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적 제약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병원 방문조차 망설여야 했던 여성장애인들의 의료 환경이 획기적으로 변하고 있다. 서울시가 야심 차게 추진 중인 '장애친화 산부인과'가 단순한 진료소를 넘어 여성장애인들의 건강권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평가다.

■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된다"... 이용자 수 2년 만에 425% '수직 상승'
서울시 내 3개 거점(서울대학교병원, 이대목동병원, 성애병원)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장애친화 산부인과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시행 첫해인 2023년 55명에 불과했던 이용자 수는 이듬해 159명으로 늘더니, 2025년에는 289명으로 급증했다. 이는 초기 대비 약 5.2배에 달하는 수치로,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여성장애인들의 의료 수요가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용자의 구성이다. 2025년 기준 전체 내원객의 79.5%인 230명이 중증 장애인으로 집계됐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중증 장애인들이 일반 산부인과의 높은 문턱을 실감하며 진료를 포기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전문적인 케어를 받을 수 있는 전용 창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전 연령대 포괄하는 '여성 건강 허브'로 진화
이번 데이터 분석 결과, 장애친화 산부인과는 단순히 임신과 출산에 국한된 공간이 아님이 증명됐다. 연령별 이용 현황을 보면 30대가 35.3%로 가장 높았으나, 50대 이상(29.1%)과 40대(28.7%)가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이는 가임기 여성의 산전 관리뿐만 아니라 중장년층 여성장애인들의 부인과 질환 전반을 아우르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의료 거점'으로 자리매김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지체·뇌병변 장애(48.1%)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지적·발달장애(28.0%)가 그 뒤를 이었다. 일반 병원에서는 대응하기 까다로운 고위험 산모의 비중도 높았다. 최근 기록된 11건의 분만 사례 중 7명이 중증 장애인이었으며, 조산 및 신장이식 이력 등 복합적인 위험 요소를 가진 산모들도 이곳의 전문적인 시스템 덕분에 무사히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 '코디네이터'와 '특화 장비'가 만든 기적의 디테일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완벽한 조화에 있다. 가장 큰 차별점은 '장애친화 코디네이터'의 상주다. 예약 단계부터 진료 전 과정에 동행하며,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 지원 등 맞춤형 소통 창구 역할을 수행한다. 의료진 또한 정례적인 장애 이해 교육을 통해 환자의 특성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법을 체득하고 있다.
장비 측면에서도 혁신적이다. 하반신 마비 환자를 위한 휠체어 전용 체중계, 정밀 초음파 및 유전자 검사기 등 고사양 장비를 갖춰 태아의 위험 요인을 조기에 차단한다. 또한, 기저질환이 있는 고위험군 산모를 위해 타 진료과 전문의와의 유기적인 협진 체계를 가동, 분만 중 발생할 수 있는 응급 상황에 24시간 대응하고 있다.
■ "사례로 본 희망"... 벽을 허문 소통과 정교한 마취 전략
실제 사례는 이 시스템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청각장애인 A씨는 의사소통의 장벽 때문에 임신 자체를 포기하려 했으나, 전담 코디네이터의 밀착 안내와 지역 복지 서비스 연계 덕분에 현재 안심하고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하반신 마비 상태로 휠체어 생활을 해온 산모 B씨의 사례도 감동적이다. 자율신경 반사부전이라는 고위험 병력이 있었으나, 의료진은 정교한 마취 전략과 자궁수축 모니터링을 통해 무사히 제약절개 수술을 성공시켰다. 출산 후 발생한 일시적 저혈압 위기 역시 발 빠른 조치로 극복하며 건강한 아이를 품에 안았다.
누구나 평등하게 누려야 할 의료 서비스가 장애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서울시는 지자체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조영창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장애 특성을 고려한 세심한 맞춤형 진료 체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장애가 더 이상 출산과 건강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 '장애 없는 의료 도시' 서울의 미래가 기대되는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