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는 지금 깊은 균열 위에 서 있다. 찰리 커크의 암살 사건은 그 균열의 실체를 드러낸 충격적 장면이었다. 동시에 이는 과거 BLM(Black Lives Matter) 시위가 보여준 사회 불만의 폭발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양 진영이 보여준 행동 양상은 극명히 달랐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미국 전역은 BLM 시위로 뒤덮였다. 수많은 이들이 경찰 폭력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섰고, 상당수 집회는 평화적이었으나 일부는 폭력과 방화로 이어졌다. 도시 기반 시설이 파괴되며 20억 달러가 넘는 피해가 발생했다. 분노와 항의는 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강한 목소리였지만, 폭력적 소요가 동반되며 사회적 혼란은 배가되었다. 이는 불의에 맞선다는 명분이 있었으나, 그 방식은 종종 파괴로 귀결되었다.
반면, 2025년 9월 찰리 커크가 암살당한 이후, 그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우익 청년 단체 Turning Point USA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들의 대응은 폭발적 분노가 아닌 차분한 추모였다. 콜로라도 주립대 등 여러 캠퍼스에서 열렸던 집회는 기도와 노래로 채워졌으며, 폭력이나 충돌은 없었다. 지도자를 잃는 충격 속에서도 조직적 절제와 응집력이 발휘된 것이다.
이 차이는 좌우 진영의 운동 방식과 깊이 연관된다. 좌파 운동은 구조적 불평등과 제도적 억압에 항의하며 “직접 행동”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우파 진영은 개인의 자유와 질서를 강조하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조직적으로 결속하고 절제를 통해 정당성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학계 보고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간 미국 내 정치적 폭력 사건은 오히려 우익 극단주의 진영에서 더 많이 발생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좌우를 막론하고 폭력은 분열의 부산물임을 방증한다.
갈수록 심화되는 이 분열의 그림자는 한국 사회에도 낯설지 않다. 보수와 진보의 극단적 대립은 국회, 언론, 거리에서 매일같이 표출된다. 미국이 겪고 있는 정치 폭력과 사회적 균열은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적대적 공존”의 정치 문화가 계속된다면, 한국 역시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분열의 말로를 가르친다. 『춘추좌씨전』에 “國之將亡, 必多制”라 하였다. 나라가 망할 때는 반드시 분열과 갈등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지금 미국과 한국 모두, 이 경고 앞에 서 있다.
정치적 차이는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차이를 넘는 방식이 폭력이라면 그것은 사회의 파멸을 재촉하는 불길이다. 찰리 커크 사건이 던지는 교훈은 명확하다. 분노와 증오가 아닌 절제와 자제가 사회의 균열을 봉합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 역시 이 거울 앞에 스스로를 비춰야 한다.
극단으로 치닫는 오늘의 분열, 우리는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과 해결이 없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볼 수 없을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