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와 알고리즘, 기술이 정의를 침범할 때

인공지능이 정의를 ‘계산’할 때 생기는 불편한 진실

기술의 중립성은 환상이다: 편향된 데이터의 그림자

알고리즘 책임의 시대, 우리는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정의를 ‘계산’할 때 생기는 불편한 진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철학적 질문이 이제는 코드와 데이터의 세계에서 다시 묻고 있다.
AI가 채용 지원자를 선별하고, 법원이 양형 예측 알고리즘을 활용하며, 은행이 대출 심사를 자동화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기계가 내린 판단은 과연 공정한가?”

문제는 단순히 기술의 성능이 아니다. 알고리즘은 인간이 만든 데이터로 학습한다. 그리고 그 데이터에는 사회의 편견, 불평등, 차별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예컨대 미국의 ‘COMPAS’ 시스템은 흑인 피의자를 백인보다 더 높은 재범 위험군으로 분류한 사례로 큰 논란을 빚었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이 인간의 왜곡된 구조를 그대로 복제한 결과였다.
인공지능이 공정함을 약속받으려면, 그 안에 인간의 편향을 먼저 마주해야 한다.

 

 

기술의 중립성은 환상이다: 편향된 데이터의 그림자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많은 사람은 알고리즘이 객관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데이터는 이미 사회의 권력관계, 인종, 젠더, 경제적 격차를 반영한 “왜곡된 거울”이다.
AI 윤리 연구자 케이트 크로포드는 이를 “데이터 식민주의(data colonialism)”라 불렀다. 과거의 식민주의가 자원을 약탈했다면, 지금의 데이터 식민주의는 인간의 경험과 행동을 추출해 통제하는 새로운 권력 구조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2018년 아마존이 사용하던 인사 알고리즘은 남성 중심의 데이터로 학습해 여성 지원자의 점수를 낮게 평가했다. 그 결과, AI는 남성이 선호된다는 기업의 무의식적 편향을 ‘논리적 판단’으로 재생산했다.
이처럼 기술은 인간의 결함을 교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수학적 언어로 정당화할 위험이 있다. 알고리즘의 중립성은 환상이며, 기술은 언제나 사회적 산물이다.

 

 

알고리즘 책임의 시대, 우리는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AI가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 그 책임은 누구의 것일까?
프로그래머일까, 기업일까, 아니면 기술 자체일까?

최근 유럽연합(EU)은 ‘AI 책임법(AI Liability Act)’을 통해 알고리즘 결정으로 피해를 입은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한국에서도 ‘인공지능 기본법’ 제정이 추진되며,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설명 가능성, 그리고 인간의 감독 의무가 중요한 기준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회색지대다. AI의 판단은 수천 개의 변수를 통합한 결과이며, 그 과정은 인간조차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른바 ‘블랙박스 문제(black box problem)’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책임의 화살을 누구에게도 명확히 돌릴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기계의 정의’가 위험한 이유다 — 책임이 사라진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정의로운 기술을 위한 윤리 설계의 새 패러다임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AI 윤리의 핵심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윤리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제 기술 개발자들은 단순히 효율이나 정확도를 높이는 것을 넘어, 사회적 가치와 인간 존엄을 코드에 새겨 넣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AI Council’은 ‘윤리적 알고리즘 설계 원칙(Ethical AI by Design)’을 통해 투명성, 포용성, 책임성을 기술적 표준으로 규정했다.
국내에서도 서울대 AI정책이니셔티브와 KAIST 휴머니즘 AI센터가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XAI)”과 “감정 인식의 윤리적 기준”을 연구하며 인간 중심의 기술 철학을 확립해 나가고 있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기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AI는 인간의 도덕을 대체할 수 없다. 오히려 기술이 인간을 닮아갈수록, 인간은 더 인간다워져야 한다.
기술이 정의를 침범하지 않도록 지키는 일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우리의 몫이다.

 

 

기술의 시대, 정의의 재구성

 

우리가 마주한 질문은 단순하다.
“기계가 판단할 수 있다면, 인간의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켰지만, 동시에 인간의 도덕적 감각을 시험하고 있다.

이제 윤리는 선택이 아니라 기술의 기본 설계 요소가 되어야 한다.
AI 시대의 정의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인간의 의식에서 시작된다.

 

“기술은 인간을 대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작성 2025.10.24 06:08 수정 2025.10.24 06:08

RSS피드 기사제공처 : 올리브뉴스(Allrevenews) / 등록기자: 신종기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