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적인 고유가와 순환경제 전환 기조 속에 '귀한 몸' 대접을 받고 있는 폐비닐이 정작 경기도 내 곳곳에서는 제대로 된 재활용 과정 없이 소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폐비닐을 활용한 열분해유 생산 등 신산업이 각광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의 수거·선별 인프라 부족과 비용 문제로 인해 소중한 자원이 굴뚝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22일 경기도와 각 시·군에 따르면, 지난해 도내에서 발생한 폐비닐(종량제 봉투 배출량 제외)은 약 25만 톤에 달한다. 이 중 재활용 업체로 보내져 새로운 제품이나 원료로 가공된 물량은 10만 톤 수준에 불과하며, 나머지 15만 톤 이상은 소각 처리된 것으로 추산된다. 도내 폐비닐 재활용률은 40% 미만으로, 전국 평균(약 55%)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폐비닐, 과거엔 쓰레기... 지금은 '석유' 뽑아내는 핵심 자원
과거 폐비닐은 태우거나 묻어야 하는 골칫거리 쓰레기였다. 하지만 최근 폐플라스틱을 고온으로 가열해 석유 화학 제품의 원료인 '열분해유'를 추출하는 기술이 상용화되면서 폐비닐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고유가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폐비닐은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핵심 자원으로 부상했다.
정부 또한 순환경제 활성화를 위해 폐플라스틱 열분해 산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환경부는 2026년까지 폐플라스틱 열분해 비율을 10%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으며, 이를 위해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기술 개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폐비닐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민간 시장에서는 폐비닐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SK지오센트릭, LG화학, GS칼텍스 등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은 대규모 열분해 시설 투자를 진행하며 폐비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심지어 깨끗하게 선별된 고품질 폐비닐의 경우 t당 수십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자체 수거·선별 현장은 '아직도 과거'
하지만 이러한 시장의 흐름과 달리 지자체의 폐비닐 수거·선별 현장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경우 민간 업체가 수거해가기 때문에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단독주택이나 상가 지역은 지자체가 수거를 담당하고 있다.
문제는 지자체가 수거한 폐비닐의 상당수가 이물질이 많이 섞여 있어 재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음식물이 묻어 있거나 다른 쓰레기와 혼합되어 배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선별장 또한 인력 부족과 노후화된 시설로 인해 폐비닐을 정밀하게 선별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지자체는 선별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수거한 폐비닐의 상당 부분을 소각 처리하고 있다. 특히 폐비닐은 발열량이 높아 소각장에서 선호하는 연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소중한 자원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대기 오염 물질 배출과 탄소 배출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경기도 내 지자체, "선별 비용 부담스럽다"
경기도 내 한 지자체 관계자는 "폐비닐을 깨끗하게 선별하려면 많은 인력과 비용이 소요되는데, 현재 예산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며 "민간 업체들도 오염된 폐비닐은 수거를 꺼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각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폐비닐 열분해 기술이 유망하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처리 시설이 부족하고 수거·운반 비용도 만만치 않다"며 "지자체 입장에서는 안정적이고 비용 효율적인 소각 처리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수거·선별 인프라 확충과 정책 지원 시급"
전문가들은 폐비닐 재활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수거·선별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평기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이사장은 "폐비닐을 자원으로서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깨끗하게 배출하고 선별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지자체 선별시설의 고도화와 함께 시민들의 분리배출 의식 제고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광진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폐플라스틱 열분해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원료인 폐비닐 공급 체계는 아직 미비하다"며 "지자체의 폐비닐 선별 비용을 지원하거나, 폐비닐 재활용 업체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보다 실질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경기도, 폐비닐 재활용 활성화 대책 마련 추진
경기도는 이러한 지적을 수렴하여 폐비닐 재활용 활성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도는 우선 지자체 선별시설의 고도화를 지원하고, 폐비닐 분리배출 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폐플라스틱 열분해 등 신기술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민간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폐비닐 자원화 체계를 구축해 나갈 방침이다.
도 관계자는 "폐비닐은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라 소중한 자원"이라며 "경기도가 앞장서서 폐비닐 재활용 활성화를 위한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어 순환경제 실현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폐비닐 소각 문제는 비단 경기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적으로 폐비닐 발생량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재활용률은 정체되어 있는 실정이다. 순환경제 전환을 위해서는 폐비닐을 '애물단지' 쓰레기가 아닌 '보물단지' 자원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과 함께, 실질적인 수거·선별·재활용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