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스크 시대(グスク時代) 후기, 오키나와 본섬에는 세 개의 강력한 정치 세력이 등장했다. 북산(北山), 중산(中山), 남산(南山) 왕국이 약 100년 동안 경쟁하며 류큐 왕국 건국의 토대를 다진 것이다. 이 시기를 삼산 시대(三山時代, 산잔 지다이)라 부른다.
중산 왕국은 본섬 중부 나카가미(中頭)를 영토로 삼고 성장했다. 초기 거점은 우라소에 구스크(浦添グスク)였으나, 이후 수도를 슈리(首里)로 옮기며 류큐 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1372년, 중산의 삿토(察度) 왕은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며 조공 관계를 시작했다. 이는 오키나와가 책봉 체제(冊封体制)에 편입되는 결정적 계기였다. 삿토 왕은 명나라로부터 중산왕의 지위를 인정받았고, 동생 타이키(泰期)를 비롯한 인물들을 중국에 파견해 조공과 교역을 통해 문물을 받아들였다. 또 국자감(国子監)에 유학을 요청하며 문화적 교류에도 적극적이었다.
북산 왕국은 본섬 북부 쿠니가미(国頭)를 중심으로 요론 섬(与論島) 등 주변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수도는 나키진 구스크(今帰仁グスク)로, 10개의 곽으로 이루어진 현내 최대 규모의 성곽이었다. 북산의 지도자 하니지(怕尼芝)는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산북왕으로 책봉되었으며, 1388년에는 책봉 인장을 하사받았다. 북산은 사신을 보내 방물(方物)을 바치며 명과의 외교 관계를 유지했다.
남산 왕국은 본섬 남부 시마지리(島尻)를 중심으로 세력을 다졌다. 중심지는 시마지리 오자토 구스크(島尻大里グスク)였다.
쇼삿도(承察度) 등 남산의 통치자들 역시 명나라에 조공하며 산남왕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1388년 책봉 인장을 받은 데 이어, 1392년에는 지도자의 아들 상구르미(三五郎尾)를 국자감에 입학시켰다. 이를 통해 남산도 교역과 문화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섰음을 알 수 있다.
세 왕국은 명나라와의 조공 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고자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은 중산 왕국의 아지였던 쇼하시(尚巴志)의 등장으로 무너졌다. 쇼하시는 바텡(馬天)과 요나바루(与那原) 등 교역 항구를 기반으로 재력을 쌓았고, 1416년 북산 왕국을 정복했다. 이어 1429년 남산 왕국까지 멸망시키며 삼산 통일을 완수했다. 그는 수도를 슈리성(首里城)으로 정비하고 류큐 왕국을 세웠다. 이 통일은 명나라와의 중계 무역을 독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으며, 오키나와는 대교역 시대(大交易時代)라는 새로운 번영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삼산 시대는 북산, 중산, 남산 세 왕국이 명나라와의 책봉 체제 속에서 경쟁하며 발전한 시기였다. 쇼하시의 통일은 오키나와의 분열을 종식하고 류큐 왕국의 성립을 이끌었으며, 동아시아 교역의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