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가 위협받는 시대의 선택 - 풍자 속의 진실과 웃음 뒤의 용기
풍자는 언제나 시대의 거울이었다. 그것은 웃음으로 포장된 비판이며, 권력을 향한 가장 날카로운 질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풍자의 자유는 위협받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불편한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는 자기검열의 벽 뒤에서 웃음은 점점 침묵으로 변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가 말한 ‘이성의 공공적 사용’이 떠오른다. 칸트는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즉, 남이 대신 생각해주는 편안함을 버리고, 자기 이성으로 세상을 비판할 용기를 내는 것 — 바로 그 용기가 오늘날의 풍자에도 필요하다. 풍자는 결국 이성이 사회 속에서 말하는 자유의 형태다.
풍자는 단순한 웃음의 장르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에 대한 도덕적 감시 장치이자, 사회가 스스로를 비추는 반성의 거울이다. 칸트의 철학에서 모든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서 스스로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풍자는 타인을 조롱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도덕적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권력은 언제나 풍자를 두려워한다. 웃음은 통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칸트는 진정한 자유가 “법칙에 대한 복종 속에서 얻어지는 자율”이라고 보았다. 풍자의 자유 역시 무책임한 비난이 아니라, 도덕적 자율성에 근거한 비판의 자유로 이해될 때, 사회는 건강한 비판문화를 가질 수 있다.
웃음은 때로는 무기보다 강하다. 그러나 그 웃음을 세상 앞에 드러내기 위해서는 도덕적 용기(moral courage) 가 필요하다. 칸트는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그 행위가 의무에서 비롯되는가에 달려 있다”고 했다. 풍자 역시 같은 맥락이다. 진정한 풍자는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조롱이 아니라, 진실을 말해야 할 도덕적 의무에서 비롯된 행위다.
오늘날 언론과 예술은 종종 대중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자기검열을 선택한다. 그러나 웃음을 포기한 사회는 비판을 잃는다. 웃음 뒤에 숨은 용기야말로 자유를 지탱하는 마지막 기둥이다.
현대 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외치지만, 동시에 ‘불쾌함을 금지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풍자가 불쾌하다는 이유로 삭제될 때, 사회는 비판적 사고의 통로를 잃는다. 칸트의 글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사유하라(Sapere aude) — 스스로 생각할 용기를 가져라”라고 말했다.
풍자의 위기는 곧 이성의 위기다. 공적 이성이 침묵할 때, 사회는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다. 풍자는 이성을 실천하는 행위이며, 사회적 대화의 촉매다. 우리가 불편함을 감수할 때, 진정한 공론장이 열린다.
칸트는 「영구평화론」에서 평화를 단순한 전쟁의 부재가 아니라, 도덕적 이성의 실천이 지속되는 상태로 정의했다. 평화는 침묵 속에서 오지 않는다. 풍자는 갈등을 드러내지만, 그것은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불편한 진실의 언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지켜야 할 자유는 ‘불쾌하지 않은 웃음’이 아니라, 이성적 대화와 비판이 가능한 사회의 조건이다.
웃음 뒤의 용기, 그것이야말로 평화의 첫걸음이다.
칸트가 말한 “이성의 공공적 사용”은 오늘날 풍자의 언어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