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 바닷길이 멈춘다면 세계 경제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지도 위에서는 가느다란 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계 경제의 심장을 관통하는 동맥이 있다. 이란과 오만 사이에 위치한 호르무즈 해협이다. 가장 좁은 곳이 약 39km에 불과한 이 해협을 통해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이동한다. 하루 수천만 배럴의 원유와 대규모 액화천연가스가 이 수로를 지나 아시아와 유럽, 미국으로 향한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언급하는 순간, 이는 단순한 군사적 긴장을 넘어선다. 그것은 곧 세계 경제의 혈류가 멈출 수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봉쇄가 현실화되지 않더라도 그 가능성만으로도 시장은 즉각 반응한다.
국제 유가는 급등하고 금융시장은 불안해지며 각국의 통화와 물가가 연쇄적으로 요동친다. 호르무즈 해협은 지정학적 분쟁의 현장이면서 동시에 글로벌 자본주의의 에너지 관문이다.

세계 경제는 여전히 석유 위에 서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확대되고 있지만, 항공·해운·물류·석유화학·전력 생산 등 핵심 산업은 원유와 가스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해협이 봉쇄되거나 봉쇄 위험이 높아지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국제 유가다.
공급 차질이 예상되는 순간, 시장에는 ‘위험 프리미엄’이 붙는다. 실제 공급이 줄어들지 않아도 가격은 먼저 움직인다. 시장은 불확실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은 곧 전방위적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운송비가 오르고 제조 원가가 상승하며 이는 소비자 물가 인상으로 연결된다. 이미 많은 국가가 고물가와 고금리 환경 속에서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시점을 늦출 가능성이 크다.
금리가 높은 상태가 장기화되면 소비와 투자는 위축되고, 결국 성장 둔화로 이어진다. 에너지 충격은 단순히 기름값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전반의 체력을 시험하는 사건이다.
금융시장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 투자자들은 위험자산을 줄이고 안전자산으로 이동한다. 달러와 금, 미국 국채는 강세를 보이는 반면 신흥국 통화와 주식시장은 하락 압력을 받는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환율 급등과 수입 물가 상승이라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된다.
여기에 해상 운송 보험료까지 상승하면 실제 원유가 도착하기 전부터 비용 부담은 확대된다. 공급 충격과 전쟁 확산 우려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시장 변동성은 급격히 커질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1970년대 오일쇼크를 떠올린다. 당시 중동발 원유 공급 충격은 세계 경제를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몰아넣었다. 물론 지금의 세계는 그때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미국은 셰일 혁명 이후 주요 산유국으로 부상했고 전략비축유 제도도 갖추고 있다. 에너지 공급망 역시 과거보다 다변화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원유 수송 관문이며 특히 아시아 국가들은 대체 경로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
단기간의 봉쇄라면 시장은 일정 부분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이 장기화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유가가 장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세계 경제 성장률은 눈에 띄게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은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고 가계는 소비를 줄이게 된다.
무엇보다 문제는 봉쇄 자체보다 봉쇄 가능성이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구조다. 시장은 반복되는 위협에 점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불확실성은 상시적인 비용으로 전환된다.
한국 경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중동산 원유 비중도 상당하다. 해협이 봉쇄될 경우 무역수지는 악화되고 원화는 약세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와 기업 모두에 부담이 된다.
정유와 석유화학 산업은 원가 압박을 받게 되고 전반적인 산업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단지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비 상승으로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이다.
결국 호르무즈 해협 위기는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운다. 외교적 긴장 완화 노력과 함께 공급망 다변화, 전략 비축 강화, 재생에너지 전환 가속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이는 환경 정책의 차원을 넘어 경제 안정 전략의 문제다.
세계 경제는 팬데믹과 전쟁, 금융위기를 거치며 여러 차례 충격을 견뎌왔다. 그러나 여전히 단 하나의 좁은 해협에 전 세계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구조는 근본적 취약성을 드러낸다.
단 39km의 바다가 세계 경제를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은 과장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상호 연결된 경제 구조 속에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위기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위기 그 자체가 아니라 준비된 대응 전략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포가 아니라 구조를 바꾸려는 장기적 결단이다.
[칼럼 제공: 이원우 박사]
국제통상학박사(ww-lee-36@hanmail.net)
동국대학교 외래교수
신구대학교 겸임교수
한국협상학회 이사
국제이비즈니스학회 이사
한국협상학화 윤리위원회 위원
한미기업인친선포럼 정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