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면서 가장 혐오하는 말이 있다. 바로 “그놈이 그놈이다”라거나 “양쪽 다 똑같다”며 본질을 흐리는 무책임한 양비론이다. 이러한 냉소는 시민의 눈을 가리고, 사안의 경중을 지워버린다. 문제는 이 허무주의 뒤에 ‘공정’과 ‘중립’이라는 미명 아래 사실의 무게를 왜곡하고 비트는 소위 레거시 미디어와 찌라시 언론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휘두르는 ‘기계적 균형’은 이미 언론의 사명을 저버린 기만적인 도구에 불과하다.
소위 언론이라 불리는 이들이 전매특허처럼 사용하는 ‘가짜 균형(False Equivalence)’은 비겁하다. 한쪽에는 명백한 증거와 책임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다른 한쪽에는 옹색한 변명이나 억측뿐임에도, 언론은 이를 '공방'이라는 단어로 묶어버린다. 사주의 입맛에 맞춰 팩트를 비틀고 무게추를 조작하며, 결과적으로는 “둘 다 문제”라는 결론을 유도한다. 사실상 언론이 앞장서서 “다 똑같다”는 괴물을 키워내며 시민들에게 사실이 아닌 피로감과 냉소만을 배설하고 있는 셈이다.
시비(是非)를 가리지 않는 언론은 지혜를 잃은 도구다
맹자(孟子)는 인간의 본성으로 '시비지심(是非之心)'을 강조했다.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말하는 마음이 인간됨의 뿌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레거시 미디어는 이 시비의 칼날을 스스로 꺾어버렸다.
여기에 더해 순자(荀子) 〈수신편(修身篇)〉의 따끔한 경고를 던지고 싶다.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는 것을 지혜(知)라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 하는 것을 어리석음(愚)이라 한다."
( 是是非非謂之知, 非是是非謂之愚 )
사안의 경중을 무시하고 무조건 반반씩 책임을 나누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진실을 외면하는 나태함이자 의도적인 기만이다. 10의 범죄와 1의 실수를 같은 저울에 올리는 행위는 10의 악행을 저지른 자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1의 실수를 한 자에게는 과도한 낙인을 찍는 명백한 ‘언론 폭력’이다. 이를 ‘공정’이라 부르는 것은 언어에 대한 모독이다.
저울의 의무는 평형이 아니라 ‘무게’를 재는 것
정의의 상징인 저울은 양쪽 접시를 평평하게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저울의 존재 이유는 추의 무게를 있는 그대로 표시하는 정직함에 있다. 만약 서로 다른 무게를 가진 것들을 사주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계산에 따라 억지로 수평으로 맞추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고장 난 저울이며 세상을 속이는 사기 도구일 뿐이다.
레거시 미디어가 "입장 차"라는 편리한 수식어 뒤로 숨어 본질을 회피할 때, 사회적 판단력은 거세된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시민들의 냉소는 결국 책임져야 할 권력자들이 가장 반기는 방패막이가 되며, 언론은 그 방패를 제작해주는 하수인이 되고 만다.
뉴미디어의 약진: 진실의 무게를 다는 새로운 저울
다행히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기성 언론의 직무유기를 꾸짖는 새로운 움직임이 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이나 '매불쇼의 최욱' 같은 뉴미디어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레거시 미디어가 사주와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진실을 팩트에 근거해 당당히 보도하고 해설한다.
기계적 균형이라는 허울 좋은 포장을 벗겨내고, 사안의 본질을 꿰뚫는 이들의 목소리는 갈증 난 시민들에게 단비와 같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냉소에 빠져있던 시민들은 이제 뉴미디어를 통해 누가 진짜 책임자인지, 사실의 무게가 어디로 기울어 있는지를 명확히 확인하고 있다. 비겁한 중립보다 선명한 진실이 더 강력하다는 것을 이들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