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 B-7 앞에서 울컥할 의무




양화진 선교사 묘역




B-7에 노을이 가닿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급하게 B-7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남자분이 앞서 걸으며 묘비를 살피다가 B-7을 가리키며 여자분에게 여기라고 했다. 여자분은 묘지를 발견하자마자 울컥하더니 눈물을 참으며 참배를 했다. 


양화진 선교사 묘역 B-7, 호머 헐버트가 있는 곳이다. 나는 여자분이 호머 헐버트와 연관이 있는 자손 중에 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호머 헐버트가 있는 묘지를 보자마자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참배 도중에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이 보통의 인연은 아닐 거라는 짐작을 하게 한 것이다.그녀는 참배가 끝나고 감정을 추스르는 중이었고 나는 일몰을 기다리는 중이었다.나는 B-7 앞에서 눈물을 훔치는 그녀가 궁금했다. 


"여기는 어떻게 오게 되셨어요?"


그녀는 화장기 없는 민낯에 전형적인 한국인의 모습이었고 그녀 옆에는 그녀가 감정을 추스를 수 있도록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어깨를 도닥여주는 남자가 있었다. 여자는 눈물 자국을 정리하면서 오게 된 사연을 풀어놨다. 자신의 집에서 가까운 곳, 예전에도 와봤던 곳, 그곳에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호머 헐버트가 있다는 사실을 그전에는 몰랐다고 한다. 오늘 호머 헐버트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입장 시간이 5시 까지라서 서둘러 왔는데 시간이 지나서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나는 묘원 개방 시간이 5시까지라는 것도 모르고 B-7 앞에서 노을이 스미는 것을 지켜볼 생각으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인데 그녀가 그 시간에 있는 것조차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무안해졌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같은 역사 강의를 듣고 양화진 선교사 묘역을 다시 찾았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공통점을 발견한 그녀는 술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40대가 되니 이전에는 지나쳤거나 혹은 몰랐던 것들에 대해서 천착하게 되고 특히 역사 공부를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나 장소를 찾아보고 있다고 했다. 그중에서 호머 헐버트는 조선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조선 사람들 조차 등한시하던 한글에 그토록 애정을 가질 수 있었는지 경이롭다고 했다. 


나 역시 이전에 양화진 선교사 묘원을 다녀간 적이 있었지만 호머 헐버트에 대한 정보가 없이 갔었던 터라 호머 헐버트에 대한 공부를 하고 다시 찾은 B-7은 남다른 감동이 있었다. 그녀가 호모 헐버트의 묘비를 보자마자 울컥하는 모습을 보고 헐버트와 관련 있는 자손 중에 하나일 거라 짐작하던 나에게 그녀는 외국인이 한국을 그렇게 사랑했는데 우리나라, 우리 조국은 남은 우리가 지켜나가야 하고 호머 헐버트의 업적을 알려야 한다고 강조하며 덧붙였다.


"자신에게 아무 이익도 없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녀의 물음에 나의 귀에는 이런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모른다. 그러나 조선사람이라면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될 분”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 수감된 이후 호머 베자렐 헐버트박사에 대한 일본 경찰의 질문에 답한 말이다. 

조선사람이라면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될 분, 호머 베지렐 헐버트,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


호머 헐버트는 1886년 육영공원 교사로 조선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선교와 교육을 위해 조선에 도착한 직후부터 한국어와 한글을 배우고 1896년에는 서재필·주시경과 함께 독립신문을 창간하여 발간하고, 주시경과 함께 한글을 연구하면서 최초로 한글 띄어쓰기와 점찍기를 도입했으며,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아리랑을 처음으로 채보하였다. 



“한글은 현존하는 문자 가운데 가장 우수한 문자”라고 평가한 그는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논문을 발표하고 <사민필지>라는 최초의 한글 교과서를 발간하는 등 한글을 알리는 데에 힘썼다.


 “좋은 문자는 다양한 소리를 혼동 없이 쉽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한글이 바로 그렇다.”(1889년 뉴욕 트리뷴) “문자 구조상 한글에 견줄만한 단순한 언어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1903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협회 연례보고서)


 특히 한글의 우수성을 학술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논문 'A comparative grammar of the Korean language and the Dravidian language of India'(1905)를 발표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한국어와 인도의 드라비다안 언어와의 비교를 통해 한국어와 드라비다어가 음운 및 어간, 명사의 성과 살림체계 등의 부분에서 많은 유사성을 가졌기 때문에 그 기원이 같다는 '남방기원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헐버트 박사는 1891년 세계지리서를 한글로 발간했고 1892년 1월 한국 최초의 영문월간지 ‘한국소식(The Korean Repository)’ 창간호에 ‘한국의 알파벳(The Korean Alphabet)’이란 논문을 기고하며 한글의 우수성을 알렸다. 이어 3월호에 한글 창제과정을 설명하는 글을 실었다. 헐버트 박사는 1898년 2월에 발간된 '한국소식'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한국말을 기록하던 표기법 ‘이두’에 대한 글도 게재했다.


1907년, 고종은 일본의 강압적 외교권 박탈에 맞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했다. 호머 헐버트는 이미 미국과 유럽의 언론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고 있었고, 특사 이준, 이상설, 이위종이 밀사로 가기 위한 모든 과정에 관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이그 밀사는 회의장 입구에서 저지당하고 회의장에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끝났다. 헤이그 사건 이후 일본은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조선을 본격적으로 식민지화했다. 할버트 역시 조선에서 추방되어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미국 의회와 언론에 조선의 독립을 호소했다.


1949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1주년 기념식에 초청받아 86세의 노구를 이끌고 입국했으나 긴 여행의 여독을 이기지 못하고 도착 1주일 만인 8월 5일 별세했다. 눈을 감기 전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합니다(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라는 유언을 남긴 호머 헐버트, 그의 묘비에 그의 유언이 그대로 쓰여있다. 원래는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가 묘비명을 쓸 수 있도록 비석을 비워 두었는데, 50년 동안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 서거 50주년을 맞아 1999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대중의 휘호를 받아 묘비명을 새겼다. '헐버트 박사의 묘'라는 한글 휘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필적이다.



호머 베자렐 헐버트(1863~1949, homer Bezalleel Hulbert)는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양화진 션교사 묘역 B-7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사람보다 조선을 더 사랑한 외국인.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띄어쓰기와 점찍기가 없는 한글을 사용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B-7 일몰이 시작되는 앞에서 만난 그녀는 대화 도중에 몇 번을 더 울컥했다.


"자신에게 어떤 이익도 없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누구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부하들을 다 팔아넘기고 있는데..."


애초에 나의 계획은 '조선 사람이라면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될 분'이 계신  B-7 앞에서 그가 그토록 사랑한 나라의 아름다운 일몰을 같이 보고 싶었지만 일몰이 몰려들기 전에 서둘러 묘역을 빠져나왔다. B-7 앞에서 만난 그녀와 그녀의 감정을 공감해 주는 그녀 옆의 남자 모두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5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그녀와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역사 인식을 혼자서 할 수도 있지만 같이 공부하고 공감하여 연대할 때 빛이 난다는 것을 알았다. B-7 앞에서 일몰 대신 그

들의 빛나는 뒷모습을 보았다. 그 빛이 한국을 물들이고 B-7 앞에서 울컥할 의무를 가진 많은 이들이 생겨나길 염원한다.





K People Focus 현혜경 칼럼니스트

 k8163675@gmail.com 

 [무주의 맹시] 출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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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5.10.29 11:52 수정 2025.11.1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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