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강철왕으로 알려진, 앤드루 카네기(1835~1919)가 세운 카네기 재단(Carnegie Corporation of New York)은 2026년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해 미국 카네기 도서관 약 1,280곳에 각 1만 달러씩, 총 2,000만 달러를 지원하는 특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각 도서관은 2026년 1월에 지원금을 받게 되며, 지역사회 기념 행사나 도서관 사명에 맞게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재단은 이를 통해 카네기가 강조했던 ‘도서관은 민주주의의 요람’이라는 정신을 기리고자 한다. 이번 특별 기금은 도서관뿐 아니라 카네기홀, 실크로드 프로젝트(요요마), 스미스소니언, 뉴욕 역사박물관 등 미국의 시민 문화를 강화하는 단체들을 지원하는 2,000만 달러 규모의 광범위한 프로젝트의 일부이다. 이는 미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 완화, 시민교육, 젊은 세대의 참여, 디지털·미디어 리터러시 증진을 목표로 한다.
도서관이라는 공간
그곳은 그저 책을 보관하는 장소를 넘어, 우리 영혼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가 된다. 그곳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그 어떤 이념을 가졌든 상관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지식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성역이다. 오래된 책장에서 풍기는 옅은 종이 냄새와 먼지의 향기, 나지막한 책장 넘기는 소리, 그리고 창으로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
한 세기 하고도 수십 년 전,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이민자에서 '강철왕'이 된 사나이, 앤드루 카네기는 이 공간의 위대한 힘을 알았다. 그는 부의 축적이 아니라 '현명한 분배'야말로 한 인간의 삶을 완성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따라 1886년부터 1917년까지, 미국 전역에 무려 1,681개의 공공 도서관을 심었다. 그것은 건물을 지은 것이 아니라, 어둠을 밝히는 '빛의 집'을 세운 것이었다.
그는 도서관을 '민주주의의 요람'이라 불렀다. "시민의 평등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민주적 이념을 강화하는 곳"이라 정의했다. 그는 알았던 것이다. 지식의 문턱이 낮아질 때, 정보에 대한 접근이 평등해질 때, 비로소 평범한 시민의 존엄성이 '인간의 왕권(royalty of man)'과 같아진다는 것을. 그가 세운 도서관들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한 국가의 민주적 근육을 키우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투자였다.
시간은 흘러 2026년, 미국 건국 250주년을 앞두고 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카네기가 심은 그 씨앗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1,280여 개의 도서관이 여전히 그 뿌리를 잊지 않고 운영 중이며, 그중 750여 곳은 카네기가 지었던 본래의 건물에서 꿋꿋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유산을 이어받은 카네기 재단이 이 오래된 '빛의 집'들에게 1만 달러의 선물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 소식은 단순한 기념행사를 넘어선 깊은 울림을 준다. 왜 하필 지금, 다시 '도서관'인가?
1만 달러라는 돈은 거대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상징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100년 전의 이상이 오늘 우리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이며, 메마른 민주주의의 뿌리에 붓는 한 바가지의 물이다. 재단은 이 기금이 각 도서관의 사명을 진척시키고 지역 공동체에 혜택을 주는 데 쓰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선물'이 더 큰 계획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재단은 총 2,000만 달러 규모의 특별 계획을 통해 미국의 시민 기관들을 지원한다. 그 목표는 놀랍도록 명확하다. 바로 '정치적 양극화의 감소'이다.
우리는 지금 극심한 분열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의 목소리를 듣기보다 자신의 신념을 확인해주는 메아리 방(echo chamber) 속에 갇혀간다. 광장은 사라지고, 알고리즘은 우리를 갈라놓는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척결해야 할 적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에서도 증오와 배제, 냉소와 분열은 일상이 되었다. 민주주의의 요람은 흔들리고, 시민의 평등이라는 이념은 공허한 구호처럼 들린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재단의 선택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재단은 그 답을 '도서관'과 '시민 교육'에서 찾고 있다.
그들은 도시와 농촌 사람들의 교류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역사를 가르치며, 다양한 문화 행사를 통해 사람들이 '만나도록' 한다. 지난 한 해 동안 시민 교육, 미디어 리터러시, 청소년 투표 독려 등에 3,00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특히 도서관에는 성인을 위한 영어 학습이나 십 대들의 시민 참여 프로그램 같은 구체적인 사업을 위해 1,3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이것은 무너진 광장을 다시 세우려는 절박한 몸짓이다. 도서관은 오늘날 책을 넘어선 역할을 수행한다. 낯선 땅에 발 딛은 이들이 언어를 배우는 교실이 되고, 십 대 청소년들이 민주주의의 첫걸음을 떼는 토론장이 되며, 디지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을 분별하는 법을 가르치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현장이 된다.
무엇보다 도서관은, 우리가 '타인'과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거의 유일하게 남은 공공 공간이다. 어떤 목적이나 이해관계 없이, 그저 한 공간에 머무르며 서로의 존재를 묵인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카네기가 '요람'이라고 불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00년 전, 한 이민자는 자신이 번 돈으로 벽돌을 쌓아 1,681개의 '문'을 만들었다. 모든 이에게 열린 지식의 문, 그리고 서로에게로 향하는 만남의 문을. 그 문들은 지금도 굳건히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카네기 재단은 이제 carnegielibraries.org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이 도서관들의 이야기와 사진을 모으고 있다. 흩어진 빛들을 하나로 엮어, 그가 남긴 유산이 얼마나 생생하게 숨 쉬고 있는지 증명하려 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의 '오늘'은 100년 뒤, 누군가에게 어떤 유산으로 기억될 것인가.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요람'을 만들고 있는가. 우리는 분열과 혐오의 벽을 허물기 위해 어떤 '문'을 열고 있는가.
결국 한 사람의 깊은 묵상과 고백에서 시작된 선한 의지가 시대를 넘어 어떻게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는지, 카네기의 유산은 침묵 속에서 웅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