를 단지 보조금 사업의 수혜단위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생활현장의 의견이 제도와 예산에 반영되는 통로로 이해해야 한다. 주민 역시 행정이 마련한 참여 프로그램이라는 수동적 인식을 넘어, 주민자치회를 지역 문제 해결의 공적 책임 공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필자는 주민자치회의 미래를 낙관만 하지도, 비관만 하지도 않는다. 다만 분명히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법이 없어서 어렵다는 말이 통했다면, 이제부터는 통하지 않는다. 이제 남은 질문은 단 하나이다. 주민자치회를 둘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주민자치회를 만들 것인가이다. 제도는 준비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지역의 선택과 실천이다. 주민자치회가 또 하나의 외형적 위원회가 될지, 아니면 생활자치의 학교가 될지는 결국 각 지역이 어떤 운영 철학을 갖느냐에 달려 있다.



박동명

▷법학박사,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참여예산 관련 교육 200회 실시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상임이사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작성 2026.04.10 23:04 수정 2026.04.10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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