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최근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제70차 회의(UN CSW70)에 참석하여, 분쟁 및 인도적 위기 상황 속 아동과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다양한 논의를 직접 접할 수 있었다.
이번 회의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존의 선언적 논의를 넘어 실제 현장에서 검증된 혁신적 대응 모델들이 공유되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우간다와 에티오피아의 학교 기반 성폭력 대응 모델은 국제사회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현재 국제사회는 아동과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단순한 개별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난민과 분쟁 상황에서는 이러한 폭력이 더욱 은폐되고, 피해자들은 도움을 요청하기조차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된다. CSW70에서도 반복적으로 강조된 바와 같이, 문제의 핵심은 ‘드러나지 않는 현실’에 있다.
우간다의 사례는 이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기존에는 1년 동안 보고된 성폭력 피해 사례가 16건에 불과했으나, 학교 기반 선별 모델을 도입한 이후 단 5개월 만에 653명의 피해 아동이 확인되었다.
이는 사건이 갑자기 증가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피해가 비로소 가시화된 결과다. CSW70 현장에서 이 수치는 많은 참가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데이터 기반 접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환기시켰다.
이 모델의 핵심은 ‘선제적 발견과 개입’이다. 학교라는 비교적 안전한 공간에서 아동들과 직접 접촉하고, 신뢰를 기반으로 한 상담을 통해 경험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지역사회에 기반한 파라소셜 워커를 활용하여 아동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필요한 경우 즉각적인 서비스로 연계하는 구조는 매우 효과적인 접근으로 평가된다.
또한 부모 참여를 제도화한 점 역시 중요한 요소다. 부모 대상 대화를 통해 개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동의를 확보함으로써, 아동 보호를 가정과 지역사회 차원으로 확장했다. 이는 CSW70에서 강조된 ‘커뮤니티 기반 접근’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에티오피아는 이러한 우간다 모델을 자국의 맥락에 맞게 적용한 사례다. 파라소셜 워커 대신 집중 사회복지사를 활용하고, 단기간 집중 교육을 통해 현장 대응 역량을 강화했다. 그 결과 200명의 청소년 피해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서비스로 연계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단순한 시범사업을 넘어, 제도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계로 평가된다.
CSW70에서 확인된 또 하나의 핵심 메시지는 ‘데이터에서 행동으로(Data-to-Action)’의 전환이다. 두 국가 모두 체계적인 조사와 분석을 통해 문제를 정의하고, 그 결과를 기반으로 구체적인 개입을 설계했다. 이는 정책의 효과성과 책임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접근으로, 향후 국제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앞으로의 과제 역시 분명하다.
첫째, 이러한 모델을 국가 차원에서 제도화하고 확산해야 한다.
둘째, 국가 간 협력을 통해 모범 사례를 공유하고 지역 차원의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지속 가능한 재원 확보를 통해 장기적 운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학교 기반 접근은 아동 보호 정책의 핵심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학교는 아동이 가장 안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며, 조기 발견과 예방, 그리고 서비스 연계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구조적 강점을 지닌다.
CSW70에 참석하며 느낀 가장 큰 교훈은 분명하다. 아동 보호는 더 이상 선언이나 권고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현장에서 작동하는 구체적인 모델로 구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간다와 에티오피아의 경험은 이러한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제 국제사회는 이 성과를 확산시키고, 더 많은 아동이 안전과 존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이지 않던 현실을 드러내고,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듣는 것—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며, CSW70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