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걸 사야 대화가 된다
회사 점심시간, 한 직원이 새로 산 텀블러를 꺼내며 말한다.
“이거 요즘 SNS에서 핫하더라구요.”
그러자 맞은편의 동료가 반응한다.
“나도 그거 샀어요.”
이 짧은 대화 속에는 MZ세대 직장인들의 새로운 생존 전략, ‘디토소비(Ditto Consumption)’가 숨어 있다.
디토소비란, SNS나 주변에서 본 제품이나 취향을 ‘나도 똑같이 소비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과거에는 개성을 중시하던 세대가 이제는 ‘공감’과 ‘연결’을 위해 소비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조직 내 관계 유지와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를 반영하는 사회적 신호로 읽힌다.
공감이 곧 생존이다 — ‘나도 그거 샀어요’로 이어지는 직장 대화
직장 내 인간관계는 더 이상 ‘보고서’나 ‘성과’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점점 더 많은 MZ세대가 ‘소비의 공감 코드’를 통해 소속감을 확인하고 있다. 같은 브랜드의 음료를 마시거나, 같은 굿즈를 가지고 있는 것은 ‘같은 팀’이라는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서울의 한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28세 김모 씨는 이렇게 말한다.
“팀원들이 전부 같은 브랜드의 노트북 파우치를 쓰길래 나도 샀어요. 대화 주제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거든요.”
즉, 디토소비는 소비의 유대감이자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 툴이 된 셈이다. 다름보다 같음을 택하는 선택은 ‘생존’을 위한 적응 전략으로 이어진다.
소비로 연결된 네트워크 — MZ세대의 ‘공유 취향 경제’
디토소비는 단순한 따라하기가 아니다. MZ세대에게 디토소비는 ‘함께 경험하는 경제활동’이다. 소비를 통해 정보, 감정, 취향이 동시에 교환된다. SNS 플랫폼 ‘인스타그램’과 ‘틱톡’에서는 “#디토소비” 해시태그가 수십만 건을 넘어섰다.
한 번 바이럴된 제품은 단기간에 품절 사태를 만들고, 같은 상품을 구입한 소비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리뷰, 인증샷, 사용법을 공유한다. 이는 ‘공유 취향 경제(Shared Taste Economy)’라 불리는 새로운 트렌드로,
공감과 참여를 중심으로 한 ‘관계형 소비’가 강화되고 있다. 결국 ‘같은 걸 산 사람들끼리의 연결’이 하나의 사회적 네트워크 자본이 된 셈이다.
기업의 시선이 바뀐다 — 디토소비를 마케팅과 HR전략에 활용하다
기업들은 이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마케팅 부서뿐 아니라 인사(HR) 부서에서도 디토소비를 조직문화 강화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일부 대기업은 구성원 간의 유대감을 높이기 위해 ‘사내 인기템’을 선정하거나, ‘공유 굿즈’를 제작한다.
예컨대 사내 로고가 박힌 텀블러나 노트북 스티커를 배포하는 것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우리도 함께하고 있다”는 상징적 참여 장치다. 또한 브랜드 입장에서는 디토소비가 마케팅 효율을 극대화하는 통로가 된다.
MZ세대 직원이 SNS에 “회사에서도 이거 쓴다”는 콘텐츠를 올리면, 그 자체가 기업 브랜딩이 된다. 기업의 브랜드와 직원의 소비 패턴이 맞물리면서 내부 구성원이 곧 브랜드 홍보자(Employee Influencer)로 변하는 시대다.
진짜 개성은 어디로 갔을까 — 공감과 획일 사이의 세대적 균형
그러나 비판의 시선도 존재한다. 모두가 같은 것을 소비하는 문화가 ‘개성의 실종’을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다름을 존중하기보다, 다름이 불편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우려다. 디토소비가 ‘공감’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획일화된 정체성’을 강화한다는 아이러니도 있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관계 피로사회(Relationship Fatigue Society)”의 또 다른 증상으로 본다. 결국 진짜 개성이란 남과 다른 소비가 아니라, 공감 속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나도 그거 샀어요’ 그 너머의 진짜 연결
디토소비는 MZ세대가 만든 유행이지만, 그 속에는 관계 중심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숨어 있다. 직장에서, SNS에서, 커뮤니티에서 ‘나도 그거 샀어요’는 단순한 말이 아니다. 그것은 “나도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일종의 존재 확인이다.
결국 디토소비는 ‘같은 걸 사는 문화’가 아니라 ‘같은 마음을 공유하는 사회적 언어’로 진화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