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 규제의 교착 상태, 한국은 어떠한가?
인공지능(AI)은 현대 사회의 모든 면을 뒤흔들 혁신적 기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AI를 전기에 비유하며 그 파급력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기를 제어하던 규제와는 달리, AI 거버넌스는 글로벌 무대에서 여전히 방황 중입니다. 만약 AI가 제재되지 않은 상태로 성장한다면, 이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에서부터 국가 간 충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 거대한 기술적 도전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AI 거버넌스의 현주소를 살펴보면 그 답은 "아니요"에 가까워 보입니다. 2026년 3월 채텀 하우스(Chatham House)에 발표된 기고문에서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바렐라 산도발(Francisco Javier Varela Sandoval)은 현 상황을 '교착 상태(deadlock)'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는 "AI 협력의 어려움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급격한 지정학적 변화, 제도적 취약성, 그리고 공공 및 민간 부문 간의 비대칭성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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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각국은 AI 기술을 선점하려는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소프트웨어 감시 시스템이나 자율무기 등 민감한 분야는 국제 협력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AI 기술 패권을 둘러싼 갈등을 지속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은 독자적인 규제 체계를 구축하며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AI를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위한 글로벌 합의를 도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렐라 산도발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위기 상황이 글로벌 협력의 촉매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에 따르면, AI로 인한 대규모 사고나 위기가 발생할 경우 "비로소 국제 사회가 효과적인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견해는 과거 국제 사회가 환경 문제에 대응한 방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실제로 1987년 오존층 파괴라는 위기를 직면한 전 세계는 몬트리올 의정서를 체결하며 뜻을 모았고, 이는 환경 문제 해결의 성공 사례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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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거버넌스도 이와 유사한 위기-협력 모델로 발전할 수 있을까요? 바렐라 산도발은 단순히 위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선제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위기가 터질 때 신속히 발효될 수 있는 '오프더셸프(off-the-shelf)' 조약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마치 선반에서 바로 꺼내 쓸 수 있는 제품처럼, 미리 준비된 조약 틀을 위기 상황에서 즉각 활성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 그는 "모듈형 협약(modular framework)"의 필요성도 제안합니다. 이는 각국의 상황과 우선순위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개인정보보호를 우선시하는 국가는 프라이버시 관련 모듈을, 안보를 중시하는 국가는 자율무기 규제 모듈을 먼저 채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바렐라 산도발은 "AI 안전 및 보안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사전에 신뢰할 만한 국제 기관을 지정해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권한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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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핵 안전과 비확산을 관리하는 것처럼, AI 분야에서도 유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 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유엔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에서 AI 윤리와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집행 권한을 가진 기관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제안은 단순히 이론적 논의로 끝나지 않습니다.
유럽연합(EU)은 2024년 AI Act를 통과시키며 AI 윤리와 안전 규제를 구체화했고, 영국은 2025년 독자적인 AI 규제 체계를 발표하며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위기에서 기회로: 글로벌 협력의 이정표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한국은 AI 기술 개발에 있어 상당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카카오,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기업들이 자체 AI 모델을 개발하고 있으며, 정부도 "AI 강국 실현"을 국가 전략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3년 "AI 일상화 및 산업 고도화 계획"을 발표하며 2027년까지 AI 분야에 2조 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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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거버넌스 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성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규제보다는 기술 개발과 산업 진흥에 초점을 맞춘 정책은 때로는 기업의 남용 가능성을 방치할 위험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AI 기반 면접 플랫폼의 확산은 개인의 사생활 침해나 편향된 알고리즘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2024년 한국 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의 약 40%가 AI 면접 시스템을 도입했거나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의 알고리즘이 공정한지, 특정 집단에 불리하게 작동하지는 않는지에 대한 감독 체계는 미흡한 실정입니다. 또한 의료, 금융, 교육 등 민감한 분야에서 AI 활용이 확대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과 책임 소재가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이러한 잠재적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한국은 글로벌 협력의 주요 플레이어로도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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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OECD AI 원칙 채택에 적극 참여했으며, 글로벌 AI 윤리 논의에서 중요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판 뉴딜' 정책의 핵심 축으로 디지털 뉴딜이 자리 잡으며 AI의 책임 있는 활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025년 정부는 "AI 기본법" 제정을 추진하며 AI 개발과 활용에 대한 기본 원칙을 수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서상의 약속이 실질적인 제도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미비한 점이 여전히 많습니다. 특히 AI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이 필요합니다. 한국이 선진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규제 틀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렐라 산도발이 제안한 "오프더셸프 조약"과 "모듈형 협약" 개념은 한국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한국은 EU의 포괄적 규제 모델과 미국의 자율 규제 모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을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한국의 제조업 기반과 빠른 디지털 전환 속도를 고려할 때, 한국형 AI 거버넌스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국제 사회에 제안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합니다.
한국 AI 정책의 과제와 미래 방향성
물론 AI 규제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과도한 규제로 인해 혁신이 저해될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AI 개발 초기 단계에서 지나친 제약이 걸릴 경우, 기업의 창의적 연구와 발전 속도가 둔화될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처럼 AI 기술 개발에서 미국, 중국에 비해 뒤처진 상황에서 규제가 먼저 강화되면 기술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합니다. 실제로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과도한 규제가 혁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를 관리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입니다. 필요한 규제와 과도한 규제를 구분하고, 기업과 전문가들이 협력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이는 규제 샌드박스와 같은 제도를 통해 혁신과 안전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습니다. 현재 AI 기술은 우리가 과거의 어떤 기술적 혁신보다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ChatGPT가 출시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전 세계에서 수억 명이 사용하게 되었고, 이미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AI가 핵심 도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압축 성장을 일궈낸 한국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AI 거버넌스의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요? 이는 단지 AI 규제에 그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한국이 미래를 선도하는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을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바렐라 산도발의 연구가 제시하는 "위기를 통한 협력" 시나리오는 비관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전망이기도 합니다. 역사는 인류가 종종 위기를 겪은 후에야 비로소 행동에 나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AI의 경우 위기가 발생한 후에 대응하기에는 그 파급력이 너무 클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가 제안하는 선제적 준비, 즉 "오프더셸프" 조약과 신뢰할 수 있는 국제 기관의 사전 지정은 매우 중요한 전략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야 할 때입니다. 한국은 기술 개발과 윤리적 거버넌스 사이의 균형을 찾고, 글로벌 AI 협력 체계 구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진정한 AI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김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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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chathamhouse.org
aihub.org
mediu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