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버넌스 교착, 위기가 가져올 새로운 협력의 기회

AI 기술 발전 속도와 규제의 간극

글로벌 협력: 위기가 돌파구 될까

한국 AI 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과제

AI 기술 발전 속도와 규제의 간극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AI)은 첨단 기술로 여겨지며 미래를 바꿀 도구로 주목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AI는 우리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었으며, 기업, 정부, 학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기술 발전의 이면에는 AI의 윤리적 문제, 보안 위협, 악용 가능성 등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글로벌 AI 거버넌스(지배구조)는 이러한 문제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교착된 제도적 현실 속에서 마주한 위기가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게 만들까요? 현재 글로벌 AI 거버넌스는 명백한 교착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바렐라 산도발(Francisco Javier Varela Sandoval)이 채텀 하우스(Chatham House)에 기고한 논설 'AI 거버넌스의 교착 상태를 깨는 방법: 위기가 어떻게 글로벌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Breaking the deadlock on AI governance: How a crisis could lead to global coordination)'에 따르면, AI 기술의 발전 속도가 국제적 규제 체계와의 간극을 점점 더 벌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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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렐라 산도발은 AI 분야의 급격한 지정학적 변화, 제도적 취약성, 공공 및 민간 부문 간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AI 협력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고 분석합니다. 특히 그는 "현재 AI 거버넌스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국제적 합의 도출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술 발전의 속도에 비해 제도적 대응은 현저히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AI 거버넌스가 교착 상태에 빠진 원인은 복합적입니다. 첫째, 지정학적 경쟁이 심화되면서 AI를 국가 안보와 경제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은 AI 기술 우위 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 협력보다는 기술 보호주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둘째,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사이의 비대칭성 문제입니다. AI 기술 개발의 주도권은 대부분 민간 기업이 쥐고 있지만, 규제와 거버넌스는 공공 부문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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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영역 간의 협력과 조율이 원활하지 않아 효과적인 거버넌스 구축에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셋째, 제도적 취약성입니다.

 

기존의 국제 규범과 조약 체계는 AI와 같은 급격히 진화하는 기술을 규율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새로운 프레임워크 구축은 각국의 이해관계 조정 실패로 지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렐라 산도발은 이러한 교착 상황 속에서도 희망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는 AI로 인한 대규모 위기가 발생했을 때 비로소 국제 사회가 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효과적인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를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역사적으로도 국제 협력의 중요한 전환점은 종종 위기 상황에서 만들어졌습니다. 1987년 오존층 파괴 물질의 규제를 위한 몬트리올 의정서는 심각한 환경 위기가 전 세계적 합의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입니다.

 

당시 남극 오존층에 거대한 구멍이 발견되면서 국제 사회는 신속하게 움직였고, 불과 몇 년 만에 전 세계적으로 구속력 있는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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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위기는 때로 정치적 교착 상태를 깨는 강력한 촉매제가 될 수 있습니다. 바렐라 산도발이 강조하는 핵심은 위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위기가 발생했을 때 즉각 활용할 수 있는 준비된 대응 체계를 미리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는 '오프더셸프(off-the-shelf)' 방식의 조약 프레임워크와 모듈형 협약을 사전에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이는 마치 선반에서 꺼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처럼,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배치하고 적용할 수 있는 규제 체계를 의미합니다. 또한 그는 AI 안전 및 보안 기관을 신뢰할 수 있는 공공 기관으로 미리 지정하여, 위기 발생 시 신속하게 대응 권한을 부여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선제적 준비는 위기 상황에서 혼란을 최소화하고, 효과적인 국제 협력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글로벌 협력: 위기가 돌파구 될까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역시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한국은 세계 주요 AI 시장 중 하나로 자리 잡으며, AI 기술 개발과 도입에 있어 빠른 속도를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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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AI 산업은 반도체, 통신, 제조업 등 기존 산업 기반과 결합하여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정부도 AI를 국가 전략 기술로 지정하여 적극 육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규제 체계 면에서는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많습니다. 한국 정부는 2020년 '인공지능 윤리 기준'을 발표하여 AI 개발과 활용의 기본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이 기준은 인간 존엄성, 사회의 공공선, 기술의 합목적성이라는 3대 원칙과 10대 핵심 요건을 담고 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 사항에 그쳐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한편, 글로벌 AI 규제 협력에 있어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또 다른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민간 주도의 혁신을 강조하며 상대적으로 느슨한 규제 접근을 선호하는 반면, 중국은 국가 주도의 강력한 통제와 규제를 통해 AI 기술을 관리하려 합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접근 방식의 차이는 글로벌 표준 수립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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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은 2024년 세계 최초로 포괄적인 AI 규제법인 AI법(AI Act)을 최종 승인하며 규제 의제를 주도하려 하고 있습니다. EU AI법은 AI 시스템을 위험도에 따라 분류하고, 고위험 AI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는 위험 기반 접근법을 채택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미국과 중국이 선호하는 접근 방식과 상충할 수 있으며, 글로벌 AI 시장의 분열을 가속화할 우려도 제기됩니다. 한국은 이런 글로벌 동향 속에서 전략적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미국, 중국, EU 어느 한 쪽에 전적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각 지역의 규제 체계와 호환 가능한 독립적인 정책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 2025년 말부터 AI 기본법 제정을 위한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으며, 2026년 현재 국회에서 관련 법안들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기술 혁신과 안전성 확보, 개인정보 보호와 산업 발전이라는 다층적 목표를 균형 있게 추구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한국의 AI 정책은 국내 산업 생태계의 특성을 반영하면서도, 국제적 정합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AI 거버넌스가 교착 상태에 있는 만큼, 향후 AI 시장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서는 사전적 조치가 필수적입니다.

