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스기야 유월절이 던진 신앙의 메시지
유월절은 출애굽의 기억을 새기는 절기였다. 노예로부터 자유인이 된 날, 하나님의 구원이 실제로 이루어진 사건의 기억이다. 히스기야가 이 절기를 다시 세운 것은 단순히 종교적 전통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영적 대각성 운동이었다.
문제는 준비되지 않은 백성이었다. 오랜 세월 유월절이 지켜지지 않다 보니, 백성들은 제사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북왕국에서 온 이들 중 다수가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않은 채 어린양을 먹었다. 율법의 기준으로 보면 이는 명백한 죄였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이들을 정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내면을 보았다.
그들은 비록 율법의 형식을 지키지 못했지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는 진실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히스기야는 이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렸다.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하는 자를 용서하소서.”
그 기도는 단순한 중재가 아니라, 율법과 은혜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신앙적 선언이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고, 백성을 고쳐 주셨다. 인간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이 유월절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히스기야의 중보기도는 유월절의 전환점이었다. 그는 왕이었지만 제사장처럼 기도했고, 백성의 대표였지만 죄인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엎드렸다. 그 기도는 단순한 제도적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향한 영적 리더십의 상징이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받으셨다. 예배가 회복되자 성전은 다시금 찬양과 감사로 가득 찼고, 레위인들은 노래로 하나님을 높였다. 그들은 구원의 기쁨을 누렸고, 유월절 절기는 예정된 일주일을 넘어 한 주 더 이어졌다.
기쁨이 넘쳤기에 절기를 연장했다. 이는 ‘의무적 연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더 오래 머물고자 하는 순수한 갈망이었다.
히스기야의 유월절은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신앙의 형식을 지키며 예배하지만, 그 중심에 진정한 회개와 감사가 있는가? 때로는 규칙을 지키는 데 집중하느라, 은혜의 본질을 잃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여전히 ‘마음 중심에 있는 자’를 찾고 계신다. 히스기야 시대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갈망이 있다면 그 예배는 받아들여진다. 오늘의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새로운 형식이 아니라 ‘은혜 중심의 신앙’, 바로 그 본질이다.
히스기야의 유월절은 단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 신앙의 거울이다. 율법의 틀을 넘어 은혜의 중심으로 나아갈 때, 예배는 다시 생명을 얻는다.
히스기야 시대의 유월절은 “어떻게 예배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믿고 예배할 것인가”를 묻는다. 완전한 형식보다 진실한 중심, 규칙보다 은혜를 선택한 예배였다.
오늘날 신앙 공동체도 그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은 완벽한 절차보다, 깨진 심령의 고백을 더 귀히 여기신다.
율법을 넘어선 은혜의 중심 — 그것이 히스기야의 유월절이 오늘 우리에게 남긴 영원한 메시지이다.








