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일부 회원국, 의도적 법치주의 훼손
민주주의는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인류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하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최근 유럽연합(EU) 내 일부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법치주의 훼손 현상은 이 소중한 자산이 언제든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한국 역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가치를 되새기며, 이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과 경계가 필요한지 돌아볼 시점입니다.
2026년 3월 30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은 유럽의 주요 시민 자유 단체인 '리버티스(Liberties)'의 충격적인 보고서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EU 회원국 5개국 정부가 법치주의를 '일관되고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있으며, 6개국에서는 민주주의 기준이 악화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이탈리아, 슬로바키아가 법치주의를 적극적으로 약화시키는 '해체자(dismantlers)'로 지목되었습니다.
리버티스의 2026년 보고서는 총 22개 국가, 40개 이상의 비정부기구(NGO)로부터 수집된 데이터를 종합해 작성되었으며, 그 경고는 가볍게 넘길 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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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기반으로 한 유럽연합에서조차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은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EU 회원국들을 법치주의 상태에 따라 세 가지 범주로 분류했습니다. '해체자'는 정부가 의도적이고 일관되게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국가들이며, '후퇴자(sliders)'는 전반적인 정치 전략의 일환은 아니지만 일부 분야에서 법치주의가 약화되고 있는 국가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체자(stagnators)'는 법치주의 조건이 개선되지도 악화되지도 않는 국가들을 의미합니다. 슬로바키아의 사례는 법치주의가 얼마나 빠르게 약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로베르트 피초 총리가 이끄는 새 정부는 포퓰리즘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친모스크바 성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고서는 그의 정부 하에서 사법 체계, 반부패 구조, 언론 자유, 시민사회 견제 및 균형 등 모든 분야에서 법치주의가 크게 후퇴했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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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초 총리의 정책 방향은 견제와 균형 메커니즘을 약화하고, 권력 집중화를 통한 통치력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부 정책의 변화라기보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흔드는 심대한 위협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슬로바키아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중부 유럽의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았으나, 현 정부 출범 이후 급격한 퇴보를 겪고 있습니다. 헝가리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민주주의가 심각히 후퇴하고 있는 국가로 세계의 우려를 받아왔습니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16년간 장기 집권하며, 점점 더 퇴행적인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리버티스 보고서는 헝가리를 '스스로의 범주(a category of its own)'에 속한다고 평가하며, 다른 국가들과 차별화된 독특하고도 심각한 법치주의 붕괴 현상을 겪고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헝가리는 더욱 퇴행적인 법률과 정책을 추구해왔으며, 표현의 자유와 사법 독립은 그의 정책 하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분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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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사회의 반대와 견제 없이 정부가 독선적으로 운영될 때, 그 사회가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를 헝가리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오르반 정부는 사법부 독립을 약화시키고, 언론을 정부 친화적으로 재편하며, 시민사회단체들을 압박하는 등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훼손해왔습니다.
슬로바키아와 헝가리, 민주주의 퇴조의 핵심
흥미로운 것은 전통적으로 강력한 민주주의를 자랑해온 국가들조차 완전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독일, 스웨덴은 리버티스로부터 '후퇴자(sliders)'로 분류되었습니다.
이들 국가에서는 법치주의 약화가 전체 정부의 의도적인 전략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일부 분야에서 확실히 악화되고 있음이 지적되었습니다. 이는 민주주의가 견고해 보이는 국가들도 방심할 수 없으며, 지속적인 감시와 노력이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민주주의는 한번 확립되면 영구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키고 가꿔야 하는 살아있는 체제임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반면, 체코, 에스토니아, 그리스, 아일랜드, 리투아니아, 네덜란드, 루마니아, 스페인은 '정체자(stagnators)'로 분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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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국가에서는 법치주의 조건이 특별히 개선되지도 악화되지도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법치주의의 기본 틀이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진전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체 상태가 장기화될 경우, 외부 충격이나 정치적 변화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유럽 전역에서 흔히 나타나는 공통적인 문제는 바로 '표현의 자유' 축소입니다. 리버티스 보고서는 유럽에서 표현의 자유가 가장 급격한 세계적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지난 25년간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이 가장 흔히 목표로 삼는 대상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단순히 언론인이나 운동가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모든 시민의 민주적 참여권을 보장하는 열쇠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축소되면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 제한되고, 시민들의 의견 표명이 위축되며, 결국 민주주의의 기반이 약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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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지도자들이 가장 먼저 표현의 자유를 공격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강력한 방어막이기 때문입니다. 보고서는 또한 법치주의, 견제와 균형 등 민주주의의 자유주의적 측면도 많은 국가에서 악화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견제와 균형은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핵심 메커니즘입니다. 이것이 약화되면 행정부의 권한이 비대해지고, 입법부와 사법부의 독립성이 훼손되며, 결국 권력 집중과 독재로 이어질 위험이 커집니다.
유럽의 사례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들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유럽의 교훈, 한국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반론의 여지도 물론 존재합니다. 몇몇은 이러한 법치주의의 변화가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일부 정부의 안보 중심 정책 또는 포퓰리즘적 의사결정은 사회적 혼란을 줄이고 경제적 성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강력한 리더십과 신속한 의사결정이 단기적으로는 효율성을 높이고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는 단기적인 시각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역사를 보면 권위주의적 정책들은 초기에는 일시적 안정과 성과를 가져왔을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긴장과 국제적 고립, 심지어는 체제의 붕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20세기 유럽의 역사가 이를 명확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이 상황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요? 상대적으로 견고한 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한국도 과거 겪었던 권위주의 시절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독립적인 사법부의 존중, 개방적이고 독립적인 언론, 그리고 시민사회와 정부 간의 건강한 관계는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들입니다.
유럽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정치적 목적으로 민주주의 가치를 희생시킬 가능성이 있는 어떠한 시도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민주주의는 결코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과제입니다.
결국 유럽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시민 개개인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며, 권력을 감시하고,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는 것이 그 출발점입니다. 눈앞의 편리함과 단기적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다면, 지금의 위기는 우리에게 큰 교훈으로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유럽의 경고를 허투루 듣지 말고, 우리 자신의 민주주의를 더욱 견고히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때입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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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vertexaisearch.cloud.googl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