 

바렐라 산도발이 제안한 '오프더셸프' 규제 프레임워크는 단순히 문서상의 협약이 아니라, 실제 위기 상황에서 작동 가능한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포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AI 시스템의 긴급 중단 절차, 국제적 정보 공유 체계, 피해 보상 메커니즘, 책임 소재 규명 프로세스 등이 사전에 명확히 정의되어야 합니다. 또한 AI 안전 및 보안을 담당할 국제 기구나 기관의 권한과 역할, 구성원, 의사결정 절차 등도 미리 합의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업, 정부, 학계가 긴밀하게 협력하며, 각 분야의 전문성을 융합한 거버넌스 구조를 설계해야 합니다. 민간 기업은 AI 기술 개발의 최전선에 있으므로 기술적 실현 가능성과 산업 현장의 현실을 반영한 규제 설계에 기여해야 합니다.

 

정부는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며, 법적 구속력 있는 규범을 제정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학계는 AI의 윤리적, 사회적 영향을 연구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거버넌스 모델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러한 다층적 협력 체계는 AI 거버넌스의 정당성과 효과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한국 AI 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과제

 

한국은 AI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제적 AI 표준 수립에서 선도적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인프라, 우수한 AI 인재 풀, 그리고 AI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고 적용하는 역동적인 산업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민주주의 가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아시아 문화권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이러한 강점을 활용하여 한국은 서구와 아시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AI 규제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국제적 신뢰를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 2025년 서울 AI 안전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등 AI 거버넌스 논의의 주요 참여자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 포럼에서 한국은 단순한 참여자를 넘어 의제 설정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야 합니다. 또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관련 법률 및 규제를 구체화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규제의 예측 가능성은 AI 산업 발전의 중요한 기반이 되므로, 명확하고 일관된 규제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결국, AI 거버넌스 문제는 기술의 발전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가 직면한 윤리적, 정치적, 경제적 도전과도 직결됩니다. AI가 가져올 가능성과 위협을 종합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글로벌 협력 체계가 마련되어야 할 때입니다.

 

바렐라 산도발이 지적한 것처럼, 위기는 협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인류가 공통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국경과 이념을 넘어 협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위기를 사전에 방지하고, 준비된 태도로 대응하는 자세가 더욱 중요합니다.

 

위기 발생 후의 대응도 중요하지만, 위기를 예방하거나 그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합니다. 한국이 AI 시대의 미래를 주도하려면, 지금부터 진지한 고민과 대처가 필요합니다.

 

기술 개발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고, 적절한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는 데도 동등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국내 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글로벌 협력의 틀 안에서 한국의 위치를 정립하고, 국제 사회에 기여하는 동시에 국익을 보호하는 균형잡힌 전략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은 우리가 얼마나 준비된 상태로 미래를 맞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AI 거버넌스의 교착 상태를 깨는 열쇠는 결국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과 함께 행동하려는 의지, 그리고 국경을 넘어선 협력의 정신에 있을 것입니다.

 

 

김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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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chathamhouse.org

aihub.org

medium.com

작성 2026.04.01 01:31 수정 2026.04.01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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